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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Feb 04. 2022

대부 : 아버지를 대신하다 -3-

비로소 가족이 된 지호와 춘섭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주변이 온통 흰색으로 되어 있는 병원. 그곳에는 사장님도, 파라다이스 직원들이나 손님들도 없었다. 정신이 든 나를 보러 온 것은 의사와 간호사였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지호씨.”

  “여기가 어디죠?”

  “여기는 00정신병원입니다. 동거인 김춘섭 씨의 신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이곳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하게 될 겁니다. 치료 프로그램에 잘 따라주셔야 퇴원하실 수 있어요.”


  말을 마치고 의사는 병실을 나가고, 간호사가 남아 링거를 조정한 뒤 역시 병실을 나갔다. 나는 다시 병실 침대에 혼자 남았다.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술을 마셔서 없어질 나의 상실감과 자격지심이었다면 죽는 게 나을 수 있었지만, 그것들은 술을 마신다고 사라질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술을 마실수록 그 감정의 덩어리들은 기승을 부리면서 나를 더 옥죄고 괴롭혔다. 


  어렸을 때 나의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상실감. 그것은 나에게 낙인과 같은 것이었다. 파라다이스에 오기 전에도, 오고 난 후에도 항상 느끼고 있던 감정인 자격지심.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왔다. 그렇게 의심해왔던 내게 손을 내밀어준 것은 사장님과 형진이형이었다.

  사장님은 가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 바라보면 가게 매상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직원들이 좀 더 술을 많이 마셔서 테이블 매상을 올리고 손님들을 유혹해 더 많은 손님을 불러 들이도록 눈치를 줬다. 사장님은 나에게도 그랬다. 나의 인기를 이용해 손님 장사를 했고, 형진이형에게도 2차를 흥정하며 그렇게 장사를 했다. 어찌 보면 형진이형이 나를 떠난 것이 사장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사장님의 방식이 형진이형을 질리게 한 걸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장님은 나를 이 흰색으로 도배된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 사장님은 나를 안 좋은 곳으로 내버렸을 뿐인데, 내가 그동안 아버지 같다고, 자상하다고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장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임지호 환자분, 김춘섭 씨 면회 오셨습니다.”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면회실로 향했다. 흰 색의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면회실은 마치 교도소의 그것처럼 창문과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창문에는 말을 들을 수 있게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는데, 창문의 반대편에 사장님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왔니?”


  나는 의자에 앉아 사장님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반면에 사장님은 창문 가까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몸은 좀 괜찮고? 네가 술을 많이 마셔서 어쩔 수 없었어...”     


  술을 많이 마셔서 어쩔 수 없었다는 사장님의 말을 듣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 저를 데리고 온 의도가 뭐예요? 제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셨던 건가요?”

  “아니야, 내가 왜 네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겠어. 단지 네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돼서...”
  “사장님은 항상 그러셨죠. 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도대체 얼마나 저를 더 망쳐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내가 왜 너를 망쳐? 난 단지 내 아들 같은 마음에서 그랬던 거야.”

  “아들 같은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려 놔요? 당신은 내 친부도 아니잖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세게 후려쳤다. 창은 흔들리면서 부르르 진동을 일으켰다. 내 옆에 서 있던 보호사가 내게 다가와 나의 팔을 잡아당겨 제지했다.     


  “이런 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보호사가 내 팔을 잡아채든 상관하지 않았다. 사장님에게 화가 날 대로 화가 난 상태여서 앞에 보이는 그에게 달려들려고만 했다.

  사장님 쪽에 있던 보호사도 사장님에게 다가왔고, 사장님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보호사와 함께 면회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분노를 조절하지 않고 말썽을 피운 대가로 침대에 압박되어 묶여 있어야 했다. 그것은 하루동안 지속되었고, 나는 묶여 있는 동안 사장님과 형진이형에 대해 생각하며, 계속 생각을 곱씹었다.

  더 이상 이렇게 묶여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장님과 형진이형을 만나려면 이 공간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달콤한 복수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나는 그 다음날 속박에서 벗어난 다음부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치료 프로그램에 협조적이었고,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병원에서 퇴원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병원 관계자들에게도 협력적이었고, 환우들과도 최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주치의는 달라진 나를 보고 신뢰를 가졌고, 나에게 운동을 권했다. 나 역시도 운동을 할 계획이었기에 나는 밤낮 가리지 않고 병실에서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 등 맨손운동을 지속했다.


  6개월이 되었을 때, 내 몸은 딱 보기 좋을 정도로 모양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도 나에 대해 퇴원이 가능함을 공공연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2번의 외출과 2번의 외박을 거쳐 나는 퇴원 허가를 받았다. 나는 6개월만에 백색의 병원을 나와 환평상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입원 당시 입고 왔던 옷은 이제 내 몸에 딱 붙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몸이 불어나 있었다. 병원의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시간이 나를 건강한 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나서자마자, 지갑을 열어 3만원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파라다이스 가라오케로 향했다. 십여 분만에 도착한 파라다이스 인근 대로에는 낮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어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식당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낯익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파라다이스인근 K호텔에서 나오고 있는 형진이형이었다. 형진이형은 앳되어 보이는 젊은 남성과 함께 호텔을 나오고 있었는데,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둘은 연인인 것처럼 다정해 보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들에게 다가선 그 순간, 형진이형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형진이형은 주먹 한 방에 얼굴을 감싸쥐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나는 가차없이 형진이형의 온몸을 패대기 쳤다. 형진이형은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하면서 맞다가 내가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는 동안 얼굴을 슬며시 들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지, 지호야...”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형진이형과 그의 곁에서 112인지 119인지에 전화를 거는 듯한 젊은 남성을 내버려두고 파라다이스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낮에 보는 파라다이스의 건물은 뭔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당연히 지금은 영업시간이 아니었지만, 나는 사장님이 건물 안에 있을 거라 확신했다. 거의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장님이었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파라다이스로 가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서 문을 열어 보았다. 역시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칠흑같이 어두운 파라다이스의 복도를 따라 내려가다 저쪽에서 스탠드 불빛이 비치는 것을 발견했다. 스탠드 불빛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태이블에는 사장님이 앉아 있었다.

  사장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지호야... 내가 죄인이다...... 날 용서해다오.”     


  사장님의 왼손에는 날카로운 주방용 칼이 들려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보기로 한 게 잘못이었어. 잘하지도 못할 것을...”     


  사장님은 칼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지호야. 너를 힘들게 만들어서...”     


  사장님은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나는 사장님에게 달려가 칼을 쳐냈다. 칼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분명 형진이형처럼 사장님을 죽도록 패거나 정말로 죽이려고 이곳에 왔다. 그런데 지금 이런 나의 선택을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사장님의 진심을 느껴서인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고 그걸이 죄책감이 되어 스스로 죽으려고 했던 것만 보아도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게 무슨... 지, 지호야!”

  “왜 죽으려고 한 거예요? 누가 맘대로 죽으래요?”

  “너를 이곳에서 일하게 한 것도 나고, 너를 이용해 장사한 것도 나고, 너를 형진이에게 보낸 것도 나잖니. 네가 이렇게 된 것에 내가 제일 죄인이지.”

  “그렇다고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해요?”

  “그렇지만 내 죄값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니?” 

  “죄랄 것도 없어요. 사장님이 저를 정말로 아들로 생각하시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그래, 나는 널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어. 이건 진심이야.”

  “저도 이제 알아요.”     


  한동안 사장님과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워야 할까.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안 먹었지.”

  “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 드릴까요?”

  “그래, 오랜만에 아들이 끓여주는 라면이나 먹어보자.”     


  나는 그렇게 그날 진짜 아버지가 된 사장님과 라면을 먹으러 집으로 향했다.     


  몇 년 후, 밤 10시가 넘은 시각. 길거리에는 퇴근해 귀가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그런 행렬들과는 반대로, 외딴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렬도 보인다.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들이었다. 건물의 지하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걸그룹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 계단을 내려가 보니, 노래소리는 점점 커지고 미러볼과 갖가지 색색의 조명들로 반짝이는 현대적 스타일의 천장과 벽이 보였다. 건물의 정중앙에 큰 무대가 자리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테이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침 무대에는 마이크를 들고 한창 노래를 뽐내고 있는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고음이 고조될 때마다 목의 핏줄이 굵어지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술병들이 가득했고, 과일 안주와 마른안주 등 갖가지 술안주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파라다이스 가라오케입니다.”     


  회색 정장을 갖춰 입은 20대 후반의 훤칠한 사장이 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저는 파라다이스 가라오케의 사장 임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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