코로나 이후 번아웃이 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무기력증, 피로감에 일상이 괴로웠다. 남들도 다 그렇다기에 한동안은 그러려니 했다. 핑곗김에 좀 쉬어가지 뭐, 하는 생각도 했다. 꼭 필요한 일만 하고 집에서 뒹굴뒹굴했다. 한 달이 지나 두 달을 향해 가자 마음까지 덩달아 가라앉았다. 이런 게 우울증인가 싶었다. 서둘러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별 이상은 없었다. 과체중에 운동 부족이니 체중조절을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는 소견이 붙어 있었지만, 뭐 한두 번 들은 얘기가 아니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며칠 식사에 신경 쓰고 좀 더 걸었을 뿐, 과체중, 운동 부족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몸은 띵띵 부었고,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이 병원 저 병원 순례하고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것을 먹어봤지만, 몸은 그대 로고 약봉지만 쌓였다.
우여곡절 끝에 믿을만한 가정의학과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식이요법과 함께 ‘PT’를 처방했다. 그냥 운동이 아니라 꼭 ‘PT’를 등록하라고 했다. 번아웃 된 몸은 고강도 운동으로 깨워야 하는데, 혼자서는 잘 안된단다.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돈이 PT에 쓰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사의 처방이니 어쩌겠나? 집 앞 체육관에 가서 PT를 등록했다.
운동은커녕 움직이기도 싫은 몸을 이끌고 체육관에 갔다. 트레이너에게 PT는 처음이고, 운동을 싫어하는 데다 최근 몇 달 사이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전신 거울 속 나는 시작도 전에 지쳐 보인다. 스트레칭을 하는 내 몸은 고목처럼 뻣뻣하다. 가끔 영상으로만 보던 스쿼트나 런지를 한 세트에 20개씩, 네 번을 하는데, 15개쯤 되면 정신이 혼미하다. 숫자를 세는 트레이너가 일부러 천천히 세는 것 같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와 엉덩이 근육들이 이게 웬 난리냐며 몸부림친다. 한 세트를 마치고 허리를 폴더폰처럼 접은 채 헉헉거린다. 남은 것은 세 세트. 세 세트는커녕 한 번도 더 못 할 것 같다. 슬쩍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0분이 지났다.
PT 이틀째, 체육관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첫날의 운동으로 팔다리 여기저기가 당기고 쑤신다. 운동하기 싫은, 혹은 못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내일까지 마무리해야 할 원고는 반도 못 썼고, 식사 시간도 애매하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시간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싶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부족한 잠이나 채우면 딱 좋겠다만, 트레이너와의 약속을 깨기 싫고 무엇보다 일주일 뒤 만나야 할 의사 얼굴이 떠올라 꾸역꾸역 간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된다.
10대 후반부터 (안 좋은) 다이어트를 반복했다. 돌이켜 보면 건강에 위협이 될 만큼 비만은 아니었는데 왜 그토록 마른 몸에 집착했을까. 한 번 들어서자 멈출 수가 없었다. 의지력이나 지적 능력과도 상관없었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재력이 충분하고 대중의 시선을 받는 사람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블랙홀이었다. 마흔이 훨씬 넘어서야 그 미련한 루틴을 멈췄지만, 어느새 내 몸은 살이 찌기 쉬운 체질로 변해 있었다. 길고 다양한 다이어트 경험에서 배우고 익힌 내용으로 박사논문도 쓰겠다는 농담을 했다. 10년 전에는 타국에서 크게 아픈 이후 <동의보감>을 만나 꽤 진지하게 몸을 탐구했다. 조금만 젊었으면 한의대라도 갈 기세였다. 한의대는 가지 않았지만 내 몸에 대해서는 제법 알게 됐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생애 첫 PT를 받으며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 몸의 모든 현상이 낯설고 생소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식의 말을 싫어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화자의 취지와 상관없이 내용 일부에는 공감한다. 몸이야말로 확실한 내 삶의 현장이라는 것. 신체와 정신은 둘로 나눠질 수 없다는 것. 지금 내 몸의 상태가 그대로 나라는 것. 트레이너, 가정의학과 의사, 식이요법과 함께 하는 일상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내 몸을 만들고 있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