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까지 뜨거웠다. 추석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더웠다. 한낮의 기온은 30도가 넘었고, 바람마저 후텁지근했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끈적하게 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불쾌지수가 오르는 것 같았다. 끝날 줄 모르는 더위다.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을 밝다. 아무리 덥고 후텁지근한 기온이라도, 오랜만의 연휴는 가족들을 모이게 했고, 친구를 만나게 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오래된 저수지에는 오래간만에 오리배 풍년이다. 오리 가족을 쫓아 열심히도 페달을 밟으며 물 위를 스쳐나간다. 장면이 익숙한지 진짜 오리들도 그저 자신들의 일들에 바쁘다. 좀 여유가 있는 녀석은 오리배 주위를 슬그머니 한 바퀴 돌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연신 휴대폰을 사진 찍기가 바쁘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며, 비상계단은 기름 냄새로 고소하다. 멀리서 오는 가족들의 입속에 들어갈 전이며, 음식들을 차리느라 침이 고이는 냄새가 아파트 전체를 휘두른다.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은 외국인들은 오랜만의 휴일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삼삼오오 편의점에 보여 간단히 맥주와 안주로 수다를 떠는 모습은 멀리 고향을 두고 외로움 맘을 달래는 모양새다. 안쓰럽기도 하다. 아파트 단지에 풍기는 기름 냄새가 그들에게도 고향 음식을 생각나게 할까 싶다. 세상 어디라도 명절 분위기는 비슷하지 않을까? 다 사람 사는 곳일 텐데. 좋은 음식과 반가운 얼굴들은 어느 명절에도 빠지지 않는 것들일 테니.
새로 가게를 연 친구는 첫 명절 대목에 신이 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바쁜 홀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며 누비는 그 모습이 많이 신나 보여서 다행이다.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친구들도 다들 신이 났다. 뭐 잘 나가는 친구도 있고,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렇게 모이면, 다들 어린 시절 그 철없는 시절로 돌아간다. 아무리 지금 배가 이만큼이나 나온 아저씨도 지금의 분위기로는 덩크슛도 날릴 자신감이 넘쳐 있다. 다들 그렇게 웃는다. 그저 얼굴 보고 실없는 농담에 호쾌하게 웃고 마는 그 시간이 즐겁다.
명절의 술집은 미혼자들이 더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이 모두 모이는 시기는 명절이 최적이다. 어느 소도시에서 서울로 더 큰 곳으로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이 모이는 시기는 명절 말고는 없다. 더욱이 딸린 식구들도 없으니 약속 잡기에 부담도 없다. 우리도 그랬고, 지금의 그들도 그럴 것이다. 술집을 가득 메운 테이블은 어떤 인연인지 모른다. 어제 만났어도 오늘 또 만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난 명절에 만나고 반년이 지나서 겨우 만나는 친구들도 있을 테다. 어떠한 인연들인지 모르지만, 지금 만나서 떠들고 웃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아무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 그래 술자리는 무릇 이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위스키를 마시며 몇 차례 장소를 옮기고서야 서로를 하나하나 떠나보낸다. 그래도 아쉬워 끝까지 술자리를 지키는 친구들이 있다. 새벽이라 불러야 적당할 시간대의 그들은 여전히 술과 함께다. 얼굴의 주름과 머리숱이 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예전의 그 기세와 환한 웃음은 그대로다. 아직 덜 큰 것도 같고, 아직 철이 없어도 보이지만, 여전히 당당하고 세상에 때 묻지 않은 모습이 다행이다. 마치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 모습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명절은 짧은 마법 같다. 많은 것들을 나누고, 많은 것들을 되찾는다. 내가 가진 것이 조금 모자라도 괜찮다. 가족은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쩌면 타지 생활에서 상처받고, 서운했던 감정들을 고향에 묻어두고 가는지도 모른다. 왠지 고향이라면 다 위로받고,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들이 있는지 모른다. 철없던 어린 시절, 명절은 마냥 신나고 즐거운 날로만 기억되었던 그 시절의 즐거움이 아직도 뇌리 어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명절에는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위로받고 싶은 기분인지 모른다.
이제는 제법 세상사, 인간사에 대해서 경험했기에 어느 정도의 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가진 기대들이 때로는 가족에게도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애써 괜찮은 척하기도 한다. 위로받고 싶은데, 이제는 위로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항상 괜찮을 줄 알았던 가족들이 어느새 늙고,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냥 위로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괜찮은 척을 한다. 서로가 상대방의 지친 눈빛을 읽었지만, 애써 서로 모른 척해 준다. 그렇게 다들 괜찮은 척한다. 그런데 그게 또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요령이기도 하다. 웃다 보면 정말 웃게 되는 것처럼, 일부러 울다 보면 정말 눈물이 흐르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의 삶은 산과 계곡과 같아서 산이 깊은 만큼 골도 깊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또 서운한 일도 생긴다. 명절 한때를 즐겁게 보내고 나면 연휴 끝에 공허함이 따르기도 한다. 연휴 내내 즐거움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즐거움은 어느 날의 행복감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꼭 서운할 일이 따라오니 신기하다. 즐거움을 함께 하고, 공허함 마저 견디게 되면 비로소 일상이 된다. 적당히 즐거우며,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매일이 이러하다면 또 삶이 무료하겠지만, 그럴 때가 되면 또 적당한 휴가와 명절이 돌아온다. 우리는 또 즐거움의 한때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