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다 보면, 결국 한 번쯤은 다툰다. 아주 사소한 말에서, 아주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새 감정의 벽이 되고, 서로를 상처 내는 말로 물고 뜯는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서 남는 건, 이겼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뭐가 남았지?' 하는 허무함일 때가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랬다.
주말 늦은 오후, 피곤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아, 진짜 오늘 너무 힘들다.” 그 말이 그녀에겐 섭섭하게 들렸나 보다. 기다렸던 건 나였고, 기대했던 건 그녀였는데, 내가 던진 말은 마치 ‘억지로 나온 사람’처럼 들렸을 테니까.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은 얇고 금방 깨질 것 같았다.
“그럼, 그냥 쉬지 그랬어.”
그 말이 찔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 사과보단 설명이 먼저 나왔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하단 얘기였어.”
그다음부터는 익숙한 흐름이었다. 나는 나대로 말의 뉘앙스를 해명하느라 분주했고, 그녀는 그런 내 태도가 더 서운했던 것 같다. 결국, 대화는 감정보다 논리 싸움이 되어버렸다. 누가 먼저 상처받았고, 누가 더 잘못했으며, 누가 말실수를 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사랑은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다.
연애는 논쟁이 아니다.
맞는 말이 다 정답은 아니다. 정확한 표현보다, 아프지 않게 말해주는 사람이 오래 남는다. 싸움의 순간, 내가 그녀를 이기려 했던 건 아니지만, 내 말이 더 옳다는 걸 입증하려 애썼던 건 분명하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한 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며칠을 말없이 지냈다. 대화가 없던 시간 동안, 자꾸 생각이 났다. 그녀가 말끝마다 한숨을 섞었던 순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메뉴판만 보던 모습, 말없이 천천히 물을 마시던 손짓. 그건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거리였다.
싸움은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루는 태도 때문에 커진다.
더 서운한 건, 그 순간보다 ‘그걸 풀어가려는 방식’이었다. 서운하다고 말한 그녀에게 나는 왜 사과 대신 설명부터 했을까. 감정을 설득하려 든 걸까. 혹은 이 싸움에서 내가 덜 나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이기려는 태도는 꼭 고성을 지르거나 말을 끊는 것만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다. 조용히 말하면서도, 표정 없이 “네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에는 벽이 들어 있다. “그게 왜 화가 나?”라는 말은, 사실상 “나는 네가 왜 그런지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 말이 나왔을 때, 방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고, 우리는 둘 다 말문이 막힌 채 멀어졌다. 나는 내가 이긴 줄 알았다. 내 말이 맞았고, 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텅 비어왔다. 그건 이긴 감정이 아니라, 사랑이 빠져나간 자리였다.
연애는 말싸움이 아니다.
진짜 가까운 사람과는, 논쟁이 아닌 ‘회복’을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화는 언제나 ‘맞는 말’이 아닌, ‘따뜻한 태도’에서 시작된다.
말보다 눈빛, 주장보다 숨결. 연애는 결국 마음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니까. 마음을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논리를 내세우기보다 먼저 다가가 안아주는 사람이다.
내가 나중에서야 깨달은 건 이것이다. 그녀는 내가 맞는 말로 자신을 이기려 하기보다, 그냥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고 말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사랑은 한 사람이 옳아서 유지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이해하려는 태도를 포기하지 않아서 유지되는 거다.
말은 끝내 이길 수 있어도, 관계는 그렇게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는 순간에도, 여전히 한 편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함께 이기려 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남아주려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논쟁이 아닌 포옹과 침묵, 그리고 사소한 사과에서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