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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Mar 29. 2024

해를 등지고 걷는다. 마침, 봄이기도 하니.

"제주도 어디 갈거에요? 정했어요?"

하고 는 평균의 시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아니요, 공항에 내려서 생각해보려요."

"숙소는요? 남자 혼자 가니깐 싸게 게하 같은데 가도 되잖아요?"

"숙소요? 밤새도록 걷다 길바닥에서 잘까 싶은데요?"

하니 마구 웃는다.


농담처럼 들는 이 짓을 나는 진정 또 하게 될 것 같다.



이제 벌써 수 해가 지난 일인데, 들어봐.


모회사(parent Co.)의 출연이 있긴했지만, 어쨋건 우리가 세웠던 회사의 책임사원에서 해임된 후 나는 2주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어.

당시 기술스타트업이 아닌, 정보와 지식으로 돈벌이하는 회사의 이사가 해임됐다는게 어떤 의미일까?그리고 이런 물음에 더해, 동료들의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 없었거든. 인사라도 해줄거라 생각했는데, 시선을 피하더라. 다들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총무이사였어. 나를 총무님~총무님~ 하고 부르면서 매일같이 내 자리로 놀러오던 귀여운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나오면서 필요한 거 가지라고 하니 미안하다며 도망가버리더라. 그때가 5월이었는데, 차갑다는 건 온도의 감각이 아니라, 본래부터 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었나봐.


집에 나를 걸어잠근지 5일쯤 지난 때, 생수 다 떨어졌고 수돗물 끊여먹다보니 배고파 죽을거 같아서 참치캔과 생수를 사오긴 했었는데 아마 그 때 몰골은 노숙자에 다름아니었을것 같아. 자주가는 마트 그 종업원 나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사실 그 2주는 한달이, 어쩌면 두달이 될 수도 있었거든.

나를 2주만에 밖으로 끌어내 준 이는 당시 여자친구였어.

정성들인 장문의 문자에는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힘든 결정을 한 것인지 같은 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납득가능하게 쓰여있었고.


폰을 꽤 오래 들여다 보고 있었던거 같아. 답장은 안했고, 다음날 바로 씻고 밖으로 나왔어.

얼마가 지나,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4월에 9급 공채에 붙었어. 수험기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마디 정도 했던 것 같아. 이러다 나중에 내가 말을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때마다 허공에 "아아, 접니다. 누구누구. 하하하." 이랬던거 같아.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미쳐보였겠다.

아, 전 여자친구가 결혼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더라. 허허. 불과 몇달이란 시간에, 그 사람은 내 행정법 점수보다 못한 이가 되어있었던거지.


경영이력 때문인지 9급인데도 모 부처의 기획조정실로 발령이 났었는데, 반년이 안되어 관뒀어. 공직사회 좋더라. 사람들도 부드럽고, 무엇보다 개개인이 안정감이 있었어. 이 때 사람들에게 위로를 조금 받았어. 정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해주는 습으로 말이야. 다만 내가 조직생활을 견디기에 너무 약해져있었던거지. 럴거 뭐하러 공부했는지 나도 의문이니깐 그건 그만 물어줘.


그리고 간 곳이 베트남 다낭시야. 그곳에서 나는 한번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았고, 걷기만 했어. 밤 9시경 야시장에 갔다가, 정신 놓고 걷다보니 해가 뜨더라고. 밤새 걸은 건 이 때가 처음이었어. 력적으로 스스로를 몰아넣 경험이었지. 자신을 혹시시키는 경험은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이 과거를 아픔이라 하지않을 수 있게 됐어.

'당신'을 만났니깐.

내게 단 한번 있었던 하나의 작고 온전한 구원.


나는 그 때 당신으로 구원받았고, 이제 다시 저주 던져졌다.

 나는 다시 한번  걸음을 는 것이다.

24시간 정도 걸으면 잘 수 있을까. 어쩌면 20시간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아침 9시에 제주도에 도착해 처음 10시간은 시간당 4km,  그 다음에는 시간당 3km로 10시간. 그러면 해가 뜬다.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애월, 협재를 지나 모슬포까지 이를 수 있고, 동쪽으로 가면 성산일출봉을 지나 표선까지 갈 수 있다.

밤에는 보온에 신경쓰고, 낮에는 가급적 해를 등지걷는다.

잠이 올때까지 걷고, 잠이 오면 길가 안전한 곳에서 좀 자다가, 다시 걷고 3일 정도만. 그러자. 이번엔 시간을 많이 못 냈으니, 짧고 확실하게 다녀오자.

마침 봄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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