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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0. 2024

아빠는~ 집에 있어요

너무도 잘나신 와이프 덕분에 아빠는 집에 있어요 아고 농담입니다. 실상은 맞는 말이지만 이런 비꼬는 뉘앙스는 아니에요 스포츠채널 피디였었고, 유명 소셜커머스 콘텐츠 팀장도 했었던 저입니다. 저도 못난 구석은 없답니다. 단지 인생의 굴곡이 있던 때에 잠깐 움츠렸던 사이 와이프가 하는 일들이 잘 되다 보니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도왔지요. 제걸 조금 소홀했던 거지요.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버렸고, 사회에 복귀하려 해도 이제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아직은 젊은데 벌써 쓸모없어져 버린 느낌입니다. 


하하하 넵 맞습니다. 아빠 버전의 경단남입니다. 


경력이 단절된 남자. 꽤 괜찮았던 학벌도, 괜찮았던 직장과 커리어도 조금은 아깝지만 이제는 어디에 내어 놓을 만한 간판이 되어주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뉴스에서만 보던 경력 단절된 엄마들의 마음이 이런 줄 통감했습니다. 갑갑하기도 합니다. 또래의 남성들은 한창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연차가 되기에 사내에서도 중간 관리자 이상의 자리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모두가 그렇치는 않지만 제법 돈 좀 굴리고 살기도 합니다. 건물이 서너 개 있는 친구들도 있지요. 물론 사업을 말아먹고 패가망신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연락들을 잘하고 산다구요? 


그럴 리가요 모두가 SNS를 통해 알게 된 거지요. 요즘은 딱히 소식을 묻지 않아도 자신들의 근황을 제법 자세히 올리잖아요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를 했는지, 새 차를 뽑았는지, 어디 여행을 다녀왔는지, 회사에서 승진을 했는지 등등이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전해져요. 아예 소셜미디어를 닫고 산다면야 모를까 안 듣고 살 수가 없네요. 뭐. 보여주고 싶은 소식들만 들어 그런지 모두가 잘 살고 있어요. 물론 잘 사는 친구들만 SNS를 하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소식이 없는 친구들은 그저 마음속으로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주었으면 하기도 하구요.


20대 청춘을 더듬어 보면 인생에 대한 고민이나, 앞으로의 걱정들, 연애의 아픔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싸이월드세대라면 이해할 그런 감성적인 글들, 지금은 그런 고민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내 또래 친구들의 소셜 미디어 이야깁니다. 그런 고민은 철없던 때나 하는 거래요. 지금의 인스타는 그동안 이룬 것들이 한가득이에요. 


이제는 고민보다 결과를 보여주는 게 더 적당한 시기래요. 


아직까지 고민하는 건 철이 없는 거고 제 몫을 못하는 거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 SNS는 비어 있어요. 누가 알아볼까 프로필 사진도 올리지 못하지요. 다행스럽게도 이 나이쯤 되면 서로서로 그렇게 자주 연락하지 않아요. 이제는 친구들의 결혼식도 할 일이 없고, 상갓집이 아니면 친구들 연락 올일이 거의 없네요. 그간은 코로나로 상갓집도 제대로 못 다녔으니 친구들 만나고 연락할 일이 거의 없었지요.  



뉴스나 포털에 육아고민, 경단녀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성별만 바뀐 제 이야기지요. 라떼파파처럼 우아하게 살 줄 알았는데. 육아에 경력 단절의 남성 게다가 아직까지 많이 바뀌지 않은 사회적 성역할의 불편한 시선들에 제 속이 속이 아니랍니다. 옛말에 애 키운 공은 없다 하더라구요. 


아빠의 육아는 항상 2% 부족한 부분이 생겨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손이 필요합니다. 모든 마무리는 엄마의 터치로 끝이 나지요. 완벽한 아빠의 육아는 직장 생활보다 더 어려운 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남들이 바라보다는 시선도 육아하는 아빠는 항상 낯선 존재인 듯합니다. 


아무래도 남성이기에 더 주목받는 시선들도, 기대들도 가벼이 넘기기 어려운 순간순간이 있습니다. 아빠가 집에 있는 삶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도 반신반의할 때가 있어요. 때로 어머니는 잘 키운 아들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며 눈물 지으십니다. 저도 나름 꽤 바쁜 삶을 사는데... 집에서 살림하는 건 노는 거처럼 보이나 봅니다. 아마 요즘 여자분들한테 이렇게 말하면 큰일이 날 텐데 말이죠. 아직은 아빠가 집에 있는 건 곱지 않은 세상인 거지요. 


우아하지 못한 라떼파파의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자의든 타의든 오랜 시절을 육아남으로 보냈고, 그동안 좋은 일들만 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동안 죽지 못해 살았겠습니까.. 때로는 살만했고, 때로는 죽을 만큼 못 버틸 것 같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우아하지 못한 라테파파의 육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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