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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백 Sep 29. 2019

편두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X세대가 기존 세대와 달랐던 점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득에는 쉽게 반응하지만 비논리적이고 체면치레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것이다. X세대 이후에는 대부분 이렇지만 그전 586 세대만 해도 이렇지만 않았다. 그래서 X세대와 기존 세대 간 갈등이 항상 초반에 많이 발생을 했으며,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는데 586세대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내가 입사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과장님이 새로운 업무를 내게 주었다. 일반적으로 입사 3년 차부터는 선배 도움 없이 스스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고 보고,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주어진다. 업무가 상대적으로 쉬운 부서나 경력자로 입사한 인력은 이 기간이 더 당겨지기도 하지만 경험이 많이 필요로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대략 3년 차쯤에 독립을 시킨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담당하게 된 새 업무가 아무리 봐도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업무라고 판단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일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일에 대한 비합리성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 드렸다. 과장님은 내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들으시고는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위에서 내려온 지시니까 그냥 해.’라는 짧은 대답으로 긴 나의 설명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다.


‘아, 미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짧은 편두통이 나한테 처음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1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위에서 내려오는 많은 요구들에 대해 후배들과 함께 잘 헤쳐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내려온 업무에 대해 입사한 지 3년쯤 된 후배가 이 업무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따져 들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오히려 Loss입니다. 노력 대비 얻는 성과가 얼마 안 된다고 판단됩니다. 그래도 꼭 해야 됩니까?"

"물론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Loss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data를 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거든. 그런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큰 Loss는 아니지 않을까?"

"제 생각에는 얼마 후에 이 일을 없애자고 현장에서 의견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수행을 한다고 해도. 미래가 뻔히 보이는 이런 일을 꼭 해야 합니까?"


'오래전 애사심과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는 나도 이렇게 말을 했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 그 일이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록 몇 년 후에 모두 사라질 것이 뻔히 보이더라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그냥 따라야 하더라고. 나도 그걸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 생각보다 회사가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더라고.'


아마도 회사를 떠나기 전에는 이 짧은 편두통이 사라지지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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