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우리 사회의 공기가 훼손되고 있다

체육관 거울 뒤로 젊은 남자가 보인다. 잠시 후 그보다는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다가간다. 젊은 남자가 흠칫 놀란다. 나이 든 남자가 뭐라고 얘기한다.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둡다.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음악에 덮여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싸움 나기 일보 직전의 팽팽함이 느껴진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함께 어딘가로 나간다. 어디 가는 걸까? 불안하고 궁금해서 운동에 집중이 안 된다.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방금 두 사람, 싸우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보였다고 했더니 전혀 아니라며 웃었다. “함께 등록한 친구 사인데 오랜만에 만나서 할 얘기가 많았나 보다.”라고 했다. 체육관을 둘러보니 두 사람은 다른 쪽에서 나란히 운동하고 있었다. 나는 왜 평범한 지인 사이의 대화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오해했을까?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져 체육관 전체가 위험해지는 장면을 상상했을까?      


그날 분당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서 흉기 사고가 있었다. 나는 사고 일주일 전에 같은 곳을 방문했었다. 열흘 전에는 서울 신림역 골목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신림동도 내게는 긴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즈음 2호선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혼자 중얼거리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봤다. 예전 같으면 아픈 사람일까 생각했거나 위험하다면 신고를 했을 텐데, 그날은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 실제 한 남성이 2호선 지하철 안에서 흉기를 휘둘렀다.      


이들은 모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폭행이다. 그런 뉴스가 반복되자 내 주변의 공기가 바뀐 느낌이다.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늦은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할 수 있는 나라. 웬만한 선진국보다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었는데 몇 달 사이에 달라졌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우리도 해 떨어지면 문밖에 나서기 두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박문호 박사에게 배운 바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느낌’이라는 단어는 과학적 용어다. ‘느낌’은 막연하고 어벙한 개념이 아니라, 대뇌 피질 전체가 관여하는 호모사피엔스 두뇌의 통섭적 활동이다. 특히 ‘기억’은 느낌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한 사회가 담고 있는 느낌이 달라지면 그 사회의 집단적 판단력이 훼손된다. 근대 역사에 나타난 극단적 사례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중국 홍위병의 만행,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다.      


왜 그런 끔찍한 대규모 살해가 일어났을까? 박문호 박사는 느낌의 축이 바꿔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느낌은 공기와 같아서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고, 공기를 마신 사람의 판단력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훼손되고 있는 공기를 방치하면 안 된다. 방관하고 침묵하면 같은 공기를 마시는 우리가 모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나치가 반인륜적 선동에 나섰을 때만 해도 그들이 끼칠 해악을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렇게 유대인을, 성 소수자를, 장애인을,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학살했다.(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207쪽)"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박문호 박사는 문학가나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들의 작품은 예측 불가한 사회를 맑고 다양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창작물을 더욱 자주, 깊이 접하며 ‘내 느낌’을 보살펴야겠다. 함께 모여 책을 읽거나 시를 낭송하는 모임을 더 만들어야겠다. 이미 일어난 묻지 마 폭행으로 더는 우리 사회의 공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이전 10화 우리는 모두 매력적인 존재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