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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Aug 02. 2022

나의 친애하는 꼬북이

나의 소울메이트, 꼬북이

  나에게는 4년을 만난 애인이자, 친구가 한 사람 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기에는 그에게 실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별명을 대신 얘기하고자 한다. 그의 별명은 꼬북이다. 꼬북이라는 별명은 내가 지어준 것인데, 그의 생김새가 마치 거북이 또는 포켓몬스터의 꼬부기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굴에 주름과 여드름 자국이 유달리 많았지만, 눈은 말똥말똥하니 귀여웠고, 입은 항상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꼬북이, 꼬북이 계속 불러댔는데, 그도 그런 별명이 싫지는 않았는지 나에게도 몽실이(살이 몽실몽실해서 지은 별명)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별명이자, 애칭인 이 이름들을 서로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가지게 되었다.


  그를 만난 것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인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페이스북에는 게이들이 사용하는 계정들이 있는데, 일명 '게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게북에서 친구 추가를 하다가 꼬북이를 알게 되었다. 꼬북이는 내가 올린 게시물마다 친절하게 긴 댓글을 달아주고, 나에게 메신저로 안부 인사도 보내는 정말 친절한 금자 씨, 아니 친절한 꼬북 씨였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매번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는 그에게 나는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와 페이스북 메신저(이하 페메)로 대화를 하는데, 그가 내 사진이며, 내 글에 대해서 폭풍 칭찬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의 칭찬이 듣기 싫지는 않아서 그와 계속 대화를 하면서 점차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덧 그렇게 우리는 페로 전화통화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포항 사람이었는데, 흔히 경상도 사람들이 그렇듯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는데, 사투리를 쓰고 있는 말투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좀 더 그에게 호감이 갔고, 그 역시도 엉뚱한 말을 잘하고 활발한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2018년 1월 24일, 우리는 얼굴도 보지 않은 채로 화상채팅으로만 서로를 보고서 애인으로 사귀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이 사람이 너무나 가슴 벅차게 좋아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애인으로 사귄 지 얼마 안 돼서 꼬북이는 포항에서 서울로 자취방을 얻어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 자주 보게 되겠네."

  "응, 응."


  2018년 1월 29일 아침, 우리는 생뚱맞게도 내가 다니고 있는 명지전문대학 예체능관 9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왜 그랬는가 하면,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29일 우리는 코엑스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전날에 스케줄을 보니, 대학 재등록 일자와 겹쳐 있던 것이었다. 중요한 학사일정이기에 그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그가 선뜻 대학에서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에게 고마우면서도 그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9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검은 코트를 입고 나온 그를 와락 품에 안았던 것이었을까. 물론 그는 몹시도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했지만 말이다.


  학사 일정을 끝내고, 우리는 내 단골 일식집인 '히카리'에 가서 냉우동 세트와 우동 세트를 먹었다. 우리는 사귀면서 이 '히카리'라는 일식집에 한 열 번은 넘게 간 것 같다. 그만큼 이곳의 우동이 맛이 탁월했고, 사이드 메뉴로 함께 나오는 새우튀김, 유부초밥, 간장 계란이 정말 별미였기 때문이었다. 꼬북이는 맛 평을 참 잘했는데, 뭔가를 먹고 나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맛에 대해서 그림 그리듯 묘사를 했다.


  예를 들어, 냉우동에 대한 맛 평은 이랬는데,


  "우선 달짝지근하고 적당히 짭조름한 맛이 나는 간장에, 달콤하고 알싸한 맛이 나는 간 무가 들어가서 굉장히 감칠맛이 나는 간장 소스가 되었어. 얼음 위에 올려져 있는 탱글탱글한 면을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입에서 뭐랄까 씹으면서 행복감이 느껴져. 그리고 자꾸 입으로 면발이 쉴 새 없이 들어가게 만드는 맛이야."


  또, 새우튀김에 대해서는 이러한 입체적인 맛 평을 했다.


  "너무 바삭바삭하고 깔끔하게 튀겨진 새우튀김이 입 속에 들어가면 바사삭하면서 안쪽의 새우살이 부드럽게 씹히면서 간장에 찍어 먹으면 풍미가 끝내줘. 튀김 소스와 쯔유 소스를 비교하자면 쯔유 소스가 감칠맛, 그러니까 좀 더 단맛이 은은하게 입 안에 맴돌고 조금 더 입 안에 간간하게 기분 좋은 짠맛이 더 느껴져서 새우튀김과 더 잘 맞는 것 같아."


  한편, 간장 계란에 대한 평도 꽤나 훌륭했다.


  "촉촉하게 반만 익은 노른자만 보고 있어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데, 그걸 입에 넣으면 그 노른자랑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흰 자가 같이 입 안에서 합쳐져 사르르 녹아버리고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은 아쉬운 맛이야."


  이렇게 꼬북이는 맛을 섬세하게 캐치하는 능력과 맛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꼬북이는 맛있는 음식도 잘 만들어서 나에게 해 주었다. 그가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은 바로 파스타였는데, 종류별로 크림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오일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명란 파스타 등 그의 손에서 수많은 파스타들이 만들어지고, 나의 뱃속에 들어가 어마어마한 살로 둔갑해 버렸다. 그의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은 좋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살이 쪄 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체중관리를 안 하고 있었다는 맹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의 요리들은 나에게 충분히 행복감을 선사했고, 그 역시도 나에게 요리를 해 주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해주었다.


  "완전 맛있어!"

  "나는 네가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해."


  그는 파스타 외에도 여러 가지 요리들을 나에게 만들어 주었는데, 부대찌개 라면이라든가, 명란 삼각김밥, 새우 카레, 콩나물 잡채 등 그가 개발한 새로운 요리들을 나에게 먹여 주었다. 그가 만든 요리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애했던 음식은 바로 짬뽕 파스타였는데,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라면 수프를 적당히 섞어 짬뽕의 맛이 우러나오게 만든 파스타였다. 그 파스타는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먹고 싶어지는 중독성이 있었다. 내가 짬뽕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어우러지는 환상의 맛이었다. 그와 헤어진 지금도 그 음식이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아, 결국 그와 4년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와 헤어진 것은,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그에게서 항상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무선 이어폰, 시계, 머그컵, 책, 꽃, 편지 등 다양한 선물을 매번 내게 주었지만, 내가 그에게 준 선물은 달 모양의 무드등과 초콜릿, 꽃, 생일 케이크 정도가 다였다. 그가 준 어마어마한 것들(선물뿐만이 아니라, 그의 예쁜 마음)에 비해 내가 그에게 해 준 것은 극히 일부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가 왜 나를 떠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새끼(새끼라고 부를 만도 하다)였고, 그는 성인군자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그에게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 번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경찰서에 연행되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의 연락을 받고 만사 다 제쳐두고 그 경찰서로 가서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나와 그는 지인을 통해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찾아가 300만 원이 넘는 수임료(물론 돈이 없던 우리는 가장 싼 값의 수임료를 냈다)를 내고 무혐의 판정을 받아냈다. 우리가 역경 속에서 함께 이뤄낸 쾌거였다.


  또 한편으로 그에게 가장 아킬레스건은 그의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뚱뚱한 자식을 못마땅해하셨고, 어렸을 때부터 매번 체중을 재고 지독하게 살을 빼도록 만든 분이었다. 그녀는 그가 살이 조금이라도 적정 체중을 벗어나면 독설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매까지 드셨다. 그래서 그는 항상 체중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다. 아니, 실제로 그 외에도 청결 강박, 점검 강박 등 강박 증세가 있는데, 어머니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정도로 그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의 외삼촌이 돌아가셨는데, 그는 외삼촌이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보다 앞서서 나에게 하는 말이,


  "엄마가 나 살찐 거 알면 또 화내실 거야. 어떡하지?"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펑퍼짐하고 사이즈가 큰 내 옷들 중 검은 옷을 골라서 그에게 입혀서 조문을 보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조금 살이 쪘네, 하시면서 약간 눈살을 찌푸리셨지만, 더 크게 화를 내지는 않으셔서 그걸로 무마가 되었다고 했다. 그 뒤로도 그의 체중 스트레스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되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도움을 주면서 우리는 함께 극복해냈다.


  그와 보낸 4년 동안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의 자취방에서 동거 동락하면서 1년 동안 살았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내가 한창 병증이 있었을 때, 그는 부단히도 나의 무기력증과 병증을 이겨내도록 애를 썼다. 무기력증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며칠 동안 씻지도 않아 입냄새가 나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을 때에도 그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결국 그와 산책을 나서게 되면서 나는 점점 무기력증을 이겨낼 수 있었고, 병원을 다니면서 병증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도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헤어진 후에도 지금처럼 친구로, 아니 소울 메이트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별한 연인을 어떻게 친구로 둘 수 있냐고. 정말 그러한가. 애초에 연인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면 친구로라도, 우정으로라도 남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정이든, 애정이든 다르게 보면 달리 보이는 법이다. 애정을 쏟았던 대상에게 우정을 쏟지 못할 법이 없겠는가.


  어쨌든, 나와 꼬북이는 서로를 '몽실이'와 '꼬북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면서 소울 메이트 관계로 매우 잘 지내고 있다. 내가 힘들면 그가 도울 것이고, 그가 힘들면 내가 도울 것이다.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이며, 아주 소중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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