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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Apr 18. 2021

나를 그냥 집어 던져버려

나를 다루는 법




 나는 2013년에 재수를 했다. 그리고 지방 국립대를 갔다. 나에게 있어서 ‘이 경우는 성공한 케이스인가?’ 물어본다면 바로 답할 수 있다.


“실패했다.”


 재수하기 전에도 들어올 수 있었던 학교였다. 두말할 것 없이 실패다.     


‘이제 푹 쉬어도 돼. 그동안 고생했잖아?’

‘실패해도 괜찮아.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 다 알아. 네 잘못이 아니야.’     


 참 웃긴 게 내 지인들은 그 당시의 나를 위로하기 바빴다. 그들이 보기에는 나는 항상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항상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책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웃기게도 그들이 나를 위로할수록 더 찝찝해졌다. 왜냐고? 나는 공부한 것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만 있었거든. 한 마디로 공부하는 척만 했다.


 당연히 나도 당연히 더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부모님이 그렇게 원하던 ‘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내가 모자란 사람이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공부하는 ‘척’만 하는 내가 보였다.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있지만, 머리는 책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멍 때리는 시간, 잡생각 하는 시간, 딴짓하는 시간, 폰을 보는 시간 등등. 하루에 14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은 채 4시간도 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의 하루를 돌이켜본다. 곧 오늘은 내가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알게 된다. 오늘 수학의 정석을 얼마나 풀었는지, 영어단어는 몇 개를 외웠는지가 떠오르니까. 그때마다 나는 내일부터는 제대로 마음먹고 공부하자 다짐했다.


‘내일부터 빡세게 하자! 영어단어 몇 개 외우고! 수학의 정석 몇 페이지 풀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밤마다 의지를 다지면 뭐 하겠는가? 저녁마다 외치던 ‘내일부터’가 모여 ‘1년’이 되었을 뿐이다. 딴짓과 공부하는 척은 끝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


 더 웃긴 건,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 의지로 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내가 뻔뻔한 놈이었는지, 쓸데없이 자존감만 높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이럴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머리로는 아무리 “공부해!”라고 말해도 내 몸뚱이는 계속 딴짓만 하게 되니까. 내가 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웠다. 고작 이 정도의 유혹에 넘어가서 폰을 만지는 내 자신이 쪽팔렸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다 보니 힐링을 빙자한 무차별 위로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양심이 찔린다. 힐링이 대세가 된 몇 년 전부터는 이 불편감을 느끼는 빈도수가 확실히 증가했다. SNS만 봐도 ‘묻지마 힐링 글’이 넘쳐나거든.


‘이제 푹 쉬어도 돼. 그동안 고생했잖아?’

‘실패했어도 괜찮아.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네가 알잖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이렇게 위로해준답시고 대충 이쁜 말만 골라 놓은 글귀를 보면 반발심마저 피어난다. 내가 얼마나 고생을 안 하고 딴짓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실패할만했다. 내 잘못이 맞다. 내가 재수에 성공했다면 그것 또한 문제였겠지. 진짜 코피 터져가며 공부한 사람들의 노력을 무시하게 되는 거잖아.


“젊은 놈이 그러면 쓰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 해야지!“


 그런데 현재도 나의 단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계획표를 짜고 그 계획표대로 나를 꾸준하게 이끄는 힘이 약하다. 어른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말씀하시던데 그게 말처럼 됐으면 내가 이런 고민을 했겠는가? 물론,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성공해보기’ 등과 같은 노력도 해봤다. 결국에는 그대로였지만.




 다만, 제자리걸음은 아니었다. 약간의 편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다루는 법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시작은 정확히 2014년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며 내게 약간의 독립성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미쳤다. 당시 맛본 자유의 맛은 마치 콜라를 처음 영접했던 것처럼 짜릿했거든. 부모의 뜻대로 인생을 설계해온 나에게 있어서는 마치 신세계였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나? 내 뜻대로 살 수 있다는 건, 나를 한 마리의 고삐 풀린 망아지로 만들기 충분했다. 공부? 그딴 건 다 사라졌다. 오로지 즐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인생 뭐 있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


 속이 타는 부모를 뒤로한 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았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친구들이랑 술만 퍼마셨다. 2018년도에는 휴학을 한 후 돈을 벌어서 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글을 썼고 236페이지짜리 나만의 책을 엮어 자가 출판을 했다. 2019년도에는 대학생 태권도 겨루기 대회를 출전해보고 몽골에 태권도 교육 봉사를 하러 갔다.


‘그냥 집어 던져버려.’


 일단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 환경에 나를 집어 던져버렸다. 그러면 시골 촌놈의 특징인 적응력과 깡다구가 활성화된다. ‘내일의 내’가 그 환경에 알아서 적응하기 시작한다.


 외국 여행 자금을 모을 땐, 모든 구인사이트를 죄다 뒤져서 전부 원서를 접수했다. 계약서를 쓰고 나면 ‘내일의 내가 알아서 일하겠지’라는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을 갈 때도 일단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갔다. 단순히 ‘나도 외국에 가보고 싶다.’, ‘가보면 알겠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는 무작정 노트북을 들고서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태권도 대회를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무작정 태권도 동아리를 찾았다. 해외 봉사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신청서를 작성했다.


‘무작정 질러버리는 습관’


 무식해 보이지만 내가 나다울 수 있게 해준 습관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나를 뭐라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고마운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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