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야간 기차를 탔다. 침대칸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밤기차를 이용해 이동하면 촉박한 여행 일정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야간기차를 타고 불편한 잠자리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편치 않았다. 뻐근한 내 몸을 좁은 침대에 구겨 실었다. 이제 기차는 천근만근인 내 무거운 몸을 싣고 밤새 달릴 것이다. 세상의 무게를 짐 진 자들을 싣고 기차는 아침 9시 48분 오스트리아 빈 중앙역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 빈은 8년 연속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살기 좋은 도시가 편안한 여행지일 가능성은 분명 높다. 그러나, 여행에서 인상적이고 마음을 뺏길 만한 이유는 도시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다. 겨우 며칠간 도시 몇 곳의 배낭여행으로 이렇게 말해놓고 겸연쩍하고 있다.
'링' 트램
1일 비엔나 교통카드를 가지고 '링'이라는 트램을 이용하면 '빈'의 어느 곳이든지 닿을 수 있었다. 비엔나 교통카드로 트램을 무제한 이용이 가능해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리고 다시 타기를 반복했다. 슈테판 성당, 국립오페라극장, 벨베데레 궁전 등도 트램을 타고 둘러보았다.
6월 하순인데 벌써 한 낮 햇살에 반팔 소매에 내민 팔이 익을 지경이었다. 트램이 아니었다면 빈의 슈테판 성당 앞에서 주저앉았을 것이다. 트램을 타고 천천히 차창 밖의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루마니아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반복 재생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인간의 교양이 절로 넘쳐나겠다 싶었다.
슈테판 성당
트램에서 내려 국립오페라극장을 거쳐 슈테판 성당까지 케른트너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슈테판 성당은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유럽의 성당을 처음 마주 했을 때의 감흥은 대단했었다. 웅장하고 정교한 조각과 황홀한 스테인 그라스에 취해 한 참을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보기 좋은 꽃구경도 한두 번이란 말이 맞았다. 어느 도시에서나 성당을 보게 되니 감흥이 처음과 같지 않았다. 여행 막바지인데다 별다른 기대 없이 슈테판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감탄은 이럴때 쓰는 단어이다. 한동안 자리를 깔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탄에 젖어 있었다.
국립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극장에서는 오페라 ‘휘가로의 결혼’이 공연 중이었다. 공연 관람을 온 사람들은 정장을 갖추어 입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전통과 격식을 차리는 모습이 고집스럽게 보이기도 했으나 고전의 향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한 형식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 100유로가 넘는 공연을 단돈 3유로 스탠딩석을 구했다. 중세 로마시대에는 귀족, 평민, 노예 모두가 공연을 한자리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중세의 전통이 이곳 오스트리아에 남아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스탠딩석에 모여 있었다. 마치 어려을때 서커스단 천막 사이로 숨어든 아이처럼 무대의 커튼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의 막이 오르고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이 시작되었다. 빈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선율과 오페라 가수의 노래가 극장 안에서 울려 퍼졌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숨 막힐 것 같은 교도소에 오페라의 아리아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교도관은 앤디에게 음악을 끄라고 문 밖에서 윽박지른다. 이때 앤디는 몸을 숙여 앰프에 손을 뻗는다. 잠시 멈칫하다 볼륨을 더욱 올린다. 스피커를 통해 오페라 여가수가 부르는 아리아가 교도소 안에 울려 퍼진다. 그 여가수가 불렀던 아리가가 휘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이라는 곡이었다. 앤디처럼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었었다. 앤디 생각이 계속 떠올라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숨쉬기 편안하게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