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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Feb 17. 2024

존재의 안정감

자신의 정서적 만족을 위해 나를 소모하려는 타인을 접할 때면, 나는 본능적인 적대감을 감추지 않습니다.

숨어서 제3자를 공격하는 말을 하며, 내게 공감을 바라는 것 같은 경우 말이지요. 그런 이와는 이내 사적인 대화를 멈춰 버립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당신에게서 느껴지던 안정감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고, 애초에 타인을 우리 대화의 주제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나에 대해 묻고, 내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 뿐이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누가 어떻니, 사회가 왜 저렇니 하는 뻔하고 오만한 비판으로 스스로를 깍아 내리지도 않았고, 타인의 말을 불필요하게 전하지도 않았어요.  


대화를 나누는 당신과 내가, 당신과 내 대화의 주제일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나간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일이나, 1살 때 벌써 보행기를 들고 다닌 괴력의 아기였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습니다.  


즐거움이 가득한 입꼬리가 움직이며 전하는 다정한 목소리는 듣기 편한 속도였고, 장난기 어린 눈빛은 내 마음을 덩달아 설레게 했습니다.



어떤 이는 야구 선수 누구가 얼마에 연봉계약 했느니 하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바로 맞은편 상대가 쉬는 한숨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공통의 주제라고는 TV프로그램, 운동선수, 내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이야기. 관심도 없는, 관심도 가지 않는 이야기들에 그치는 대화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런 것들에 마음 써 논하지 않아도 되는 당신과의 대화가, 나는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당신과 나에 대해 할 말이 다 떨어지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과는 침묵도 좋다는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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