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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웃을 수 없다면, 오래 걷기도 어렵다

by 성준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웃음 포인트가 있다. 누군가는 말장난에 웃고, 누군가는 몸개그에 빵 터지며, 또 누군가는 날카로운 풍자에 피식 웃는다. 어떤 사람은 유치한 개그에 웃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유치함에 몸서리친다. 웃음은 그저 순간의 반응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감정의 결을 반영하는 가장 솔직한 리액션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꼭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어떤 장면에서 웃는 사람인가요?


함께 예능을 보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어느 출연자의 한마디에 소파를 치며 웃었고, 옆에 앉은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안 웃겨? 방금 그거 완전 웃겼잖아." 그는 고개만 끄덕였고, 다시 화면을 보지도 않았다. 그날의 웃음은 혼자였고, 그날의 공감도 혼자였다.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과는 늘 사소한 농담에도 동시에 웃음이 튀어 올랐다. 서로가 던진 말에 반사적으로 미소가 지어지고, 같은 장면에서 웃으며 같은 기억이 쌓여갔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 사람이 왜 웃는지를 직감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마치 같은 파장의 라디오를 들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처럼. 그 웃음은 대화를 만들고, 그 대화는 다시 친밀함으로 되돌아온다.


연애는 결국 대화로 이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첫 리듬은 웃음이다. 말을 주고받는 일보다 더 빠르게, 더 직관적으로 감정을 주고받는 방식. 웃음을 함께한다는 건 단지 즐겁다는 표현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가 맞닿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웃음이 맞지 않는 연애는 어딘가 씁쓸하다. 내가 열심히 쌓아 올린 말장난이 상대에게는 시큰둥한 응답으로 돌아올 때. 내 웃음이 과한 건가, 그의 감정이 메마른 건가, 나조차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어긋남이 쌓이면, 어느새 대화는 줄어들고, 그 사이로 정적이 자란다.


같이 웃지 못하는 관계는, 결국 같이 울지도 못한다.


물론 모든 감정이 꼭 맞을 필요는 없다. 다른 유머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랑이 덜 진심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의 웃음 포인트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드라이한 농담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진지함 속에 스며든 미묘한 뉘앙스에 웃는다. 그 결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야 안다. 그 사람이 웃을 때 내가 더 크게 웃게 되는 연애, 내가 웃을 때 그가 눈빛으로 따라 웃어주는 연애. 그건 서로의 세계가 조용히 포개지는 경험이라는 걸.


같은 장면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 그건 함께 살면서 같은 리듬으로 숨 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랑이란 결국, 함께 있을 때 말을 아끼지 않아도 좋은 사람,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사람과 나누는 일 아닐까. 말보다 웃음이 먼저 닿는 순간이 있다. 그 눈짓 하나, 입꼬리의 살짝 올라간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우리는 어떤 감정을 주고받는다. 똑같은 영화를 보며 웃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피식하는 그 순간,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신호가 되어버린다.


그 사람이 무심코 흘린 농담에 내가 웃고, 내 농담에 그가 눈으로 먼저 웃는 그 순간,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함께 있다는 건 물리적 거리보다 감정의 온도가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우리는 이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을 얻는다. 어쩌면 진짜 사랑이란,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공기 속의 가벼운 웃음일지 모른다.


사랑은 언제나 거창한 장면이 아니라,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의 웃음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어떤 유머에 웃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은 장면에서 웃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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