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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Feb 12. 2024

프롤로그. 고요하게 얼어있던 기억에

고요하게 얼어있던 기억에 따뜻한 의미가 더해지는 일


아깝게 지나가 버리는 시간을 어디 다른 차원에 좀 쌓아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꺼내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현실의 위로로 삼는 때가 잦아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를 꺼내 쓸만한 가치있는 사건이 기약없다면, 나는 아껴둔 시간만 가득한 채, 의미있는 기억 하나 갖고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그것대로 허무하겠다는 생각도 같이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음에도 현실에 머무는 체념이 결론입니다. 상상으로도 무의미의 연쇄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현실의 일상으로 이내 돌아옵니다. 



무언가 가치있는 어떤 의미 하나 세겨놓지 못한 매일이 이리 흘러가 버리는데도 어찌하지 못하던 무기력함은 감정의 탈수를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날 때 즈음의 나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탈수된 건조함이 만든 인식과 의식의 괴리에 종종 잠겨 들기도 했고요. 눈 뜬 채 멍하게 있기 일쑤였다는 것이죠.  


아무렇지 않게 잊혀져도 별반 아쉬울 게 없는, 딱 그 정도 의미의 일상을 반복하며, 가치를 더할 방법을 찾는 노력도 않은채 그냥 이렇게 사는거지 라는 체념을, 살아온 경험이라 인정해버리고 그냥 살자 할 것만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2016년 1월 2일, 오후 3시 경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을 놓치긴 했지만, 어차피 먹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당신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내 시야에 들어오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습니다. 생소한 음성에 잠시 그 상대방이 나인지 확인해야 했지만, 서둘러 눈의 초점을 챙겨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전에 우리가 몇 번 마주치기는 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고, 서로의 일상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간단히 대답한 후 쉬고 싶었지만. 당신은 20분 정도, 내 공간에 머무르며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길게 이어진 당신과의 대화는 조금 피곤했습니다. 내 눈은 초점이 서서히 나가고 있지 않았나요? 나름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말에 대답했지만, 대화 내내 나는 당신 이름도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점심을 못먹어서... 


하고 당신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덕분에 생각 없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후의 일과 내내, 원인을 알 수 없는 즐거움에 미소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된 일이고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다면 다시 떠오르지 않았을 기억이었겠지만, 이제는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히 간직되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로, 죽은 순간에 불과했던 하나의 기억이 첫만남이라는 따뜻한 추억으로 소생한 것입니다. 



마치 평범한 돌멩이라 생각했던 것이 보석의 원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 순간은 그대로이지만, 의미는 변했습니다. 



그러니 말이에요. 


이별 한 채인 지금의 의미도 말이죠, 미래의 어떤 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의 문제를 그 의미가 찾아질 어느 순간에까지 묻어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모습에서 어떤 의미를 정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 때까지 흘러갈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아도 되겠다고도요. 


그저, 미래의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을 기대로 바꾸는 것으로 당장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버텨주세요. 


당신의 견딤은 스스로에게도, 내게도, 이 세상에도 소중합니다. 그러니 확정 지어버리지 말고 버티며 성장해주세요. 지나가는 현재의 의미는 미래에 결정될 거라는 기대로 말입니다. 



이 후에 어떡해야 할지는,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충분히 현명하고,  


무엇보다 견디는 의지는 창조력이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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