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메아리

by 간질간질

진보라 주장하는 젊은 원로원 소속의 양인 니콜라이는 화가 나 있다.

처음엔 양이 죽었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 없는 바스코 때문이다. 바로 이전 양들의 수호자의 우두머리였던 충직한 개 바스코는 땅에 묻힐 때까지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이 답답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바스코를 좋아했고, 가볍거나 이기적이지 않은 침묵의 무게감의 매력에 빠져 양들의 마을을 개들, 그중에서도 바스코에게 맡겼었다. 그리곤 니콜라이가 질린 것처럼 양들은 바스코의 진중함과 말 없음과 원칙적인 모습에 목이 막혀왔다. 가슴이 항상 마른풀을 잔뜩 먹고 물을 마시지 못한 것처럼 갑갑했다.


"바스코! 바스코! 뭐라도 얘길 해 보세요!"

"늑대가 한 짓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스코의 답변에 니콜라이는 펄쩍펄쩍 뛰었다. 니콜라이는 이 모든 것이 늑대가 벌인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쭉한 얼굴에 들어 있는 뇌에는 늑대가 아닌 어떤 가능성도 들어 있지 않았다.


"늑대가 아니라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늑대가 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니콜라이의 입은 바스코의 감정 없는 원칙으로 봉해졌다. 니콜라이는 증거가 없다. 심증만 있을 뿐이다. 늑대란 원래 양을 먹으려는 존재로 태어났기에 양을 죽인다면 늑대일 수밖에 없다. 늑대여야 했다.


"늑대들이 증거를 없애기 전에 수사를 바로 해야죠"

"조사가 끝나면 얘기하시죠"

니콜라이는 숨이 막혀 갔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적당히 맞장구를 쳐야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끊임없이 벽에 대고 소리를 치는 느낌만 든다.

"알겠습니다. 조사를 어서 마치고 다시 찾아오죠"

니콜라이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없기도 했고, 더 있다간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았다.


니콜라이 생각에도 늑대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양 마을 안에서 양이 죽었다면 양이 죽어야 할 이유가 필요한 존재를 우선 생각하는 것이 빠른 판단이다. 모든 가능성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정의에 맞는 것일지는 몰라도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다.


니콜라이는 집으로 돌아가려다 정치적인 판단에 능한 늙은 개 보리스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보리스라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니, 지금은 누구라도 니콜라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서 오십시오. 니콜라이"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아침부터 양의 죽음이 벌어져서 어수선한데 니콜라이가 아니라면 누구와 그런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보리스는 바스코와 달리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는 후각을 가지고 있다.


"늑대의 짓이 아닐까요?"

"늑대들의 가능성이 가장 높죠"

보리스는 니콜라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 즉각적으로

"그럼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요.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확실한 조사를 해야 되겠죠"

"아니. 늑대들이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갑자기 양이 죽어갑니까? 양과 개의 교체 외에 우리 마을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늑대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늑대들이 양을 무시해서는 안되죠"

니콜라이는 원하는 대답을 들었지만 어딘가 알맹이가 빠져 있다. 바스코가 벽이라면 보리스는 메아리 같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되지는 메아리. 또 다른 벽이 느껴진다.

"그럼 제가 다른 원로들을 모으겠습니다. 보리스께서도 다른 개들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늑대와 전쟁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늑대들과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늑대들이야 먹을 것만 보면 이성을 잃고 덤벼든다고야 하지만 그래도 양들이 불러들였는데, 변명할 시간은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절뚝거리는 보리스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보다 앞서 싸우던 보리스는 이제 앞서지 않으려 한다.

"증거를 없애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하늘에는 새가 있고, 땅에는 개미들이 있는데 어디에 숨긴단 말입니까? 마침, 제가 새를 불렀으니 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새들이 먼저 소문을 뿌려 준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니콜라이는 정치 기술자 보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같이 듣겠다고 나서는 니콜라이의 등을 떠 밀어 내고 보리스는 자기가 잘 전달해주겠다고만 했다.


니콜라이는 보리스의 문 밖을 나서면서 별 수확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니콜라이는 누군가 죽어도 아무런 변화 없이 자기 먹을 것만 챙기는 양들을 보자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누가 죽든말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저 양들은 자기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할 텐데..."

니콜라이는 집으로 들어가 모든 창문을 닫고 식사도 거른 체 침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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