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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Sep 24. 2024

서늘한 방아쇠는 당겨졌다.

인간이 추억을 기억하는 방법은 각자 다른 방식이다. 누군가는 그때의 향기로 지나간 일들이 되살아나고, 누군가는 닮은 사람을 보고 첫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때의 소리나 음악으로 일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모두는 각자의 트리거를 지니고 있다. 


감정은 댐과 같아서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 한계에 다다르면 한꺼번에 봇물을 터트리곤 한다. 때때로는 괜찮은 때가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최악의 경우에 그 둑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감정이란 자신 외의 다른 이들이 함께 느끼고 공감하기 참 어려운 대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감정과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사고를 지니기에 감정의 출발점과 문제를 속속들이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타인을 오롯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쏟아지는 감정은 타인을 해한다. 감정을 제때 소모하거나 풀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는 데는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감추어 두거나 뒤로 미뤄 두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여간다. 제때 풀어내지 못하는 감정들에게는 이자가 붙기도 한다. 


큰 물을 가두어 두는 댐도 적절하게 흘려 물을 흘려보낸다. 흘려보내지 못하는 물은 댐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염도가 높은 사해는 흘러들어오는 소금기를 내보내지 못해 그 농도가 점차 짙어져 지금에 다다랐다. 사해에는 생명체가 살지 못한다. 죽은 바다가 되어 버렸다. 적절히 쏟아내지 못하는 감정들도 이와 같다. 본인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발효되고, 농축되어 버린다.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곡차곡 쌓아져 있는 감정은 본인을 망가트린다. 그리고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귤 박스의 곰팡이가 피어버린 귤 하나가 주변으로 퍼지는 것처럼 막혀버린 인간의 감정은 주변인에게도 영향을 준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감정이 아이의 기분을 좌우하고, 친구들의 괴로움이 아이의 고민이 되는 것과 같다. 곰팡이가 귤 한 박스를 먹어치우기 전에 적절한 때 손을 써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트리거는 기온이다. 뜨거운 폭염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내려가는 온도처럼 나의 감정과 기분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면 오히려 차가움이 당연하다 느끼겠지만, 더웠다 서늘해지는 그 시기에는 서늘함이 싸늘함으로 목덜미를 파고든다. 


나는 추위가 절정일 때 동생을 보냈다. 내 필명의 원래 주인인 내 동생은 차디찬 겨울에 세상을 등졌고, 그 일은 벌써 십 년이 흘렀다. 십 년 동안 매일매일 동생을 그리워하거나 아파하지 않지만, 무더움이 가시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파고든다. 그때도 추웠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추웠고 가슴 시리던 시기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야 백번을 반복해 말해도 무뎌지지 않고, 쉬이 잊히지 않는다. 사소한 디테일이야 잊힌다 한들 그때의 감정은 기분으로 몸에 새겨져 우울해지고, 무력해지고, 허무함을 동반하곤 한다. 


이유를 알아도 딱히 바꿀 수도 없는 이유로 그저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뎌야 하지만 때로는 현재의 내 상황과 맞물려 어떤 날은 더 우울하게, 어떤 날은 더 감정의 진폭이 커지곤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약점이 되어버렸다. 가을이 접어들기 시작하면 나는 아파온다. 


이제 제법 관성적으로 우울함이 덮쳐 오기에 미리 대처하기도, 준비하기도 한다. 그래도 인생이 뜻대로 흐르지만은 않기에 매번 같은 고민과 증상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매번 반복되는 감정의 계곡을 그래도 벗어나는 것은 몇 가지의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질 거라는 기대, 좋아질 거라는 희망.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면 그래도 돌보아야 할 가족을 떠올리며 버틴다. 버틴다는 말이 맞는지 모를 만큼 내 일상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그 몇 가지를 아주 버리지는 않는다. 


겉보기에 나아짐이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평온한 백조도 수면 아래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것처럼 나 역시 겉보기에는 엉망인 하루를 살아도 내 안에서는 열심히도 싸우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이런 모양새를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와 싸우는 만큼 그들도 그들만의 전쟁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그저 서운하다 여기지만은 못한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 중에는 나 역시 한 부분이 될 것을 알기에 서운함이 커지는 만큼 미안함도 함께 커진다. 


추석이 지나고 제법 날씨가 서늘해져 온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더 큰 파도가 오고 있는 중이다. 진폭도 너비도 매 해 겪는 것이 무색할 만큼 크게도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저 그 파도와 해일에 쓸려 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말 그대로 방아쇠는 당겨진 셈이다. 내가 그저 버티기만을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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