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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의 속도로 마음을 재지 말거라

by 성준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요즘 네 휴대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몇십 번씩 울리는구나.
밥을 먹다 말고, 대화를 하다 말고, 웃다가도 핸드폰을 집어 드는 너의 모습이 어느덧 익숙해졌어.
처음엔 그저 '요즘 아이들 연애는 다 저렇게 하는가 보지' 하고 웃었는데,
가끔은 그런 너의 모습이 마음에 걸리더구나.


“아빠, 걔는 연락을 진짜 잘해. 하루 종일 나랑 대화해.”


그렇게 말하며 너는 자랑스럽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지.
알림창엔 같은 이름이 수십 번 반복되어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네가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까지 자주 연락해야만 가까운 걸까?

아빠도 너만 할 때 누군가를 정말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어.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고, 뭐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지.
하루 종일 그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고 싶어서 메시지를 보냈고,
답장이 늦으면 괜히 마음이 쓰이곤 했단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애정보다는 불안이었어.
상대의 마음이 식진 않았는지,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했던 그 마음은, 결국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

딸아, 연락은 관계를 이어주는 도구일 수는 있어.
하지만 연락이 많다고 해서 애정이 깊은 건 아니란다.

처음엔 참 좋지.


아침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 메뉴를 공유하고,
하교길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자기 전엔 “잘 자”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대화가 의무처럼 느껴질 수 있어.

답장이 늦으면 괜히 서운하고,
대답이 짧으면 “무슨 일 있나?” 하고 걱정이 되지.
그렇게 하루 종일 주고받는 말들이, 말이 아니라 숙제가 되어갈 때도 있어.

진짜 가까운 관계는, 연락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이야.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일상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
하루에 몇 번 연락하지 않아도 마음은 이어져 있는 그런 사람.

너에게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답장의 속도로 마음을 재지 않아도 되는 사람.

“뭐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마음이 머무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안도할 수 있는 사람.

연락은 안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나누는 마음의 방식이 되어야 해.

그리고 진짜 마음은 때로 침묵 속에서 더 단단해지기도 한단다.

불안해서 보내는 수많은 메시지보다,

“그냥, 네 생각이 나서.”라는 한 문장이 훨씬 따뜻할 수 있어.

아빠도 너만 할 때는 몰랐단다.
많이 이야기하고, 자주 연락하는 게 좋은 관계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어.

사랑은 결국, 말보다 마음이 머무는 자리라는 걸.


그러니 사랑을 하게 된다면,
침묵이 불안이 아닌 신뢰가 되는 사람과 함께하길 바란다.

그게 오래가는 사랑이라는 걸,
아빠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구나.

늘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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