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Oct 23. 2024

뭐? 돼지털??

나는 조금 늙은 사람이다. 

나이도 중년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머리에 흰머리도 제법 늘어났으니 젊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좀 빠르다. 90세, 100세 시대라면 나는 아직 인생의 절반도 넘기지 못했다. 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조금 민망해 보인다. 


그래도 때때로 나는 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아! 빠르게 오해의 소지를 줄이자면, 취향 말이다. 


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오해의 소지를 줄여보자면, 나의 취향은 아날로그적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경험했다. 어려서는 디지털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 없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좋은 20대의 시절에 디지털의 세상이 폭발적으로 열렸다. 내가 제일 먼저 접한 디지털의 세계는 고등학교 무렵 등장한 삐삐였다. 지금이야 길거리에서 보기도 어려운 공중전화지만, 당시에는 모든 길거리의 공중전화는 항상 줄을 서야만 했다.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려 하는 사람들로 공중전화는 항상 오픈런이었다. 음성 메시지로 전해온 연인의 목소리를 저장해 두었다 두고두고 떠올릴 때마다 다시 듣곤 했다. 원하는 때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새로운 문명이었고, 그 영향은 대단했다. 


삐삐부터, PCS,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 폰으로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굉장한 혁신이었다.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듯한 느낌. 미래 세대로 한 발 넘어선 듯 한 충격이었다. 아이폰의 첫 등장이 2007년쯤. 불과 17년 전의 이야기다. 


iPod휴대전화, 인터넷 통신기기. 이것들은 각각 3개의 제품이 아니라,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제품을 iPhone이라고 부릅니다.
스티브 잡스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IT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고, 세상을 바꾸었다. 채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세상은 스마트 폰이 없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인쇄술의 발달이 세상을 바꾸는데 몇 백 년이 걸렸다면, 디지털의 등장은 그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강력하고, 강력한 등장이었다. 


스마트 폰 등장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디지털 세상이 없다는 것은 지금껏 알아왔던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관의 붕괴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스마트 폰이 없는 일상은 상상의 힘을 빌어야 겨우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이 어떻게 친구와 약속을 잡고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무용담을 꺼내 보아야 꼰대 소리밖에 못 듣겠지만, 스마트 폰이 없던 그 시절에도 어떻게든 약속을 잡고, 연애를 했었다. 


그 시절에는 전화번호부가 집집마다 있었고, 대략적인 동네의 주소와 친구 아버지의 성함으로 전화번호를 찾아낼 수도 있었다. 동명의 어른들이 여러분 계시더라도, 몇 번의 수고로 맞는지 확인할 수도 있었다. 


"여보세요? 저 OO라고 하는데요. OO 학교 OO의 집이 맞나요?"


지금은 " 여보세요? "라고 잘 묻지 않는다. 전화를 받기 전부터 누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인지 표시가 된다. 이제는 전화를 건 상대방이 누구인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 울리는 집 전화소리는 설렘이 있었다. 누군가 나의 세계에 들어오고자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전화를 받기 전엔 설레고 궁금했으며 그 의미가 


"여보세요?"였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세계와 연결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초인종 같은 느낌이었다. 그 시절의 벨소리란. 


여보세요라는 말을 들어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니 나는 언제 이 말을 썼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는데 새삼 누구인지보다 어떤 용건인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런 것들만 있을까? 나는 손가락이 아프도록 편지를 쓰고 받아 본 적도 많다. 지금의 카톡보다는 많이도 느리고, 수고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내용의 글을 쓸 수 있고, 편지지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펜팔을 했었다. 지금 아이들은 알까나 몰라. 펜팔이라고. 배달은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114에 전화번호를 물어 직접 매장에 전화를 했었다. 나중에는 목소리만 들려드려도 우리 주소를 읊으시곤 했다. 배달 주문은 그런 것이었다. 영화를 보려면 극장 매표소에서 얼굴을 보여주며 표를 끊어야 했고, 동시 상영을 끊고는 두 세편의 영화를 보고 나오기도 했었다. 예전엔 그랬다. 약속 시간에 차 사고라도 겪는 날이면, 상대방을 몇 시간이고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참 옛날이야기다. 지금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상상력을 발휘해야 겨우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괜히 늙은 사람이라 말하는 게 이런 이유인지 모른다. 요즘 노트에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히 노트에 글을 써야 했고, 200자 원고지는 당연했다. 대학 새내기 때 2주 한 번의 독후감 제출날이면, 제출함 앞에서 200자 원고지에 칸을 채우느라 머리를 쥐어뜯던 그런 세대였다. 이제야 노트북의 글쓰기가 더 편하고 정리도 잘 되니 당연히 대부분의 작업을 컴퓨터로 하지만, 노트에 글을 쓰는, 200자 원고지에 글을 쓰는 그 감성은 아직 놓치기 아쉽다. 괜히 울적하거나, 센치해지거나, 혹은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면 지금도 여전히 노트를 펼쳐 들고 여백에 낙서를 한다. 딱히 무언가 쓸 말이 없어도. 노트북의 커서를 톡톡 두들기듯 펜으로 노트 구석에 빙글빙글 그림을 그리기도 하다. 무엇을 적을까 속마음을 그대로 노트에 적기도 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힐링이다. 컴퓨터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글에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틈틈이 글을 쓰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런데 노트에 무언가 끄적이고 있으면 정말 '쓴다'라는 느낌이 난다. 노트북은 친다는 느낌도 살짝 섞여 있다면, 노트엔 좀 더 순도 높은 쓴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 느낌을 좀처럼 놓치기 아깝다. 그래서 한 권만 사놓아도 몇 년을 쓸 양장 노트를 두세 권씩 욕심을 부리며 산다. 아마 이 노트 전부를 글로 채우려면 족히 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노트를 사고 펜을 사고 그 노트에 글을 끄적일 때 드는 그 "쓴다"는 아날로그적인 행위가 좋다. 옛날 사람인가 보다. 


디지털이란 아날로그적 감성을 좀 더 전달하고, 표현하기 쉽게 나온 도구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디지털이고, 아날로그고 모두 수단일 뿐이다. 노트에 글을 쓰건, 노트북에 글을 쓰건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가에 있다. 그저 어떤 이는 연필이 좋고, 다른 이는 만년필이 좋은 것일 뿐이다. 


글이라 다행이다. 그래픽만 해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시각적 차이가 너무 갭이 크지만, 글은 손글씨도, 타이핑도 내용의 문제일 뿐. 글의 깊이를 다르게 하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아직까지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을 쉽게 포기 못하는 핑계가 되어준다. 옛날 사람으로 살아도 되게끔 허락해 준다. 


그래도 아날로그가 따를 수 없는 디지털의 최강무기는 여기 있다. 

지금 내가 쓴 이 낙서 같은 글을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게 만나는 것. 


늙은이 취향의 내가 디지털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