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농부의 아들 두 명은 군인이었는데 전쟁에서 모두 사망을 했대. 농부는 두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개인 예배당이 필요했던 거지. 피터 줌터(Peter Zumthor)라는 스위스 건축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 드넓은 밀밭으로 건축가를 데리고 왔어. 피터 줌터는 농부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고, 가을빛을 받은 끝없는 밀밭을 보고는 농부에게 개인 예배당을 지어주기로 약속을 했대.”
쾰른에서 출발하여 전철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결국은 마지막에 택시까지 잡아 탔다. 끝없는 밀밭 길을 1시간 남짓 걸어서, 하루를 온전히 지난 오후쯤에야 2평 남짓한 Bruder –Klaus Feldkapelle(브루더-클라우스 필드 채플)을 마주했을 때 남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9월 하순의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밀밭 길은 쌀농사 위주인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허리만큼 올라온 끝없는 밀밭 길을 걸어 작은 동산의 언덕을 몇 개 넘고, 마지막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밀밭 색깔과 똑같은 12m의 높이 솟은 오각형의 작은 예배당을 맞이했다.
끝없는 밀밭 길을 걷다 보면 나타나는 브루더-클라우스 필드 채플
“사실, 그 농부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전해 들은 증명되지 않은 뒷이야기야. 원래 이 예배당은 15세기의 가장 뛰어난 성인 중의 한 분인 ‘클라우스 수사’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농부의 개인 예배당이야. 근데 어디 가서 이 예배당 얘기할 때 난 늘 농부의 아들 이야기로 시작하거든.”
마침 예배당에서 나오고 있는 농부 아저씨와 밀밭 색깔과 똑같은 누렁개 한 마리가 막 도착한 우리와 마주치며 눈인사를 했다. 남편과 나의 눈과 마음은 온통 밀밭의 황금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기둥이 서 있는 거 같지? 높이는 12m고 넓이는 2평도 안 되어서 멀리서 보면 베이지색의 기둥으로 보이는 거야. 스위스 건축가인 만큼 피터 줌터 건축가는 ‘나무’를 다루는 데는 탁월한 분이었어. 이 건축물은 원목 112개로 원추형 움막을 거푸집처럼 짓고 그 위에 지역의 노란색 골재로 콘크리트를 만들어서 타설한 거야. 그리곤 골조로 쓰인 원목은 3주일 동안 서서히 태워서 없앴대.”
원목 112개로 원추형 움막을 거푸집처럼 지은 모델링
콘크리트를 매일 딱 40cm 정도만 타설을 하여 건물의 외부에서 보면 40cm마다 대나무 같은 마디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치 밀밭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건물에 표현한 듯했다.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졌다.
일정 간격의 가로줄은 하루에 40cm만 타설 된 콘크리트 자국 -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건물의 외관
“건물 외벽엔 300개의 구멍을 뚫어서 그 안으로 유리를 부었어.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금속, 유리, 조각 전문가가 3년 동안 참여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유리구슬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영롱하고 아름답지?”
벽면의 300개의 유리구슬과 천정의 빛 우물
12m의 높은 천정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햇빛, 노트북 2개 넓이의 촛불 대, 그리고 2명 앉을 만한 벤치 하나뿐이었다. 내부는 조명이나 가구, 마감재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숨이 턱 막히는 고요함과 숭고함을 느꼈다.
소박한 촛불 대
원래 사람은 슬픈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나 보다. 이미 남편은 두 아들 잃은 농부의 빙의되어 당장이라도 천주교로 입문할 것 같은 얼굴 표정이었다.
한 농부를 위한 개인 예배당의 존재에 대해 놀라움과 부러움이 가득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인생에 건축 기행을 나누자면, 오늘의 예배당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라고 감히 정의하겠다고 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쾰른 근처의 마을, 끝없는 밀밭, 농부, 추모를 위한, 개인, 예배당, 화려하지 않은, 소박하지만 꽉 찬 감동을 뒤로한 채 우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