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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Feb 04. 2022

대부 : 아버지를 대신하다 -1-

지호의 게이 가라오케 입문기

  밤 10시가 넘은 시각. 길거리에는 퇴근해 귀가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그런 행렬들과는 반대로, 외딴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렬도 보인다.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들이었다. 노년의 할아버지, 중년의 아저씨, 젊은 청년까지. 낡아 보이는 건물의 지하에서는 쿵짝쿵짝 트로트 노래가 짱짱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 계단을 내려가 보니, 노래소리는 점점 커지고 미러볼과 갖가지 색색의 조명들로 반짝이는 앤티크한 스타일의 천장과 벽이 보였다. 건물의 정중앙에 작은 무대가 자리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테이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침 무대에는 마이크를 들고 한창 노래를 뽐내고 있는 배가 튀어나온 아저씨가 서 있었다. 고음이 고조될 때마다 그의 배가 들쑥날쑥 기이하게 움직였다. 테이블에는 술병들이 가득했고, 과일 안주와 마른안주 등 갖가지 술안주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머, 훈남이 왔네?”


  가게 프론트 앞에 서 있던 중년의 한 남성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반갑게 맞았다. 그는 머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위아래로 노란색 정장을 갖춰 입었는데, 그다지 옷을 잘 입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튀어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그는 나를 안쪽으로 데려와 비어 있는 테이블로 거의 밀어 넣다시피 앉혔다.     


  “훈남 청년, 술은 뭐로 드릴까?”

  “맥주요. 맥주 주세요.”


  나는 아까부터 몹시 갈증이 났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가더니 이윽고 맥주 세 병을 잔과 함께 가지고 나왔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병뚜껑을 딴 그는 맥주잔에 콸콸 거품이 가득한 맥주를 쏟아부었다.     


  “청년이 여긴 어떻게 왔어?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고 왔어요.”


  나는 목이 마르던 차에 맥주잔을 받아들고 잔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그는 흥미로운 듯 계속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얼굴도 반반한데, 여기서 일해 볼 생각 있어?”

  “네. 그래서 왔어요. 갈 곳이 없어서...”


  갈 곳이 없다는 말을 듣자, 중년 남성이 혀를 차면서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했다가 쫓겨났구나? 여기 오는 젊은 애들 보면 대다수가 그렇더라.”

  “아뇨... 저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언제?”

  “잘 기억이 안 나요. 보육원에서 커서...”


  그는 또다시 혀를 끌끌 찼다.


  “저런... 쯧쯧. 보육원 나와서는 뭣하고 지낸 건데?”

  “이곳저곳 돌아다녔어요. 고시원 생활도 했었고,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도 해봤고...”


  중년 남성은 여전히 혀를 차면서도 그의 시선은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고?”

  “네. 없어서...”

  “없어서? 여기서 일해보려고?”

  “네.”     


  중년 남성은 별안간 깔깔깔 웃어댔다. 그러면서 그는 양손으로 나의 손을 끈적하게 만지기 시작했다.


  “어유, 얼굴 반반한 자기가 우리 가게에서 일해주면 당연히 땡큐지.”     


  그때부터였다. 파라다이스 가라오케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어이, 예쁜이! 이리 와서 앉아 봐.”


  무대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의 아저씨들이 서빙을 하고 있던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맥주와 마른안주를 한 테이블에 놓은 다음, 무대 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테이블에는 네 명의 중년 남성들이 과일 안주와 발렌타인 7년산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나는 테이블 가운데에 빈 의자로 가서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호입니다.”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쁘네. 이리 와 봐. 거시기가 얼마나 큰지 볼까?”


  한쪽 소파에 앉아 있던 산적 두목같이 생긴 사람이 나를 끌어다 앉히고는 두툼한 손으로 내 하체를 거침없이 더듬었다. 나는 순간 놀라서 그의 손을 치워내려 했지만, 그의 투박한 손은 내 중요부위를 마음대로 만져대고 있었다.


  “이 자식, 꽤나 큰데? 한 번 빨아나 봤으면 좋겠는데.”

  “아이고, 우리 가게 에이스한테 무슨 짓이에요?”


  그때, 사장님이 화들짝 놀라면서 테이블로 다가와 쭈뼛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를 일으켜 세운 그는 팔짱을 끼고 테이블의 아저씨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 아이 2차 데리고 가려면 꽤나 비쌀 텐데, 어쩌나.”

  “얼만데, 얼만지나 얘기해 보슈.”


  아까 그 산적 두목같이 생긴 남자가 그에게 대거리했다.

  

  “글쎄... 2장은 주셔야죠.”

  “20만원?”

  “아뇨. 200만원이죠, 당연히.”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간드러지게 웃었다.


  “뭔 2차 나가는데 200만원이나 해?”

  “그래서 우리집 보배랍니다. 호호호.”


  그의 말에 손님들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산적두목처럼 생긴 아저씨는 어이 없고 재수가 없다는 듯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 때, 사장님은 나에게 슬며시 눈짓을 보냈다. 주방으로 들어가 안주를 다시 서빙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테이블의 시선들이 나에게 꽂혀 있었다.     


  “오늘도 수고했어들. 자, 일당 한 명씩 받아 가.”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오늘은 영업 종료시간보다 일찍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남아 있던 종업원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마른, 30살의 형이었는데, 여성스러워서 손님들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키가 아담하고 약간 통통한 20대 초반이었는데, 통통하거나 뚱뚱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그를 자주 찾았다. 나는 이 두 명의 중간 정도인 178cm 정도 되는 키에, 적당한 체격을 갖춘, 말 그대로 스탠다드형이었다. 나는 주로 사장님의 명령으로 서빙만 했는데, 서빙만 하더라도 게이들의 게이다(게이들의 레이다망)에 어김없이 걸려들어 그들의 눈으로 인해서든, 말로 인해서든, 행동으로 인해서든 하루에 한 번씩은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이 잘생겼다거나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고아 출신의 가라오케 서빙 직원이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외모를 따져봐도 눈이 큰 편도 아니었고 몸이 근육질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손님들은 나를 감싸고 도는 사장님 때문에 약이 올랐는지 나에 대해 집요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한때는 이런 소문도 돌았다.


  “쟤가 파라다이스 사장 애인이라며? 사장새끼 물건 하나 잘 골랐네.”


  뒷말하기를 좋아하는 게이들은 내가 사장의 애인이라며 몰래몰래 뒤에서 험담을 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 소문이 부풀어지다 못해 뻥뛰기급이 되어 나는 급기야 남창이라는 소문까지 났다.


  “얘, 오늘은 네가 때짜였니? 아니면 마짜였어?”


  때짜니, 마짜니 하면서 성향에 대해 노골적으로 묻는 무례한 손님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일 없다는 듯이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재미없다는 듯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파라다이스 가라오케는 처음에 봤을 때는 파라다이스처럼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반짝이는 유흥주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여기서 몇 개월을 일해보니 이곳처럼 퇴폐적인 환락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이 고된 건 아니었다. 매번 서빙과 설거지, 화장실 청소 등 잡일만 하던 나는 손님들과 술을 마셔서 만취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머지 2명의 직원들은 매일 술에 잔뜩 취해서 손님들과 시비가 붙기도 했고, 술이 취한 채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고성방가를 해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사장님은 손님들에게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직원들을 집으로 보내거나 한쪽 소파에 눕혀 재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진이형이 파라다이스 가라오케에 찾아왔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가라오케 입구로 내려오는 그를 본 순간, 나는 한 눈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속눈썹이 긴 눈, 샤프하고 날렵한 콧날, 앵두빛 입술, 깔끔하게 빼입은 정장, 그의 손목에서 빛나고 있는 고급 명품 시계, 그의 발에 꼭 맞는 듯한 명품 구두. 가난한 고아인 나와는 다르게 그의 모든 것이 고급스럽고 멋져 보였다.


  “어머, 이 훈남 손님은 누구야? 어서 이쪽으로 앉아요.”


  사장님은 어디서 이런 월척이 왔냐 하면서 서둘러 그를 테이블에 앉혔다. 그가 이동할 때마다 가게 전체가 이동할 것처럼 테이블마다 앉아 있던 손님들이 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그중에 한 명이었는데, 서빙하다 말고 그를 바라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사장님에게 가게에서 가장 비싼 양주 한 병을 주문했고, 사장님은 그가 통이 크다고 생각했는지 흡족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드디어 네가 나갈 차례가 된 것 같다. 저 손님이랑 같이 술 먹으면서 분위기 좀 맞춰줘.”


  나는 주방에서 양주 세팅을 해 주는 대로 받아서 과일과 함께 그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지호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매너 있게 인사하고 신기한 듯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에게 양주 한 잔을 권했다. 그는 스트레이트 잔을 들어 내가 따르는 양주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독한 양주를 바로 들이켤 수 있다니, 술을 잘 마시는 모양이었다.


  “여기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얼마 안 됐어요. 일한 지 3개월 정도 됐어요.”

  “내가 좋아하는 외모예요. 그쪽.”

  “감사합니다. 손님도 잘생기셨어요.”


  원래부터 내 외모에 대해 잘생겼다는 확신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이 그저 인사치레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가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가 조금이라도 내게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무슨 일하고 계세요? 아, 이런 말 하면 실례인가요?”

  “아뇨. 자영업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회사 운영하고 계신...?”


  나는 그의 명품 시계와 구두를 보고 그가 단순히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는 계속 물어보는 나에게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네. 작은 회사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만나 기뻐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그의 잔에 계속 양주를 따랐다.

  양주를 따른 지 몇십분이 지났을까. 벌써 한 병이 바닥이 나 있었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와의 긴장감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벌써 한 병이 바닥난 것이 아쉬웠다. 그를 좀 더 자리에 잡아놓지 못한 내 탓일지도 몰랐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님을 불렀다. 나는 그가 가는 줄 알고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할 준비를 하려던 찰나, 그가 사장님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 그러자, 사장님이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얘는 2차 비용이 좀 더 나가는데......”

  “원하시는 금액만큼 드리겠습니다.”

  “그럼 50 어떠세요?”

  “좋습니다. 50으로 하죠.”

  “얘, 진호야. 오늘 네가 2차 좀 뛰어야겠다.”


  사장님은 나를 주방으로 불러 2차를 나가게 되면 손님이 다음번에도 가게에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콘돔은 필수니, 콘돔을 꼭 사용하라고 했다. 사장님은 가게 밖을 나가 그 손님을 만나려고 하는 나를 계속 잡더니, 이상한 사람이면 바로 돌아오라고도 했다.


  “나는 네가 원치 않는 관계는 안 했으면 좋겠다.”


  사장님은 다른 두 직원들에게는 2차 나가라고 그렇게 닦달했는데도 나에게는 두 번 세 번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일러주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사장님의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새로 온 손님, 그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는 내 한쪽 어깨를 끌어안고 가라오케 근처의 작은 호텔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호텔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마친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향긋한 방향제의 향에 취했다. 그것은 코가 뻥 뚫릴 듯한 시원한 향이었다.


  “지호 씨는 내가 처음이에요?”

  “네, 넷?”

  “제가 첫경험 상대냐고요.”

  “네...”

  “그러면 첫 경험 좋은 기억으로 남겨줘야겠네.”


  708호 앞. 전자키로 문을 열고 들어간 그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뒤엉켰다. 옷가지를 벗으면서 그와 키스를 나누고, 그의 입술이 내 귀와 목, 가슴, 성기, 엉덩이까지 지체할 것 없이 옮겨 다녔다. 나는 그에게 내 첫 경험을 바쳤고, 그는 내 첫 경험을 가져갔다.


  자신의 이름을 ‘형진’이라고 한 남자는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에 들러 술을 마시고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라고 해봐야 호텔에 가서 서로 몸을 섞는 게 다였지만, 나는 그와의 꿀맛 같은 단 몇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아침이면 그는 출근한다는 쪽지와 함께 호텔 룸서비스로 조식을 차려놓고 호텔을 떠났고, 나는 점심 즈음에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그의 쪽지를 발견하고 때늦은 식사를 하고는 월풀욕조에 들어가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풀었다.

  월풀욕조에 몸을 웅크리고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치 엄마의 양수 속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에 빠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 엄마는 왜 나를 버리고 떠났을까. 나는 왜 고아가 되어야만 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이 의구심이 되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고,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때쯤에는 따뜻했던 물도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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