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면 작은 바가 하나 있다.
얼추 16-7년이 되어 있는 작은 바다. 테이블이래야 단체용 8인석 높은 테이블이 하나 있을 뿐. 나머지는 바를 둘러앉아야 하는 곳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 오래 세월 동안 인테리어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작 바뀐 것이라야 다트 기계가 하나 들어왔다는 것뿐. 얼추 20년이 가까운 곳이지만 초창기부터 클래식 웨스턴스러운 분위기를 고집해서 인지 지금 보아도 그리 촌스럽지많은 않다.
그곳의 사장은 나와 나이가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놀았던 친구다. 그 친구를 처음으로 바를 데려간 건 나다. 이십 대 초반의 시기에 바에 꽂혀 용돈을 쪼개어 가며 칵테일이며 위스키를 마시던 시간이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소주를 찾을 때 아무 불평 없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대학로와 홍대에서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가 되었고, 고향에 바를 차렸다. 그 뒤로는 고향에 아지트가 생긴 샘이다.
올 추석도 고향 모임을 하며 어김없이 친구의 바로 향했다. 한 때는 복작복작한 골목이었는데, 어느샌가 상권이 이동해 지금은 죽어버린 거리가 되어 있는 그 골목에 친구의 술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을 향하기 전에도 고향에 또 자리를 잡은 친구의 호프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친구의 가게는 새로운 거리에 새 단장을 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이 도시에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많이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복작 복작 모여 있는 거리였다. 그 골목만을 보자면 홍대만큼이나 사람이 많았고, 어디를 가나 자리가 없어 웨이팅을 해야 겨우 술 한잔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는 명절 대목이었다.
젊은 거리는 젊은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이제는 죽어버린 상권 속의 오래되고 작은 바에 모여들었다. 복작이던 거리와는 달리 바 테이블에 한 명이 앉아 키핑을 해둔 양주를 마시고 있을 뿐. 명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나마 우리 8명이 모여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이제야 명절 술집 같은 분위기를 채워 주었다. 매출에 도움이 조금은 될까 싶어 양주 세트를 주문했다. 그간 모아 놓은 회비가 제법도 모여 이제는 명절에 따로 돈을 걷지 않아도 한 끼 밥과 술을 채울 정도의 이자가 생기게 되었다. 채워진 곳간에서 인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장도 테이블에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 누가 사장이고 누가 손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모이면 그 이야기 들이다. 매번 모임마다 반복되는 이야기들이니 이제는 질릴 법도 한데 여전히 즐겁다. 아니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튀어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분명 작년에 들었을 때는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이 올해 업데이트 되어 나오기도 한다. 한 참을 웃고 떠 들어도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다. 밖은 가로등만 켜져 있을 뿐이다.
담배를 피우려 문 밖을 나서자 거리에는 지나는 사람이 하나 없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거리가 너무 다르다. 괜찮은 걸까?"
"솔직히 아까 젊은 애들 많았던 곳에 있으니까. 옛 생각도 나더라. 이곳이 우리 젊은 때는 그랬는데. 오늘처럼 명절이면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안부 인사를 다 나누고는 했는데. 이제는 얼굴들 볼 일이 없다. "
"그랬지.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지.. 아... 이 골목은 너무 조용하구나.."
우리 만큼 골목도, 상권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인테리어 하나 바뀌지 않은 오래된 술집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친구는 낮에 부업을 하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아주 젊은 동업자와 함께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르바이트생인지, 매니저인지 잘 모르겠다. 그 친구는 제법 싹싹하게 손님 응대를 한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대하는 말투나 태도를 보면 무언가 많은 경험도 하고, 생각도 있는 친구인 것 같아 보이긴 한다.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 같다.
중년의 아저씨의 옛날이야기에 제법 잘 맞장구 쳐주며, 그 시절의 음악이나 드라마, 문화에 대해서 낯설어하지 않는다. 아마도 사장님의 나이대의 손님들이 많다 보니 그간 들어온 이야기도 제법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어느샌가 술집 안의 음악은 2000년대 초반의 락발라드로 바뀌어 있었고, 절절하고, 애틋한 가사들의 감성적인 노래가 가득 찼다. 그랬다. 그때의 노래들은 애절했고, 아팠고, 절실했다. 농담으로 일단 누군가를 죽이고 시작한다는 그 시절의 노래 가사들은 사랑에 정말 목숨 거는 가사들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아마도 어디선가 들었을 이야기겠다. 사장님의 친구들이나 그 또래 손님에게서, 아니면 어딘가 인터넷에서 들은 이야기 일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며 웃고 술을 마셨다. 맞아 그때는 그랬지. 옛날에는 그랬어 라며 회상하고, 즐거워하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까지 내가 앉아 있던 그렇게나 익숙했던 이 공간이 자꾸 어딘가 모르게 낯설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의 거짓말을 보태면 눈을 감고 걸어도 어딘가에 부딪히지 않고, 이곳을 활보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데, 이상하게 낯설다. 이런 게 미시감이란 걸까? 이런 느낌이 미시감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식당에서 똑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실수로 신었는데 바로 내 것이 아님을 알아채버릴 때의 느낌이 들었다. 같은 이야기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닌 어색함이 자꾸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돌아보자 근원이 보였다. 우리가 웃고 떠들던 그 이야기와 맞장구가 미시감의 원인이었다. 40대 중반의 추억 놀이와 이야기가 미시감이 탄생한 곳이 되었다. 아니 그 이야기와 내용은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며, 즐거웠는데 문제는 그 이야기의 출처에 있던 것이다. 20대의 젊은이가 40대의 추억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이야기하는 것이 뿌리였다. 그녀의 달변으로 우리는 즐겁게 웃고 떠들며, 지난날을 추억했지만, 알고 보면 그 이야기는 그녀의 경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가 경험했을 리 없는 이야기들이 그녀의 입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던 것이다. 내용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체험했을 리 없는 출처에 나도 모르게 어색했음을 느꼈는지 모른다. 아마도 이 감정이 미시감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매니저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잘못된 일도 아니고, 심지어 내용도 재미있었고, 대화도 즐거웠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편함과 어색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도 똑같은 내용을 나와 같은 연배의 다른 이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의 이 어색한 감정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기대가 있었나 보다.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경험과 생각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경험과 추억을 공감하거나,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추억과 경험을 몰랐기를, 그래서 신기해 하기를, 지금의 문화와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지를 말해주기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나보다 HOT, 젝스키스, 핑클과 SES의 팬덤 문화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최애 아이돌이 얼마나 퍼포먼스가 대단하며, 해외에서도 잘 나가는지 자랑해 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예전 노래들의 가사의 절절함과 애틋함 보다, 지금 가수들의 해외 활동과 KPOP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비교해 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가 어떤지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듣는 이들이 알만한 이야기보다 말하는 이가 가장 잘 아는 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젊음에게 바란 것은 그런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