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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Feb 04. 2022

대부 : 아버지를 대신하다 -2-

갑작스러운 실연에 힘겨워하는 지호

  “얘가 왜 이렇게 행동이 굼떠? 서빙이라도 빨리해야지.”


  오늘따라 사장님의 신경이 예민해 보였다. 내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설거지를 하고 안주를 서빙하는데도 그는 무엇이 부족한지 자꾸만 나를 닦달했다. 실은 오늘만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형진이형과 함께 2차를 간 다음 날은 항상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그가 우리 관계를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뒷말하기 좋아하는 손님들은 “저 언니, 오늘 생리하나 보네. 지호 때문인가 봐.”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그의 마음을 후벼팠다.


  “어머, 자기는 지호 뒤꿈치라도 핥아보고 얘기하는 거야?”


  그는 그럴수록 악에 받친 듯 손님에게 대거리를 했다. 손님은 그의 말솜씨에 막혀 입을 꾹 다물고 말았고, 그는 자신만만한 듯 눈을 내리깔면서 그 손님을 향해 흥, 이라고 쏘아붙였다.     

  

  파라다이스 가라오케는 새벽 5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가끔 마감 거의 다 되어 오는 술에 쩔은 손님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런 손님을 일절 받지 않았다. 매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오후 10시쯤에 일찍 들어와 몇 병 안 먹더라도 멀쩡하게 나가는 손님을 더 좋아했다. 그런 손님들은 깔끔하고 젠틀하다면서 말이다. 문을 잠그고 테이블을 다 치우고 바닥에 물걸레질을 하고 주방에 쌓인 설거지거리를 깨끗하게 닦고 나면 아침 6시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 나와 사장님은 가라오케 근처 방 3칸짜리 34평인 사장님의 집으로 향했다. 사장님은 가라오케에 모든 신경을 쓰느라고 집안 관리에는 소홀했는데, 여기저기 벗어놓은 빨랫감이나 설거지거리는 내가 치워야 했다. 나는 물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장님, 라면에 계란 넣을까요?”

  “그래. 파도 송송 썰어넣고.”


  사장님이 욕실에 들어가 씻고 계시는 동안, 나는 라면 3개를 끓였다. 라면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계란을 깨서 국물 속에 퐁당 담그고 파를 채 썰어 그 위에 얹었다. 라면을 하도 많이 끓여봐서 그런지 이제는 이 정도는 눈 감고도 끓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장님은 퇴근하고 들어와서 라면을 끓여 드시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을 때는 라면도 귀했다고 하시면서. 라면조차 먹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셨다고 했다. 그런 사장님을 보면서 정말 나에게 아버지가 있다면 이런 분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어렴풋이 유년 시절의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가 끓여준 라면을 먹었을 때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셨고, 아버지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라면을 호호 불어 내 앞접시에 덜어주었고, 나는 배고파 허겁지겁 라면을 먹었더랬다. 그러면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천천히 먹어.”하고는 라면을 건져서 내 앞접시에 놔주었다. 그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었다.

  라면 끓인 냄비를 냄비 받침대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잘 익은 김치 반찬통을 꺼냈다. 마침 사장님이 욕실에서 민소매티와 반바지 차림으로 나오셨다. 사장님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다.


  “식사하세요.”

  “그래.”


  사장님이 젓가락으로 라면을 떠서 앞접시에 놓고 드시기 시작하자, 나도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건졌다. 혼자 갈 곳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했을 때 혼자 먹었던 라면보다 사장님과 함께 먹는 라면이 더 꿀맛처럼 맛있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이제야 비로소 정착한 듯한 느낌이랄까. 더욱이 소속감이 생겨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내게 물어왔다.


  “형진씨랑 연애는 잘돼가니?”


  사장님이 아무런 맥락 없이 대뜸 묻는 통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나는 뜸을 들이면서 쭈뼛거렸다.


  “음... 잘 되어가요.”

  “좋은 사람인 건 맞는 거니? 얼굴 반반하고 돈 많은 것들은 조심해야 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어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힘들게 하면 나한테 얘기해. 혼내줄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말없이 라면만 먹었다. 잠시였지만, 사장님이 나를 아버지처럼 보호해 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마치 친아버지 같았다. 비록 사장님과 유전적으로 얽힌 것은 없었지만, 진짜 아버지였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순간 웃음이 갈라진 입 틈새로 새어 나올 뻔했다. 반면, 사장님은 뭔가 고민이 있으신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걸까.     

 

  그렇게 파라다이스 가라오케에서 일하게 된 지, 사장님을 만나게 된 지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파라다이스는 이제 예전만큼 손님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가라오케 근처에 새로운 게이클럽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젊은 게이들은 새로 생긴 게이클럽으로 몰려들었고, 젊은 게이들을 보기 위해 중년 게이들도 따라 게이클럽으로 향했다. 각종 조명들과 앤티크한 인테리어로 퇴폐적이면서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던 파라다이스는 이제는 게이클럽에 밀려 촌스럽고 고루한 분위기만을 보여주게 되었다. 

  손님들이 대거 이탈하는 현상이 생기자, 사장님은 대대적으로 인테리어를 보수했는데, 그것 또한 앤티크한 느낌이어서 일렉트로닉한 느낌을 연출한 게이클럽에 미치지 못했다. 중년 게이들만 믿고 있던 그의 실책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래도 나름 새로운 직원들을 기용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도 했다. 그는 중년들이 좋아하는 20대 초반의 직원들을 영입해 재기를 꾀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게이클럽을 찾는 중년들에 비해 파라다이스를 찾는 중년들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또한 최근 들어 형진이형이 가게를 찾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가 내게 연락하는 횟수도, 2차를 나가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가게를 찾았고, 2차를 함께 나가더라도 섹스는 하지 않고 나를 안고 자기만 했다. 내가 다음날 일어나도 그의 쪽지는 없었고, 룸서비스 또한 차려져 있지 않았다. 나는 달라진 그의 행동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의 일이 끝날 무렵인 저녁 6시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스피커 너머로 통화음이 계속 들려왔지만, 그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형진이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파라다이스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는 슬며시 불안과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전화도 받지 않고, 파라다이스에도 발걸음이 뚝 끊긴 걸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관심이 게이클럽 같은 곳으로 향하게 된 걸까. 어쩌면... 형진이형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건가. 아니, 애초에 나를 사랑하기는 했던 건가. 그렇게 수많은 밤들을 나와 함께 보내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형진이형이 아니던가. 이렇게 쉽게 떠날 거였다면 왜 그렇게 살뜰히 나를 챙기고 배려했단 말인가. 


  나는 이제 나에게서 이별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가라오케 접대부라서? 내가 돈 받고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파는 일을 해서 그런 건가? 아니, 애초에 가난하고 출신 성분도 알 수 없는 고아라서? 그래, 그럴 것이다. 재벌의 후계자, 짱짱한 대기업의 대표,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있는 남자.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연애였다. 그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상대는 아무런 연락도 없고, 이렇다 할 변명조차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 벌써 상상하고 예측하면서 원인 분석과 판단까지 하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자,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괴감에 빠졌다. 첫사랑이 이렇게 아픈 것이라면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내가 그의 외모와 신분을 사랑했지만, 그의 친절과 배려 또한 사랑해마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그와의 이별은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갑자기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속에 갇혀버린 내가 너무나 하잘것없이 느껴졌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내게 의미가 없어졌다.     


  한 달째 파라다이스에 일하러 나가지 않았다. 나는 사장님의 집에서 폐인처럼 일어나서 잘 때까지 계속 빈 속에 술만 마셨다. 술이 떨어지면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사장님의 이름으로 외상을 달아 새로 술을 가져와 마셨다. 소주든, 맥주든, 양주든, 막걸리든 술이면 가리지 않고 마셨다.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나를 안으로 가두기만 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다, 하잘 것 없는 존재다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반복해 재생되기만 했다. 그런 생각으로 술을 마시게 되면 꼭 끝에는 토를 하거나 필름이 끊기고야 말았다. 먹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토를 하면 위액이 목으로 넘어와 흰 액체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고, 그럴 때면 속이 메쓰거운 것을 넘어 쓰라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계속 술을 마시다 보면 필름이 끊겼고, 정신이 다시 돌아와도 나는 미친듯이 술을 목으로 넘기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은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지만, 나는 도저히 그 술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내 상실감과 자격지심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었다. 술을 마시는 것 외에는. 그렇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 마셔. 이러다 큰일 나겠어.”


  새벽 6시. 사장님이 파라다이스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너저분하게 널린 술병들 사이에서 소주병을 들고 병째로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와 병을 뺏으며 말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거 놓으세요.”

  “이러다가 지호야 너 죽어. 알아? 이 녀석아.”


  사장님의 눈에는 어느 순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힌 동공은 술에 절어 있는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도저히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을... 나는 애초부터 글러 먹은 놈이었고, 애초부터 사랑 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동정조차 받을 수 없는 하찮은 인간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술에 절어 있었을까.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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