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사과 김진우 Oct 22. 2023

습관이 운명이다

가정의학과 의사와의 마지막 진료. 몇 가지 검진 결과 모든 수치가 좋아졌다. 체중도 빠졌고 무엇보다 붓지 않으니 살 것 같다. 수면의 질도 좋아져서 아침에 눈을 뜨면 상쾌하다. 체육관에서도 몸의 변화를 느낀다. 힘들던 운동이 수월하다. 몸이 받쳐준다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무리했던 모양이다. 이석증을 동반한 토사곽란이 왔다. 일주일 정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의사인 친구가 전했다. “30년 동안 병이 들었다면 30년을 치료에 쓸 생각을 해라. (언더그라운드 니체, 고병권, 83쪽)” 줄어든 체중, 개선된 수치를 자신의 몸으로 체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동안은 나대지 말고 몸의 상태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내 삶의 패턴을 돌이켜 봤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뭔가에 꽂히면 주변을 살필 줄 모른다. 계획적이지 않고 막판 뒤집기가 특기다. 앞만 보고 무리하게 달리면서 에너지를 바닥까지 탈탈 털어 써 버린다. 그런 다음 한 며칠 일어나지도 못한다. 나이가 50을 넘어서 이 방법이 신체적으로 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 나서야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가라앉았던 몸이 살아나고,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고,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달렸다. 습관이 그 사람의 삶이고 운명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나마 몸이 경고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기대했던 DMZ투어 등 줄줄이 잡혀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쉴 수밖에 없었다. 한의사 친구의 말처럼 내 몸 상태에 귀를 기울였다.     

 

학생 중에서도 꼭 나 같은 아이가 있다. 초반에 슬렁슬렁하다가 중반 이후 갑자기 달린다.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창백한 모습으로 실기실을 들락거린다. 다행히 잘 마무리할 때도 있지만 삐끗하면 프로젝트 전체가 폭삭 망한다. 실내디자인 프로젝트는 제법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으로 이뤄진다. 창의적인 영역이라 한 방의 영감과 타고난 재주로 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패널과 모형에는 끝도 한도 없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체계적인 일정표로 차근차근 진행해도 학기 말이 되면 밤샘 작업이 불가피하다. 그러니 막판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를 닮은 그 아이들이 눈에 띈다. 꼼꼼하게 일정표를 만들도록 하고 학기의 초반에 더 신경 쓰며 응원한다. 그들이 나보다는 일찍 습관을 바꾸길 바란다.   

   

오늘 하루가 쌓여 내 인생이 된다. 습관을 바꾸려면 앞만 보고 달리면 안 된다. 멈추고, 서고, 앉고, 기다려야 한다. 

이전 07화 타인의 고통을 얼마큼 공감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