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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바캉스

소돌해변에서

by ondo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방학 때 어디라도 가야 한다. 주말에도 갈 수 있는 수영장이나 동네 뒷산은 안된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차 트렁크에 몇 개씩 싣고 최소한 인터체인지는 통과해야 한다. 비행기는 못 타더라도 고속도로는 달려야 어른의 면이 선다. 교양과 인내, 체력과 자립심을 매일 차근차근 기르는 중인 어린이는 방바닥에 눕는 즐거움을 모른다. 복중 피서의 참맛은 홈 스위트 홈에 있음을 모르는 우리 어린이들!


아이들은 기회만 되면 모험을 하고 싶어 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알아버려서 시시한 것들을 아이가 처음 발견하고 눈을 반짝일 때 나는 모른 척하고 눈을 크게

뜨고 하하하 웃는다.


아들 윤이는 심심하면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동네 횟집의 횟감들이 배를 허옇게 뒤집은 채 수조에서 둥둥 떠있는 걸 보면서도,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작게 헤엄칠 때도 문득 “바닷가 가고 싶다.”라고 말한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와 남편이 휴가 때마다 바다를 다녀서 그런지 아이는 바다의 소리와 냄새, 촉각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 주는 우리의 바캉스 주간이다. 작년에 제주도를 다녀왔으니 올여름엔 가까운 강원도로 가기로 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주문진 등대마을 초입에 있는 아파트를 렌트했다. 일주일 동안 남의 집에서 가사 노동의 부담은 내려놓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기로 했다.


나는 호텔이나 리조트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독채나 아파트를 빌리는 걸 선호한다. 유명 호텔이나 리조트는 전문적으로 훈련된 직원이 상주하고 구내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깨끗하고 편리하긴 하지만 뭐랄까 좀 정이 없다. 세련됐지만 깍쟁이 같은 느낌이라 나를 약간 긴장하게 만든다.


고가의 숙박비를 지불하고 들어왔는데도 컴플리멘터리 딱지가 붙은 것을 몇 번씩 확인하고, 사우나에 들어가서 때를 살짝 밀어도 되는지, 수영장에 가면 멋진 몸을 가진 부자들만 있지 않은지, 자기 검열을 하고 호텔 직원들의 눈치를 보는 내가 싫어진다.


몇 해 전에 결혼기념일에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 호텔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구김 하나 없는 이불 속에 들어가려니 부담이 되어서 밖으로 나올 때 자꾸만 이불을 정리하게 되었다. 흐트러진 것과 구겨진 것은 대단히 멋진 그곳과 어울리지 않아서 신경이 쓰였다.


나는 여행지 숙소도 사람 냄새가 나는 집이 좋다. 특히 그 집만의 서사가 있으면 더 좋다. 내가 몇 해 전 묵은 초당마을에 있는 한옥 독채는 100년의 역사가 있는 집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자손들의 손때가 가득 묻어있는 집을 도저히 허물 수 없던 손주가 가족을 설득해 구옥의 뼈대를 그대로 살려 멋진 한옥으로 리모델링했다. 우리 가족은 그 집에 머물면서 100년간 이어져온 원 가족 고유의 추억과 역사를 공유할 수 있었다.


나는 휴가 시즌이 되면 그런 집을 공들여 찾는다. 어쩐지 그런 특별한 가족의 역사와 사랑이 대대로 내려온 집은 편안함과 온기가 깃들어있어서 자고 나면 개운하고 여행지를 떠나는 마음도 가뿐해진다.


강릉엔 여러 번 와봤지만 등대마을은 처음이다.

우리가 머무는 시기가 극성수기인데도 마을에 사람이 많지 않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어제까지 강릉에 진입한 차가 누적 대수로 200만이 넘었다는데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동네가 조용하다. 해안가를 조깅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주민과 밤낚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우리 가족 같은 피서객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우리 뿐인 것 같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는 소돌해변이다. 이름이 귀여워 인터넷에서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니 마을이 흡사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소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숙소에서 소돌해변까지 일곱 살 아이 걸음으로도 15분이면 걸어갈 수 있다. 아침을 먹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해변의 끄트머리에 있는 파라솔을 빌렸다. 평상은 5만 원이고 플라스틱 의자는 3만 원이라 싼 걸로 골랐는데 평상을 고를 걸 그랬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자꾸만 드러눕고 싶어서다.


윤이는 물놀이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바닷속 생물 채집에만 몰두한다. 아들이 뜰채로 잡은 바다 생물은 복어 새끼, 우럭새끼, 망둑어 새끼, 바닷고둥, 감성돔류 같은 것들이다. 몇 발자국 들어가지 않아도 얕은 물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뜰채 몇 번 휘두르니 금세 물고기 수십 마리가 채집통에 가득 찼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민소매 티에 반바지를 입고

금목걸이를 한 청년이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우리 파라솔 안으로 들어왔다. 몸이 윤기가 흐르는 짙은 밤색으로 잘 구워진 걸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치킨 있습니다.”


나는 대면 영업을 하는 초면인 사람에게 좀 야박한 편이다. 내게 얼굴을 쓱 들이밀고 웃으면 어쩐지 공격하는 것 같아서 보통 거절한다.


“괜찮습니다.”


서른셋, 넷이나 되었을까.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산뜻하게 웃고는 봉지를 들고 우리를 지나쳐갔다.


“먹자. 타이밍 딱인데. 어차피 점심 먹을 시간이잖아. “


나는 남편의 속내를 곧 알아채고는 그러자고 했고, 남편이 치킨 청년을 쫓아서 질주했다. 나는 기쁜 얼굴로 다시 온 그에게 2만 6천 원을 송금했다.


계좌이체를 하는 동안 청년이 황송해하는 얼굴로 땡볕 아래 몸을 수그리고 서있는 게 미안해서 나는 어디 치킨이냐고 물었다. 비닐봉지에 kyo로 시작하는 영문이 프린트된 걸 얼핏 본 것 같아서 당연히 교촌인 줄 알고 물었던 것인데.


“제가 방금 튀겨 왔습니다. 이름 있는 덴 아니에요. “


치킨 박스를 열어보니 한 마리가 아닌 것 같다. 닭다리 랑 가슴살, 날개도 빠진 것 같다. 나는 박스 안에 듬성듬성 든 닭튀김을 하나 들고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여보 저 사람 거 팔아주고 싶어서 일부러 부른 거지?”라고 남편에게 물으니 “열심히 살잖아. 우리가 안 사면 저기 저 끝에 있는 파라솔까지 가서 팔아야 하는데. 마침 출출하고 타이밍 딱이고. “라고 이야기한다. 괜히 아들에게 맛있어? 맛있지? 하고 몇 번씩 묻는다.


남편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치킨 기름이 묻은 입을 손으로 스윽 닦아내며 말했다. “별님 엄마 돌아가셨대. 부고장 왔네.”


별님은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 엄마다. 그녀는 얼마 전 둘째를 출산했다.


“아이고 별님이 90년대생인데 엄마가 예순도 안 되셨을 텐데 너무 빨리 가셨네. 편찮으셨나? 둘째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떡하냐. “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린 채 엄마를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그에게 어떤 위로를 보내야 할지, 한 마디도 짐작하기 어려워 먼 수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소돌해변에서 뜨거운 볕을 쪼이고 파도를 타다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지키고 있는 그를 떠올리는 게 미안했다. 하얀 핀을 꽂고 앉아서 엄마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조문객을 맞느라 순간순간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의 시간을 잊는 별님을 생각했다.

“저기요, 이거 어디서 잡은 거예요?”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질 때 아들 또래의 남자아이가 지나가다가 우리 채집통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러고는 제 아빠에게 달려갔다. 나도 잡아줘, 나도 꽃게랑 물고기 잡아줘,라고 투정을 하기 시작한다. 팔다리가 새하얗고 가느다란 그 집 아빠가 어디선가 작은 족대를 사 왔다.


애 닳는 아이의 바람과는 달리 그 집 부모는 1시간 동안 한 마리도 수확하지 못했다. 그 집 애가 우리가 잡은 물고기들과 게와 고둥을 다시 흘깃 보더니 울음 섞인 소리를 내자 아들이 채집한 생물들을 바닷속에 모두 흘려보냈다.

젊은 엄마 아빠는 어린 두 아들의 육아로 지쳐 보였다. 엄마는 애들에게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 하나 둘 셋, 그럼 집에 갈 거야,라는 말을 반복한다. 아빠는 물고기 잡기는 포기하고 눈치 없는 어린 게라도 하나 잡으려고 바위틈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아마 서울에서 밀린 업무를 다 처리하지 못하고 어젯밤에 부랴부랴 짐을 싸서 강원도로 온 지 모른다. 어른은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삶을 살아야지만 애들은 애들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로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나이가 들수록 휴가지에서조차 여러 사람의 인생이 확장되어 내게로 오는 것을 느낀다. 해변에서 나오는 길에 사흘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한 아이 어린이집 담임교사와 통화를 하고, 어제 병원 진료를 받은 아빠의 안부를 엄마에게 묻고, 별님에게 조의금을 전달하면서 어른에게는 온전한 휴가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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