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런 양에게 둘러싸인 늑대

by 간질간질

양들의 원로원 소속이자 재력가인 막시밀리안이 늑대왕 이반을 보좌하는 늑대 라훌을 찾아왔다. 이재에 밝은 사람일수록 필요할 땐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이렇게 태양이 떠 있을 때 라훌을 찾는다면 옮길 소식을 찾느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새끼 양도 알아볼 텐데. 막시밀리안은 일부러 드러나듯 화려한 양털 옷을 걸치고 수종 드는 어린양까지 하나 데리고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라훌경"

라훌은 경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늑대 세계에서 경처럼 호화스러우면서도 무가치한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막시밀리안도 잘 알고 있겠지만 괘념치 않는다. 라훌 역시 막시밀리안의 섬세하지 않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거 이거 앉으라는 말도 안 하시는 겁니까? 하하하"

라훌이 대답하기도 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수종 드는 어린양을 내보낸다.


"라훌경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라훌은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막시밀리안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훌은 처음으로 막시밀리안에게 눈길을 돌리며 반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늑대는 생명을 먹게 창조된 존재. 양들은 다른 생명에게 먹히고 싶지 않은 생명. 모두 신의 뜻이죠. 우리는 신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고라면. 이 사고가 신이 늑대와 양의 동거를 보고 불쌍히 여겨 베풀어준 은혜의 기적이라면 우린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훌은 막시밀리안이 가진 탐욕은 알고 있었지만 탐욕의 크기는 알지 못했다. 대체 탐욕이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다.

막시밀리안은 거침없이 계속한다.


"사고로 죽은 양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찌 보면 그 죽음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위한 희생. 그리고, 우리들은 그 희생을 기리는 겁니다"


라훌은 희생을 기린다는 말에 머리로는 동의하면서도 코로는 말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늑대들은 그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양을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죠. 신이 일으킨 은혜의 사고를 우리는 겸손히 받아들이는 겁니다. 양들은 양과 하나가 된 늑대들을 보면서 양을 추억하고... 그럼으로써 늑대와 양은 하나가 되고, 우리 마을은 진정한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늑대는 양을 먹고, 양은 늑대에게 먹히길 원치 않는다는 신의 섭리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먹지 못할 정도로 썩고 부패한 냄새가 들어 있는 말.


"이렇게 양들의 언덕은 안정적으로 생존하게 되고, 남은 양들은 한 터럭의 불안함 없이 생활하면서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늑대들의 불만도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겠지요"


라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코를 찌르는 전염병에 썩어가는 시체의 냄새를 참기는 어려워 점점 인상이 굳어졌다.


"아. 이반 폐하가 문제입니다. 당신께서 사냥하지 않은 신선한 고기 외에는 드시지 않는다고 하시니 차갑게 식어버린 고기를 드시게 하실 순 없죠. 그건 아직 제가 방법을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현명하신 라훌경에게 상의하러 온 겁니다. 라훌 님이라면 이반 폐하가 양과 하나 되는 그 의식을 받아들일 방법을 알지 않을까요?"


라훌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오려 했다. 당장 막시밀리안의 목을 물어뜯어 내장부터 파내고 싶었다. 바람의 송곳니는 죽은 시체를 먹지 않는다. 그건 신선하고 신선하지 않고의 차이가 아니다. 자기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당히 부패한 고기가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난다. 바람의 송곳니들은 사냥해서 고기를 먹지만 그들의 심장이 멈추더라도 피가 식기 전에 먹는 것이 자신들에게 잡힌 생명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바람의 송곳니 출신인 이반에게 그 시체를 들이미는 것은 차라리 자신의 목을 물어달라고 얘기하는 편이 낫다.


"안됩니다"

라훌은 짧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온갖 그럴듯한 말과 상징과 되지도 않는 꾸밈말들을 덜어내고 나면 '사냥 의식'을 거행하자는 막시밀리안의 제안. 그리고 그 의식에 참여할 양은 자신이 구해오겠다는 제안. 라훌에겐 단지 이반 폐하를 설득만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 대가로 막시밀리안은 자기 땅에서 일하는 양들에게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늑대의 먹이로 던져주겠다며 겁박할 것이다. 자기의 땅에서 일하지 않는 양들에겐 자기가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결국 막시밀리안은 정치적 입지,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력, 무엇보다 자기 목숨의 안전을 얻을 수 있다.


막시밀리안이 돌아갔다. 라훌은 탐욕스러운 양 무리에 둘러싸인 왜소한 늑대가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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