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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 Sep 15. 2021

나만의 무기

오버맨 AE 박동현

김원세: 동현 님 안녕하세요. 광고 배우는 대학생 김원세입니다.      


박동현: 인터뷰할 정도로 대단한 구석이 없는데 난감하네요. 아무쪼록 재밌게 얘기 나누고 갑시다.     


김원세: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동현 님께서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왜 광고홍보학과를 선택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박동현: 원래는 방송국 PD가 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과에 가려 했어요. 그런데 성적이 생각했던 만큼 나오질 않아서 신문방송학과 대신 다른 과를 선택해야 했죠. 그때 눈에 들어왔던 과가 광고홍보학과였어요.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두 과가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그렇게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하고 접했던 광고기획은 저와 꽤 잘 맞았던 거 같아요. 특별히 다른 진로를 고민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AE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걸 보면요. 지나고 보니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목표가 크게 한 번 바뀌었네요. 너무 목표의식이 없어 보이려나? (웃음) 하지만 목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요.     


김원세: 그럼 하고 계신 일은 어떤가요? 현재 동현 님께 이 일은 재밌으신가요?     


박동현: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 기분 좋죠. 실제로 집행이 되면 소비자가 광고를 만나서 브랜드 인지도가 오르거나, TOM(Top Of Mind) 최초상기도가 오르거나, 브랜드 연상이 바뀐다거나, 더 나아가서 매출이 오르는 등의 소비자 반응들이 있는데 저로 인해서 브랜드가 좋은 성과를 얻게 되면 재미를 느끼죠.      


김원세: 그렇다면 AE의 하루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동현: 우선 AE의 업무는 하루 단위로 진행되기보다는 캠페인 단위로 진행돼요. 저희는 독립대행사니까 경쟁 PT를 따서 물량을 얻어야 해요. 광고주가 브랜드 고민을 알리는 OT를 열면, 자료조사를 하고 팩트북을 만들기 시작해요. 팩트북을 완성하면 그걸 내부에 공유하고, 광고주 OT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팀이 회의해서 방향을 설정하고, 전략을 짭니다. 더 나아가면 컨셉을 뽑아줄 수도 있는 거고요.      


기획팀이 회의를 마친 뒤, 제작팀과 만나서 “광고주는 이런 고민이 있고, 이런 상황입니다. 저희가 생각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제작팀에 OT를 줘요. 기획에서 잡아주는 게 ‘What to say’라면 제작에서는 ‘How to say’예요. 어떻게 풀어낼 건지 아이데이션을 해줍니다. 그렇게 제작이 가져온 아이디어에 AE가 피드백을 주는 과정을 통해서 디벨롭한 뒤에 PT를 하러 가요. 만약 PT에서 수주해서 안이 팔리게 되면 광고 감독을 만나서 콘티 트리트먼트를 해요.      


김원세: 여기서부터는 프로덕션 혹은 감독에게 공이 넘어가는 거죠?     


박동현: 그렇죠. 외주로 넘어가죠. 프로덕션과 안에 대해서 구체화 작업을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트리트먼트를 광고주에게 컨펌받으면 PPM이라는 촬영 준비 노트를 만들어요. PPM은 촬영, 모델, 소품, BGM 등 엄청 구체화한 계획이에요. 이걸 광고대행사, 광고주 차례로 컨펌받은 뒤 촬영에 들어가요. 촬영 이후에는 후반 작업이 들어갑니다. 2D나 녹음, 최종 편집을 하고 나서 최종 시안이 완성되면 광고주 시사를 하고, 마무리해서 온에어를 하죠. 전체적인 틀의 중심에 AE가 있어요.      


김원세: 야근이 잦은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는 걸까요?     


박동현: 맞아요. 우선 광고주가 급해요. 캠페인 비딩 일정을 길게 안 줘요. 그러면 AE는 제작팀에도 고민할 시간을 줘야 하니까 시간을 최대로 아껴야 하는 고충이 있어요. 예를 들면 자료조사와 팩트북을 만드는 데 이틀을 쓰고, 기획 방향을 하루 이틀 고민해서 제작팀에 OT를 빠르게 넘겨줘야 하죠. 제작팀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고민할 수 있게요. 이렇듯 촉박한 일정 속에서 야근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과정이 협업이다 보니 나 혼자 빨리빨리 한다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김원세: 문득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AE의 직무가 모든 직무의 중심에 있잖아요? 항상 AE의 손을 거치기도 하고요. 그런 직무에서 동현 님이 일하시면서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이 뭔가요?     


박동현: “넵.”     


김원세: (멈칫하며) AE는 되게 수용적인 직무네요.      


박동현: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대답을 해야 하니까요.      


김원세: 그다음으로는 어떤 말을 자주 하세요?     


박동현: (피식) “언제까지 줄 수 있으세요...?”     


김원세: 을의 냄새가 확 나네요.      


박동현: 제가 생각했을 때 AE의 주된 업무는 일정 관리, 시간 관리예요. AE한테는 ‘언제’가 제일로 중요한 이슈죠.     


김원세: 일을 하면서 생긴 습관 같은 것도 있을까요?     


박동현: 일상에서 자꾸 ‘왜’를 묻더라고요. 뭘 들으면 “왜?”부터 튀어나와요. 현업에서 일할 때도 광고주가 뭘 해달라고 하면 왜 그런지를 묻거든요. 예를 들어 “A안에서 이 요소를 바꿔주세요.” 그러면 이유를 알아야 해요.      


김원세: 이유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박동현: 이 사람의 니즈가 뭔지 명확히 알아야 일을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고요. 또 이유를 알아야 누군가한테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어요. AE의 역할에는 전달의 기능도 있으니까요.     


김원세: 어쩌면 동현 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은 “왜”가 될 수도 있겠네요.     


박동현: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무작정 “왜”를 묻기보다, 이유를 어림짐작해서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이신가요?”라고 간접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광고주 분들께 고민 없이 왜만 묻는 건 적절한 애티튜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김원세: 이유를 묻는 것에도 센스가 필요하네요. 그럼 동현 님이 생각하시는 AE의 장단점이 있을까요?     


박동현: (긴 고민 끝에) 제가 다른 팀이 돼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AE는 캠페인의 코어예요. 원세 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직무의 중심에 있고요. 그러다 보니 다른 팀보다 주인 의식이 생기지 않나 생각해요. 광고가 온에어 되고 나면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여지도 많은 것 같고요.      


김원세: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있으니까 보람이 더 클 수 있겠네요.     


박동현: 분명히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하긴 한데, 무조건 크리에이티브가 좋다고 캠페인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에요. 매체 전략이 잘 붙어서 성공할 수도 있고, 앞에서 기획을 잘 잡아서 성공할 수도 있어요. AE는 캠페인의 성패를 직접 경험하는 직무인 것 같아요.     


김원세: 반대로 단점은요?     


박동현: 여기저기 다 끼어 있잖아요. 중간에서 고생하는 것? 장점이자 단점이고, 뿌듯하면서 피곤하고, 양날의 검 같아요.     


김원세: 중간에서 고생하는 AE로서, 일을 잘한다는 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박동현: 특별히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서로의 스타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다 다르니까요. 어떤 AE는 매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서 매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완벽하게 할 수도 있고요, 어떤 AE는 전략을 짜는 게 탁월해서 광고주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해결해줄 수 있어요. 또 어떤 AE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식견이 넓어서 안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피드백을 줄 수도 있죠. 나의 무기를 잘 다듬어 가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김원세: 그럼 동현 님에게 부사수가 들어온다면 어떤 무기를 가진 후배가 들어왔으면 하세요?      


박동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후배였으면 좋겠네요. 신입은 무기를 만들 정도의 경력이 없잖아요? 그런데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기초 베이스인 것 같아요. 다른 역량들은 차후에 충분히 다듬어 갈 수 있으니까요.      


김원세: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건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박동현: 모르는 걸 잘 물어보는 게 아닐까요? 또 아까 나왔던 ‘왜’를 에둘러 말하는 것 역시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원세: 확실히 그렇겠네요.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잘할 순 없으니까 모르는 걸 잘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겠어요. 물어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할 테고요.      


박동현: AE로서 마주하는 첫 커뮤니케이션 상대는 사수니까요. 아무래도 그 관계가 잘 풀리면 편하겠죠.     


김원세: 반대로 동현 님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으세요?     


박동현: 제가 볼 땐, 저는 손이 빨라요. 특히 페이퍼 작업이 빠른 것 같아요.     


김원세: 페이퍼 작업이라면 어떤 일인가요?     


박동현: AE는 PT 기획서가 아니더라도 광고주한테 보낼 문서가 되게 많아요. 엑셀로 정리한 견적서나 사소한 바이럴 아이디어 제안서, 아니면 증빙자료일 수도 있고요. 그런 문서 작업 속도가 빠르단 거죠.     


김원세: 아, 엑셀 잘하세요? AE는 엑셀도 잘해야 하나요?     


박동현: 겉핥기로 하는 거죠. 그런데 팀장님께서 저보고 빠르고 꼼꼼하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김원세: (감탄하며) 제가 가진 무기는 아닌 것 같아서 부럽네요. 동현 님이 갖고 계신 무기가 또 있을까요?     


박동현: 최근에는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지난 캠페인에서 디지털 매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했었거든요. 그때 디지털 매체 운영에 대한 경험치가 많이 쌓인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더 잘 해내고 싶은 분야는 전략을 잘 짜는 역량이긴 해요.     


김원세: 그렇군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동현 님께서 AE를, 더 나아가서 광고인을 직업으로 선택하시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으실 것 같아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박동현: 잃은 건 일단 저녁 시간... 내 삶의 활력... (웃음)     


김원세: (웃음) AE를 비추하시는 건가요?     


박동현: 얻은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     


김원세: 만약 동현 님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AE 말고 어떤 일을 하시겠어요?     


박동현: 솔직히 제가 이거 말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네요.      


김원세: 저녁 시간을 잃는데도 다시 AE인가요?     


박동현: (어색하게 웃으며) 안 잃는 회사도 많아요.     


김원세: (덩달아 웃으며) 이거 대외비로 할까요?     


박동현: 아니 뭐, 사실이니까요.     


김원세: (웃음)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드릴게요. 동현 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뭔가요?


박동현: 가장 중요한 건... 잘 모르겠어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만 지금 제일 이루고 싶은 건 돈을 많이 버는 거예요.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어도 불행을 막을 수는 있다고 하잖아요. (웃음)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김원세: 인터뷰 초반에 목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럼 동현 님에게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절대적인 목표는 아닌 셈이네요.     


박동현: 맞아요. 목표도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목표의 우선순위도 언제든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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