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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0. 2024

'아메파파' 나에겐 시럽이 있었다.

 나는 아이가 셋이다. 1남 2녀, 딸딸, 아들의 아빠. 11년 15년 19년 각 네 살 터울의 세 남매와 함께 복작복작 살아간다. 때때로 육아에 대해 묻는 지인들에게 나는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 전 십 년 동안 육아 중이에요. 첫 아이를 키워 어린이집을 보내고, 이제 좀 여유를 가져볼까 했더니 갓난쟁이가 생기고, 그 둘째를 또 몇 년을 키워 유치원을 보냈더니. 또다시 갓난쟁이가 생겼어요. 그래서 지금 10년째 육아 중이랍니다.- 


묘한 동조의 끄덕임. 


사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농담으로 포장한 나의 진심이 담긴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11년도부터 막내가 태어난 19년도까지 8년을 게다가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21년도까지 계산을 하면 정말 딱 10년의 세월이었다. 이제야 심리적으로 여유도 생겨 글도 써보고 살지만, 그동안은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실질적인 시간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정신적인 부담과 압박으로 인해 나를 돌아보거나, 다른 여유를 가져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엄마들은 알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많은 자신을 잃어가는 시간인지에 대해서. 


나 역시 그 시간을 후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지만, 두 번을 다시 겪으라 한다면 피하고 싶기도 하다. 한 번의 경험이면 충분하다. 어쩌면 내가 얻은 만큼 나 자신의 일부분을 잃어버렸던 시기이기도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 순간의 선택이 훗날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분명 육아는 어렵다. 모든 것이 처음인 셈이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억은 어머니, 아버지로서의 시간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소녀시절, 아버지의 청년기를 들어본 적 없고, 알지 못했다. 허나 우리 부모님들도 청춘의 시간들이 있었을게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도 나에 대한 기억은 아빠로서의 기억부터 시작되겠지? 아이들의 기억에 엄마 아빠의 청춘 시절은 알 수 없는 역사일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나도 청소년 시절이 있었고, 청년 시절이 있었다. 부모의 역할은 처음이란 말이다. 그 처음의 역할을 처음인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부던이도 많은 노력을 했다. 아이들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무엇이든 알고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어떤 무섭고 두려운 일도 부모의 그림자에 숨으면 안전할 거란 생각이 드는 위안의 존재. 처음 부모의 역할을 했던 우리들이지만,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의 처음은 처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낯선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아이와 함께 있을 때면, 두려움에 떨 수만은 없었고, 모르는 길도, 모르는 일도 아이를 위해서는 해결하고 찾아내가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부모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몰라서도 안되며, 실수해서는 안된다. 아이를 실망시키는 일은 부모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하나하나 어려웠던 그 순간들. 
무엇하나 쉽지 않았던 그 순간들이 그저 고되기만 했을까?
꾸역꾸역 참아내고 인내해야만 했던 지난 십 년의 시간이었을까? 


큰 딸이 사춘기라 때로 우리 부부를 힘들게 하곤 한다. 이제 그녀만의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고, 가족 이외의 새로운 그녀만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기인걸 알고 있다. 언제고 아이로만 보이는 부모의 눈이라 매 순간 걱정이 앞설 뿐이다. 이렇게 아웅다웅하는 딸이지만, 그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웠던 순간들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지난 십 년간의 육아를 버티게 해 준 기둥이었는지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쉽지 않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세 아이의 등만을 바라보며, 조마조마하거나,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아쉬움들, 점점 잊혀져 가는 스스로의 존재가 아쉬웠던 날들도 많았다. 그래도 때때로 느끼는 그 달콤한 순간들이 너무도 행복했기에, 또다시 그런 순간이 오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었는지 모른다. 십 년간의 육아를 하면서 느꼈던 소중한 순간들. 보석 같은 순간들은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보물이며, 죽는 순간 스쳐간다는 주마등이 이런 기억들로 채워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첫 번째 달콤함. 

나의 첫 아이는 모두가 그랬겠지만, 일상이 배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에 서둘렀고, 서툴렀다.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불안하지 않았지만, 아내 없이 혼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홀로 아이를 보는 것이 겁이 났다. 이 작은 생명체가 전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조심스러웠다. 매 순간이. 


어느 날은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조금 높아지고 힘껏 우는 모양새에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런데 도통 아이가 왜 우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분유는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저귀는 아직도 뽀송했으며, 미열조차 없는 체온이었다. 어디가 아픈 건지, 불편한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우왕좌왕 허둥지둥거리다 안 되겠다 싶어 일단 안아주기로 했다. 우는 아이를 가슴에 얹고 토닥토닥 우지 마라~ 하며 거실을 빙글빙글 걸었다. 한 십여분을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거렸더니. 갑자기 아이가 "그~윽"하며 긴 트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차. 분유를 먹이고는 제대로 트림을 시켜주지 않았었구나 싶었다. 이제야 소화가 된 모양인지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곧 잠이 들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안고 어른 후에 살곰살곰 침대에 아이를 내려놨는데.


아.. 깨지 않고 꿈나라에 드셨다. 드디어 등센서에서 해방인 것인가 싶었다.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든 아이는 천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잠이 든 아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천사의 기억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의 얼굴은 천사를 닮았다. 뽀얀 피부부터 인형 같은 눈코입 모두 천사 같은 얼굴이다. 그 순간이 바로 나의 육아에 첫 달콤함이었다. 곤히 잠이든 천사 같은 아이얼굴. 지금도 길거리에서 부모에게 안겨 잠이든 아이의 얼굴을 보자면, 우리 아이들의 그 모습이 떠 오르며, 그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달콤해진다. 



두 번째 달콤함.

나는 나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두어 달 전에 친동생을 잃었다. 형제였던 나는 졸지에 외아들이 되었고, 든 사람은 몰라도 난사람은 안다고, 갑자기 사라진 동생의 빈자리가 점차 실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 작은 아이가 두어 살 때쯤 되었을 것이다. 6살 2살 두 아이들을 집에서 데리고 돌보고 있었다. 거실에서 뽀로로를 틀어주고는 잠시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지면 살짝 무서워진다. 또 어떤 사고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티브이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덜컥 겁이 나 거실을 바라보았다. 


오! 이런..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6살 언니의 무릎 위로 두 살 아이가 의자 마냥 앉아서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네 살 터울 동생이라도 무릎 꿇고 앉아있는 그 위면 편하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내려가란 말도 없이 동생이 앉아 함께 만화를 즐기고 있는 모습에 순간 울컥했다. 형제간의 우애, 사랑, 이런 것들을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부딪히고 함께 자라는 모습이 훨씬 더 가슴에 새겨진다. 아이들이 눈치챌까 조용히 사진을 찍고는 한동안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나와 동생은 이렇게 살갑지도 못했지만, 동생을 보는 듯하고 동생의 그리움을 느끼는 듯하는 복잡한 감정이 들고는 했다. 동생 생각에 가슴이 얼마나 먹먹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쩌면 아이를 셋이나 키울 수 있었던 이유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한 장면에 또 육아는 달달해진다. 



세 번째 달콤함 

엄마가 일로 바쁠 때는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한다. 용인이 집이라 아이 셋과 에버랜드로 놀러 가기로 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부담도 없다. 다만 아이들의 나이가 참 다양하다는 것만 빼면. 갓 돌을 지난 두 살 아가와 6살 10살 아이 셋을 데리고 에버랜드를 갔다. 막내아들은 애기띠로 앞으로 안고, 6살 아가는 손을 잡고, 10살 큰아이는 혹시 몰라 예비로 챙긴 유모차를 밀고는 당당히도 에버랜드에 입성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려 놀이기구에는 큰 욕심이 없었다. 정원과 동물원 위주로 산책을 하고, 퍼레이드를 구경하며, 미니 열차를 타거나 인형극을 보곤 했다. 언덕을 오르내리고 아이를 안고 잡고, 유모차를 밀고 끄며 동시에 아이들이 눈 밖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첫째 둘째를 부지런히 쫓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질 정도였다. 


한참을 산책 겸 구경을 하고 나니 목이 마르다 아이들이 칭얼거린다.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내 앞의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계속 쳐다보신다. 그러다 주저하시며 말을 붙이셨다. 


- 아빠가 아이들을 잘 놀아주네요. 대단해~ 나랑 자리 바꿔요 내가 양보할게요 - 

-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히 먼저 사겠습니다. 얘들아 인사드려요 고맙습니다 하고- 


아빠가 아이 셋을 안고 잡고 끌고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날은 그 아주머니뿐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배려를 받은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오니 슬쩍 벤치에서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던 젊은 커플들.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이의 칭얼거림에 옆에서 가까운 화장실을 가르쳐 주던 젊은 엄마들. 돌쟁이 막내 때문에 아이들과 놀이기구도 함께 탈 수 없었는데, 아이들을 자리까지 친절하게 에스코트해주던 에버랜드의 직원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충분히 배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친절했고, 고마웠다. 나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받았던 배려들을 느꼈고, 아이가 있어도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지금도 어디선가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들을 보면 슬쩍 자리를 내어주거나, 출입문을 잡아 주거나 한다. 때로는 계단의 유모차를 함께 옮겨주기도 한다. 내가 받았던 배려와 도움들을 나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달콤한 시럽 한 방울로 풍미를 더하는 아메리카노 같다. 나를 깨워주고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느끼게 해 준다. 



이렇게 사소한 장면들의 행복은 라떼파파가 아니면 캐치하기 어렵다. 큰 아이는 곧 중학생이 된다.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들이 분명해졌다. 지금도 갓 태어난 순간이 기억나고, 어릴 때의 그 모습이 또렸한데 이제는 청소년이다.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게 서운하면서도 대견하다. 가끔은 막내가 아무런 걱정도 없고, 해맑게 환한 표정으로 아빠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아빠에게 기대어 논다. 아빠를 등져 아빠 몸에 기대고는 자신의 장난감으로 로봇놀이를 한다. 조금 귀찮아질 무렵 살짝 아이를 일으켜 세웠더니 고개를 들어서는 아빠를 보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씨익 웃고는 한 발짝 떨어져 다시 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큰 아이의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어서 빨리 커버리기를 바랐기도 했다. 둘째가 어느 정도 자라 초등학생이 되니 마찬가지로 훌쩍훌쩍 커버리기를 바랬다. 그런데 막내가 이렇게 씩 웃어주는 그 순간의 가슴 찡함을 느끼자 아이들이 아빠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던, 그 모습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정말 아빠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되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순간이 되면 아마도 아빠의 시간은 훨씬 많아지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최고고, 아빠를 필요로 하는, 무적의 아빠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사춘기의 하루도, 키만 커가는 둘째의 하루도, 아직 키울 날이 한참 남은 막내의 하루도 어제 보다 더 소중해졌다. 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서로에게 필요하고 집중할 수 있는 날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어른을 일깨운다. 내가 생각하는 육아다. 어른도 아이를 키우며 배운다. 삶의 행복과 가치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인간이 찾고자 하는 행복의 길을 배워간다. 그 배움이 모두 쉽고 아름답지 많은 않다. 그러나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고,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도 않다. 어려움을 헤쳐가는 그 과정 속에서 때때로 느껴지는 그 달콤함으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육아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육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그 달콤한 순간들의 매력 때문인지 모른다. 세상 모든 것과 바꿀 수 없는 내 아이의 아주 짧은 순간의 달콤함으로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해처럼 보일 수도 있는 계산법이지만, 단언컨대 그 짧은 순간의 달콤함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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