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두 번 코스트코에 간다.
아이스박스나 조립식 창고 같은 걸 눈으로 보고 사고 싶을 때, 큰집 식구들이 오는 명절이나 생일에 고기가 많이 필요할 때 코스트코에 간다.
코스트코에 가면 백만 원 쓰는 게 우습다. 물건의 개당 가격을 따져보자면 싸지만 붙이고 모아서 뭉텅이로 팔기 때문에 계산할 땐 금액 덩어리도 덩달아 커진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식재료라든가 여러 물건들은 우리 집에선 한두 번으로 소진이 안 되는 양이라서 필히 소분해 냉장고에 쟁이거나 다른 집과 나눠야 한다.
어린이 두세 명도 너끈히 탈 수 있는 거대한 카트를 끌고 장을 보다 보면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맹렬한 열의가 느껴진다.
소, 닭, 양, 돼지들의 등분된 붉은 살들과 탑처럼 쌓인 소가죽 재질의 핏플랍 샌들 박스들과 총천연색의 밀키트가 진열된 냉장고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게서 강한 소유의 욕구를 느낀다.
맹렬히 먹고 싶고, 손에 넣고자 하는 열의랄까 그들의 강렬한 기세에 가끔 놀랄 때가 있다.
한 공간에서 쇼핑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겸연쩍지만 나는 이 특유의 쇼핑 열기가 조금 두렵다. 내가 보기에는 장을 본 양이 너무 크고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눠 먹거나 두고 먹거나 사업장에서 식재료로 쓸 수도 있고 사정은 개별적이겠지만 송아지 만한 카트 안에 음료수 24개, 소 10kg, 크로와상 24개, 우유 4팩, 파프리카 20개, 생치즈 1.2kg, 와인 6병, 복숭아 2박스… 계산대 앞에서 카트 밖으로 넘칠 듯 아슬아슬하게 쌓인 아이템들을 보면서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해 생각한다.
저걸 다 먹어치우는 것도, 먹어치운 뒤 배설하는 것도, 먹고 먹다가 결국 먹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커다란 소 안심 1팩과 국거리 1팩을 카트에 넣으면서 나는 얼굴이 붉어진다. 이렇게 많이 살 필요 없는데 사고야마는 나와 거대기업의 횡포에 장단 맞추어 살지 않겠다고, 조금 더 환경을 생각하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나 사이가 벌어진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여기에서 물건을 사려면 연회비를 내야 하고, 없는 신용카드를 새로 만들어야 하고,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야 하는데 나는 왜 또 코스트코에 오는가.
남편은 51만 9천 원을 카드로 계산하고 입구를 벗어나기 전에 직원에게 영수증을 보여주고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받았다.
나는 남편을 뒤따르며 1+1 묶음인 베이글 두 봉지를 넣을 냉동실의 공간이 더 있는지, 소고기는 몇 덩이로 소분해 넣어야 하는지 집안 냉장고 공간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는 카트 핸들을 붙잡고,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늙은 남자가 수거해 온 카트를 힘껏 몸 쪽으로 당기면서 밖으로 나왔다. 마른 몸이 한번 휘청였다.
그가 “비켜주세요.” “나와주세요. 지나갑니다.”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 카트를 옆으로 끌어 그와 카트들이 지나갈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가 끄는 카트들이 첩첩이 포개진 채 기차처럼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깊은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카트들이 뱀의 형상처럼 밖으로 빠져나왔다. 카트 머리에 남자 하나, 꼬리에 남자 하나, 둘이서 족히 백 개도 넘는 카트들을 끌고 밀며 쇼핑객들을 가르고 지나갔다.
나는 나이 든 남자의 목과 종아리에 붙은 많은 동전 파스들을 본다. 비키세요, 외치는 그의 울대가 불뚝 솟으며 목에서 파란 핏대가 오르는 걸 본다. 안경의 코받침이 땀으로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는 카트를 당기고 손을 모아 사람들에게 외치느라 안경을 올릴 틈이 없다.
내 세 살 아래 동생도 대학을 다닐 때 이마트에서 카트를 수거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나는 그때 그 애가 지하주차장에서 카트를 수거하며 흘린 땀과 초면인 사람에게 당행을지 모를 가볍고 무거운 온갖 모욕과 흘린 땀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을 손에 쥐고 눈을 질끈 감았을 시간들을 생각했었다.
땀인지 눈물일지 모를 것들로 젖어버린 축축한 이마트 피케티와 조끼를 입고, 발을 재게 놀리며 이곳저곳에 흩어진 카트를 모아 끌고 당기며 초면인 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비켜주세요.”라고 외치는 그 애의 그 시간을 떠올렸다.
체온보다 높은 기온 아래서 에어컨도 없이,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돈을 벌어 밥을 먹어야 하는, 자기 몸이 가진 재산의 전부인 수많은 노동자를 생각하며 나는 코스트코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럴 만한 여유도, 별 근심 없이 낙관적으로 소비할 자신도 없는 사람임을.
그곳에서 카트를 미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런 종류의 일을 할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생각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서... 코스트코에 걸맞은, 격에 맞는 회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사계절 중에 유독 여름에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인간은 고작 피부 한 겹으로 환경에 맞서는 연약한 존재라서 여름이 가장 가혹한 시간인 결까.
그래도 너무 더워서, 물을 마실 시간도 없어서, 10분 숨 돌릴 시간도 없어서 죽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람은 사람답게. 이번 여름은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