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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 Sep 15. 2021

결국 흘러가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대홍기획 카피라이터 조용호

김원세: 용호 님 안녕하세요. 광고 배우는 대학생 김원세입니다. 그저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찾아뵀어요.


조용호: 잘했어요. 잘 왔어요. 그 먼 길을... 쉽지 않았을 텐데.      


김원세: 괜찮습니다. 그럼 한번 시작해볼게요. 용호 님께서 15년 차 카피라이터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대홍기획 이전에는 어떤 회사에 다니셨어요?     


조용호: 이전 회사는 ‘맥켄에릭슨’이라고 글로벌 광고대행사고, 코카콜라를 담당했어요. 그전에는 소니도 하고, 외국에서는 상당히 큰 대행사인데 한국에서는 단순히 외국계 광고대행사? 제가 입사했을 때는 규모가 작아져서 외국계 광고대행사라는 스타일만 가지고 있었죠.      


김원세: 맥켄이 첫 회사이셨나요?      


조용호: 또 그전에는 ‘뿔 커뮤니케이션’에서 6개월 정도 잠깐 있었어요. 대홍기획은 3번째 회사예요. 광고업계 특성상 이직이 자유로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뼈를 묻겠습니다.’ 하고 오지만, 이직할 때는 다들 ‘그래, 연봉 더 받고 좋은 곳으로 가라’ 해주죠.      


김원세: 그 과정을 통해서 나의 가치를 올리는 거겠죠?     


조용호: 맞아요. 어떤 업계나 그럴 텐데 특히나 광고인은 수명이 짧아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빨리 각자의 일을 찾아 나서는 데 주저함이 없죠.     


김원세: 이직이 결국 회사의 위상이나 연봉의 이야기로 귀결되다 보니까 대학생인 저한테는 이런 주제가 솔깃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조용호: 대학생 때는 취업만 하면 좋겠다 싶고, 취업하면 이직만 하면 좋겠다 싶고 그런 것 같아요. (웃음)     


김원세: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카피님께서 디자인을 전공하시다가 카피라이터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조용호: 가장 큰 이유는 졸업하고 취업이 안 돼서. 졸업하고 면접을 두 군데를 봤는데, 소식이 없더라고요. 시간은 없고 마음은 조급한데 내가 아트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서울에 광고연구원이라는 사립 학원에서 카피라이터 반을 수강했어요. 그때 정철 선생님도 카피 강의를 해주셨고요.      

당시에 수료 과제를 할 때 뿔 커뮤니케이션 대표님께서 심사를 해주셨는데, 저를 좋게 봐주셔서 어느 날 연락을 드리니 면접 한번 보러오라고 해주셨어요. 그러다가 카피라이터로 입사하게 됐죠.     


김원세: 그때를 시작으로 아직까지 카피라이터로 계신 거네요.     


조용호: 그렇죠.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대학교를 들어갔는데, 당시 교수님이 마침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출신이셔서 카피라이팅 관련한 수업도 겸해주셨어요. 또 과거에는 책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카피라이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다행히 카피라이터의 업무는 철저히 상업 문구를 작성하는 일이에요. 문예창작과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Hooking 할 수 있는 헤드라인, 바디카피. 형식에 맞게 소비자 인사이트만 알면 접근할 수 있을 만한 범용성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      


김원세: 저 역시도 카피라이터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거든요.      


조용호: 아 그래요? 제가 만나는 카피라이터 모임이 있어요. 그 친구들을 보면 건축학과도 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온 친구도 있고, 공대 출신도 있어요. 지금은 이 친구들이 제일기획, 이노션에 있고 다들 잘 나가요. 결국은 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김원세: 신입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카피라이터 역량이 있다면 뭘까요? 좋은 카피라이터는 어떤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하세요?     


조용호: 광고라는 게 아이디어를 낼 때 가볍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창의적이고, 시선을 끌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현업에서 볼 때는 광고주가 원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고, 결국은 물건이 팔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최근처럼 코로나 19로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은 마케팅, 브랜딩 비용부터 줄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이 현실로 돌아와야 해요. 제품이 하나 팔리고 두 개 팔릴 수 있는 카피를 고민해야 하죠. 대학생 때는 히뜩하고, 재밌고, 이상하고, 유쾌 발랄한 아이디어를 내지만, 그 세계가 전부는 아닌 거예요. 업계에서는 마른 수건에서 물이 나올 때까지 짜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인즉슨 깊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고요. 하나의 브랜드를 봤을 때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좋은 자질을 가진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이슈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할 줄 알고, 복합적으로 사고하는 친구들이 유리해요. 아이디어를 뒤집어 보라는 말도 많이 하거든요. 아빠의 눈으로 보고, 할머니의 눈으로 보고, 아이의 눈으로 보고. 그렇게 끈덕지게 생각하는 버릇이 준비되면 편하죠.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저도 새로운 브랜드를 마주할 때 그게 쉽지 않아요. 예를 들면 제가 화장품에 대한 인사이트가 전혀 없어요. 마스카라가 왜 하늘 높이 치솟아야 하는지 공감이 1도 안 되는 거죠. 그럼 이건 제가 직접 카피를 못 쓰는 거예요. 그러니 제가 체험해보거나 여성 잡지를 보거나 주변에 물어보면서 얼른 인사이트를 내 걸로 만들어야 해요.      


김원세: 일상에서도 늘 촉수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거네요. 퇴근이 없겠어요.     


조용호: 그렇죠.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카피라이터의 모임 명이 ‘카밤’이거든요. 카피라이터의 밤이라고 해서 카밤인데 그냥 밤에 만나서 술 마시는 거예요. 그런데 술 먹으면 하는 얘기가 업무 얘기예요. 그런데 그게 인사이트를 주니까 서로 재밌는 거죠.       


김원세: 그럼 반대로 카피라이터 직무랑 좀 안 맞는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요?      


조용호: 그 누구보다 내가 그랬던 것 같아요. 아까 말했듯이 아이디어를 가볍게 생각해서 ‘이러면 되지 않나?’ 겉멋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제가 쓴 카피를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어릴 적 일기장을 보듯이 닭살이 돋아요. (두 팔을 감싸며) ‘어휴 완전 중2병.’ 깊게 한번 투신해보고 진득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건데, ‘나 알아.’라고 치부해버린 태도들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김원세: 그런데 신입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요?      


조용호: 맞아요. 그런데 아이디어의 실마리를 주는 일은 있죠. 팀장은 좋은 아이디어를 보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또 광고를 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는 ‘어 저거 괜찮은데?’ 하게 돼요. 다만 그게 완성품으로 최종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저 아이디어를 어떻게 해볼까.’로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대홍에서는 하나의 캠페인이 완성됐을 때, 평가해요. 메인 아이디어는 누구 걸로 시작이 됐고, 누가 디벨롭 했는지. 당사자가 신입이라 하더라도 아이디어의 지분에서는 명확하게 평가를 해주죠.      


김원세: (놀라며) 그렇게 명시를 해둔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겠는데요?     


조용호: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면도 있고.     


김원세: 매번 내 이름이 안 올라온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눈치 보일 것 같아요.     


조용호: 맞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광고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늘 내 이름이 있길 바라는 마음도 있죠.      


김원세: 흥미롭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용호 님은 일상에서 묻어나오는 직무 습관이 있으신가요?     


조용호: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메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메모인데, 요즘에는 간편하게 캡처를 해요. 인사이트가 보일 때마다 캡처하고, 하나를 보더라도 허투루 보는 게 아니라 쓰임새를 고민하면서 봐요. 이 인사이트에 여러 브랜드를 대입시켜도 보고요. 예전에는 책 많이 읽고, 필사도 하고, 스터디도 했는데 그것도 일이더라고요. 캡처가 가장 편리한 기록 방식인 것 같아요.      


김원세: 그럼 퇴근 후의 일상은 어떻게 되세요?     


조용호: (웃으며)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철저하게 육아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일이 끝나고 가면 시간이 늦어서 육아도 잠깐이에요. 취미 생활할 시간이 거의 없죠. 결혼 전에는 운동하거나 골프를 치거나 했어요.      


김원세: 그럼 주말은 어떻게 보내세요?      


조용호: 육아죠.      


김원세: (탄식) 그렇군요. 프로필 사진을 봤는데 아드님이 정말 귀엽더라고요.     


조용호: 귀엽죠? 7살이에요.      


김원세: 용호 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뭘까요?     


조용호: 이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가족이에요. 더 들어가면 아들이고요. 퇴근하고 와서 아들을 재우러 가면 15분에서 20분 정도 얘기를 하다가 자요. 아들이 오늘 있었던 일 투덜투덜 떠들고 자는데, 하루는 이렇게 말해요. “아빠, 나 죽는 게 무서워.” 그러고는 엉엉 울어요. 그 이유를 들어보면, 죽으면 소소한 걸 못하게 되는 거예요. 수영하러 가서 선생님이랑 하이파이브를 못 하게 되고, 대전에 있는 할머니도 못 만나게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못 갖고 노니까 죽는 게 너무 싫대요. 따지고 보면 저도 똑같은 것 같아요. 내가 죽을 때 로또 당첨이 안 돼서 슬픈 게 아니라 소소한 순간들 때문에 아쉬운 거잖아요? 아들이랑 자기 전에 나누는 그 짧은 대화 때문에 삶이 매 순간 소중하다는 걸 느끼죠.      


김원세: 그럼 이런 질문을 드려 봐도 될까요? 아드님이 가졌으면 하는 직업이 있으신가요?     


조용호: 저희 아버지도 그런 걸 바라신 적이 없어요. 저희 아버지는 평생 연구원이셨거든요. 공부도 잘하셔서 박사 학위도 있으시고 모범적인 분이신데 제가 장남인데도 불구하고 공부하라는 말씀을 안 하셨어요.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일 하라고 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아들이 원하는 일 하고 살면 좋을 것 같아요.     


김원세: 사실 이 질문은 용호 님이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직업을 캐내기 위함이었는데 실패했네요. (웃음)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도 광고인 하시겠어요?     


조용호: 다시 돌아가도 어쨌거나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다만 좋은 취미들을 가지고 싶어요. 취미는 내 두 번째 업이 될 수 있거든요. 요즘 세상에는 그게 더 어울리고요. 이제는 덕업일치라는 말도 식상해졌죠. 좋은 취미 하나가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할 기회가 됐어요.      


김원세: 맞아요. 저도 덕업일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 덕질에 대한 중요성을 조언받기도 했는데 저는 덕질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뭔가를 하다가도 ‘아,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도 들고, 시간 낭비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조용호: 저도 그런 면이 있었나 봐요. 젊을 때 어딘가에 깊게 빠져서 오랫동안 해보는 것을 꺼렸던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하는 걸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냐?’ 정작 지금 하고 있는 걸 더 잘할 방법은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내가 가진 기존의 태도를 깨는 것 또한 유의미한 도전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어렵지만.     


김원세: 용호 님은 다시 돌아간다면 광고는 안 하실 것 같아요.     


조용호: 아니면 디자인을 더 해볼 것 같아요. 그래도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더 깊게 파보지 않을까 싶네요.      


김원세: (동감하며)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제 또래인 취업을 준비하는 세대, 자신의 앞날을 열심히 준비하는 세대에게 조언한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조용호: 저도 졸업할 때로 돌아가 보면 그때는 너무 막막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무도 안 알려주고, ‘이게 내 길이 맞나.’ 하는 생각부터 ‘이걸 해서 될까.’ 같은 생각까지 불확실함의 연속이었어요. 그렇게 저도 막연하게 서울로 갔죠. 서울로 안 가면 성공의 첫발을 못 내딛는 것 같고, 그런 마음 때문에요..      

분명 그런 마음들에 흔들리고 또 흔들리겠지만 그런 내 모습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세요. 어차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고, 묵묵히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에 좋은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김원세: 그 시기는 결국 흘러간다는 말씀이네요.     


조용호: 맞아요. 흘러가는 거죠. 결국 흘러가니까 너무 불안해 마세요.      


김원세: 그래도 상경이 근접한 답이 맞긴 한 걸까요?      


조용호: 사실 층간 소음의 문제도 이웃 간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 규정으로 집을 지은 시공사의 문제거든요. 단순히 이웃끼리 싸울 게 아니라 더 큰 문제로 귀결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에 일자리나 취업 인구가 몰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죠. 이건 제 아들 세대가 돼도 해결이 안 될 것 같고요. 물론 지방에도 훌륭한 일자리가 있지만, 저희 업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어머니도 그러세요. “용호야, 난 네가 서울 가서 살 줄 몰랐어.” 그러면 저도 그러죠. “저도 몰랐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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