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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Feb 18. 2022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돈을 남겨야 된다




 최근 고향에 내려갔다. 부모님은 아들이 왔다고 삼겹살을 준비해두셨단다. 저녁때가 되자 밥상에 불판과 소주를 세팅했다.


치지직


 뜨겁게 달구어진 불판에 삼겹살 한 줄을 올렸다. 고기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익어간다. 뇌리를 자극하는 소리가 부엌을 점령한다. 한 면이 적당히 익었을까? 나는 대략적인 계산을 끝낸 후 고기를 뒤집었다.


“좀 있다 뒤집어야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언제나 그렇듯 고기를 굽는 나를 향해 이것저것 간섭을 하시는 아버지. 나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간섭을 받아친다. 


“너무 빨리 뒤집은거 아이가?”

“아, 좀! 그러면 아버지가 구워요.”


 나는 집게를 바닥에 내려놓고 항의를 제스처를 취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집게와 가위는 내 앞에 있고 아버지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향해 타박을 줬다.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고기를 계속 구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다 익은 고기를 가위로 자르고 불판의 사이드에 배치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다 익은 고기를 한 점 집에 입에 넣으셨다. 턱이 몇 번 움직였을까? 아버지의 표정이 불편해지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많이 빠삭해요?”     


 나는 아버지의 인상을 살피며 질문했다. 이가 안 좋으신 아버지는 딱딱한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괜찮다는 표현을 했지만 먹기 불편하실 게 뻔하다. 나는 부드러운 것들을 아버지 앞에 몰아놓았다.     


“한잔하자.”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소주병을 따서 내 소주잔을 채워주셨다. 나는 들고 있던 소주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소주병을 건네받아 아버지의 소주잔에 가득 따라드렸다.     


“짠”     


 우리는 소주잔을 들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식사를 했다. 곧 적당히 배가 불러오자 아버지께서 기분좋은 말투로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     


 20대의 젊은 남자애들도 힘들다고 죽어 나자빠지는 뱃일이 그렇게 즐겁다는 아버지. 뱃일 뿐만 아니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재첩국도 끓이고 산에 올라가 감나무도 관리하신다.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이 즐겁다고 하신다. 본인의 업을 즐긴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 말이 있는 그대로 들리지 않을까?


‘아버지는 진짜 즐거우실까?’     


 내 머리를 맴도는 수많은 의문. 단순히 자식에게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하신 말씀이 아닐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가장의 가오가 아닐지. 아직도 건재하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일지.     


 이런저런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마 그 힘든 노동을 즐거움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내 사고방식 탓이겠지.     


“그 힘든 게 진짜 즐거워요?”

“그럼. 아버지는 자신 있거든. 아버지 친구들은 지금 정년퇴직 걱정하고 뭐 먹고 살까 고민하는데 아버지는 정년이 없잖아.”     


 자신감까지 넘치는 아버지. 물론 아버지의 말씀은 맞다. 의지만 있다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자영업의 장점이니까. 다만 촌에서 자라며 다 늙은 할아버지들이 죽기 전까지 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왜 저럴까. 그냥 집에서 쉬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아버지도 그런 삶을 살려고 하시나 보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적당히 해요. 굳이 그렇게 빡세게 안 해도 되잖아요.”

“아니야. 아버지는 돈 많이 벌거야. 나중에 건물도 세울 거고.”     


 끝까지 자신감을 내뿜는 아버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옛날보다 팔다리가 많이 얇아지셨다. 머리털도 좀 빠지셨고 이도 안 좋으시다. 아버지의 저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노쇠해지겠지.




“많이 벌어서 뭐할라고요.”

“세상이 변했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건 옛말이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아버지의 빈 소주잔을 채웠다. 아버지도 내 손에 있던 소주병을 건네받아 내 잔을 채워주셨다.     


“사람은 죽어서 돈을 남겨야 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와 같이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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