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의 둘째 날 (2016년 6월 23일)
아침 5시 알람이 울렸다. 빈 중앙역에서 할슈탈트로 가는 첫 기차 시간이 5시 55분이었다. 침대 안에서 잠시 망설이다 박차고 일어나 기차역으로 갔다. 지난 며칠간의 여행을 통해 5분간의 망설임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계속한다면 남미나 아프리카에 갈지도 모를 일이다. 카메라 하나 메고 세상 여기저기 빛에 물든 풀과 나무와 새들 사이로 바람길을 따라 걷는 상상을 했다.
할슈탈트로 가는 첫 기차를 타고 8시 11분 아뜨낭에서 irdning행 기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한 시간을 더 가서 할슈탈트 역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산들이 끝없이 이어진 호수 안에 젖지 않고 잠겨 있었다. 평온한 날이었다.
오전 9시 30분 할슈탈트 역에 도착했다. 기차역 바로 아래에 할슈탈트로 가는 배가 정박해 있었다. 할슈탈트는 호수 건너편에 있는 고요하고 한적한 호수마을이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내가 오늘 아침 만사 제치고 할슈탈트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했다.
할슈탈트는 예전에 소금광산이었고 광산의 광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다. 소박하게 모여 살던 소금 광부들은 어디로 숨어 버린 것일까? 좁은 마을은 중국과 한국 관광객으로 시끌했다. 민박집 사장은 대부분 중국인이고 원주민은 모두 마을을 떠났는지 집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날은 여름으로 한층 접어들었다. 돌아다니기 힘들 만큼 뜨거웠다. 산과 호수가 있어 그래도 좀 선선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유럽의 여름은 따가웠다. 더위에 지쳐 오후 1시 07분 비엔나로 가는 기차를 탔다.
솔직히 기대했던 할슈탈트보다 이곳까지 오는 호수 옆 기찻길이 너무도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시골길을 느릿하게 가는 기차는 에어컨이 없는 완행열차이었다. 기차의 창문을 내리니 호수 주위를 맴도는 바람이 기차 안으로 들어와 더위에 지친 오전을 위로해 주었다. 평온히 자리 잡은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고 소들만 그늘을 찾아 쉬고 있었다. 이대로 맥없이 돌아가면 후회가 남을 것 만 같았다.
오후 2시 트라운 호수를 끼고 있는 트라운키르첸 오르트 역에서 무작정 내렸다. 호수를 끼고 있는 여름 휴양지처럼 보였다. 마을이 너무도 조용한 탓에 낯선 여행자의 발걸음이 긴장되었다. 반짝이는 호수가 잘 보이는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오스트리아 전통복을 하고 서빙하는 남자웨이터가 낯선 동양인의 출현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미 많은 관광객에게 쉴 곳을 내어준 이들에게 나의 존재가 반갑지만은 않을 법도 했다. 웨이터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보며 한껏 부러움이 일었다.
추천해준 음식이 나왔다. 물고기구이 달랑 한 마리다. 이 웨이터에게 좀 당한 것 같이 기분이 찜찜했다. 그런데 ‘ 이 물고기 음식 이름이 뭘까?’ 맛이 제법이었다. 낯선 장소에서 조심하고 경계만 한다면 어느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세상은 나만큼 위험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편견 일지도 모를 일이다.
호수 부둣가에는 전기 보트를 빌려 탈 수가 있었다. 십 대로 보이는 소년에게 15유로를 주고 보트를 1시간 빌렸다. 혼자 운전해서 호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조금 불안했지만 드넓은 호수 한가운데를 보트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느 낯선 역에서 내려 정처 없이 걸어보면 오늘처럼 예기치 않은 선물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정해진 곳으로만 찾아가는 내비게이션 같은 하루보다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돌담의 이끼 따라 걷는 하루가 좋다. 살아가는 내내 미래가 정해지지 않아 불안해했다. 그래서, 어느 길이 좋은지 고민하다 날이 지났다. 이제 그만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기차역에서 내리리라. 기차는 다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