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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가족과 운동하기 vs 가족과 거리두기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엄마와 아들…. 2인이 함께 PT를 받으면 할인 혜택이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딸과 운동하는 엄마를 보면 부럽다. 누가 봐도 모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닮은 눈매에 비슷한 운동복을 입고 와서, 서로 자세를 봐주며 칭찬하고 격려한다. 보통은 딸이 엄마보다 능숙하고 안정적이다. 딸들은 스마트 기기 사용법을 설명해 줄 때처럼 당당하고 엄마들은 다소곳이 귀를 기울인다.  

    

물론 평화가 늘 지속되는 건 아니다. 서로 자세를 지적하다가 한쪽이 벌컥 화를 내기도 하고 누가 맞는지 확인해 보자며 트레이너에게 달려가기도 하고, 급기야 체육관 끝에서 끝으로 떨어져 운동하다가 다시는 엄마랑(딸이랑) 같이 운동 안 한다며 한쪽이 먼저 휑하니 나가는 일도 있다. 가족끼리 무언가를 함께 하거나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공부, 운전은 당연하고 운동도.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과제를 보여 주면 딸은 재밌을 것 같다며, 자기도 엄마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딸의 작업에 대해서 몇 마디 했다가 큰 싸움으로 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족이란 적당한 거리(물리적, 심리적 거리 모두)를 두고 서로를 믿고 응원하는 것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와 유사한 분야에서 일하는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적당한 거리두기’가 참 쉽지 않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아닌 것 같고, 영화 <사도>를 보면 21세기 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닐 페리의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아들에게 강요하면서 이 모든 것이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는 천재인 줄 알았던 늦둥이 아들이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무술과 그림 그리기에만 치중하자 아버지 영조는 미움을 품는다. 아들을 미치광이로 만들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서조차 영조는 “그게 다 너 제대로 된 왕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노라 얘기한다.     

 

이들은 각각 260여 년 전, 70여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고 게다가 <사도>는 궁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이지만, 자식과 거리를 두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자녀를 위한 것이라 착각하는 부모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재현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유난스러운 입시경쟁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려운 부모와 자식 관계는 더 밀착된다.      


우리나라에서 입시 준비는 부모와 수험생의 팀 프로젝트다. 부모는 학원 일정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로, 늦은 시간 귀가를 돕는 운전사로, 사교육비를 지원해야 하는 후원자로 자녀와 함께 달린다. 그 과정에서 부모에게서 떨어져 스스로 서겠다는 몸부림의 시기인 사춘기에도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거리를 둘 수 없다.     

 

체육관에서 투덕거리던 모녀를 보며 시작된 상념이 길어졌다. 내 아이는 이제 다 커서 나를 떠났지만 내 앞에는 항상 20대인 학생들이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다. 처음엔 ‘적당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그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지금도 종종 헷갈린다. 그래서 <사도>나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를 볼 때마다 뜨끔 한다. 그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자식/제자와의 거리 두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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