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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23. 2024

chap62. 현실과 글의 괴리감

 p 197-199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글과 현실 사이에서 보이는 괴리감 때문에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저는 이런 현상이야말로 착실히 작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묘하게 글을 쓰다 보면, 나의 이야기인데 좀 다른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평소보다 진중하거나, 관조적이거나, 대범해 보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 같다. 평소와 달리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의지할 수 있는 아빠의 모습으로만 보이고, 아내의 어려움을 다독이고, 토닥일 것만 같은 자상한 사람으로만 보이고, 때로는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깨어있는 화자가 보인다. 아이쿠. 나를 이런 사람으로 볼까 겁이 난다. 글 속의 나를 만들고 있는 키보드 앞의 나는, 게으르고, 감정적이고, 휘둘리기 쉬운 약한 사람인데. 현실에 잘 순응하지 못해 항상을 스스로와 싸워오고 있는 사람이라서 지인들이 알아볼까 겁도 난다. 부끄러워라


하지만 뭐 어떤가? 내가 쓰는 글은 나를 사진기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아닌걸.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되고 싶은,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말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를 맘 놓고 할 수 있기 때문인걸. 


한없이 자상한 아빠를 꿈꾸면서, 아이와 한 약속을 잘 지켜주지 못하거나, 아이의 잘못에 쉽게 화를 내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아내에게 예쁘게 말을 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아내의 작은 서운함에 발끈해 더 크게 반박을 하고는 혼자 방에 콕 틀여 박혀버린 적도 많다. 오매불망 자식의 안위만을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성의 없이 고개만 끄덕이거나, 알겠어요 란 말로만 반복하고 끊어버린 전화도 셀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쓰다 보면, 나는 되고 싶은 내 모습만을 적어나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한없이 의지할 수 있는 아빠의 모습을 써 내려가고, 자랑스러워할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며, 일상에 소소한 기쁨을 함께 나누는 다정한 부부를 만들어 낸다. 모두가 다 되고 싶은 모습들이다. 


글은 왜 쓸까? 단지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쓴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가 있고, 삶이 있다. 경험이 다르고 추억이 다르다. 인생의 무게추를 똑같은 자리에 꽂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모두의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얼까?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자 문장과 단어를 고르고 있을까? 


글은 내가 꿈꾸는 모습의 청사진이다. 


힘든 과정의 기록은 내일은 좀 더 나아지기를 꿈꾸는 바람이고, 이별의 아픔은 더 이상의 아픔이 없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상실의 고통은 남겨진 내가 나아가고, 앞으로의 삶에서 그 상실감을 잊고 살지 않기를 바라는 다짐이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행복들과 감정들의 기록은 그 기록이 힘겨운 날들을 버틸 수 있는 기둥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노년은 근사한 단독 주택을 가꿔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주택을 짓기 위해 막연한 노력들을 한다. 침실은 어떻게 꾸밀까? 마당에는 펜스를 쳐야겠지? 강아지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을 만들면 좋겠는데. 차고에는 목공예를 할 수 있는 공구들을 놓고 싶다. 중정에 심을 나무는 무엇을 좋을까? 마당은 잔디로 할까? 관리하기 쉽게 돌을 깔아야 할까? 


그런데 막연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집이면 좋겠다는 포인트를 어떻게 결합시켜 집의 뼈대를 완성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도면으로 완성되고, 3D 이미지로 보아야 내가 꿈꾸는 집과 만들어질 집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설계도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되고 싶은, 살고 싶은, 찾고 싶은, 잊고 싶은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우리는 때로 좋아하는 작가의 현실의 모습을 보고는 때론 놀라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만난 인물들이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되었을 거라 상상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에 낯설어질 때도 있다. 역설적으로 그런 괴리감이 클수록 작가의 역량이 더 뛰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모든 글들이 현실이 모습만을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필터를 거쳐 걸러지고, 더해지고, 쪼개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독자는 작가의 삶을 알지 못한다.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쓴 글이 나의 모습과 다름을 느낀다면 당신은 칭찬받아야 한다. 작가로서의 기본 준비는 끝났다. 그 괴리감이 그려지도록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삶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기를 바란다. 독자로서 기꺼이 당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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