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가 끝났다. 숙소 체크아웃 시간인 11시에 맞춰 나가야 하는데 10시가 다 돼 일어났다. 분주한 마음에 몸이 허둥지둥했다. 전날 조니워커에 깔라만시 주스를 섞어 만든 하이볼을 진탕 먹은 우리는 얼빠진 얼굴로 숙소 구석구석에 흩어진 물건들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나는 건조대에 밤새 널어둔 비키니와 수건, 구명조끼와 아쿠아슈즈를 거둬들이고, 아이에게 양치와 세수를 했는지 확인하고, 아침 먹은 그릇을 씻느라 스텝이 꼬이고 말이 꼬이는데 남편은 새벽까지 하이볼과 와인을 섞어 마신 탓인지 화장실에 들어가서 하세월이다.
숙소에서 나와 피난민 같은 짐들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밀어 넣고 네비에 집 주소를 찍었더니 어쩐지 월요일의 그림자가 벌써 우리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내일은 일요일이니 아직 한 발 남았는데.
때로 기분은 시간보다 솔직한 것 같다.
어느새 남편의 눈꼬리도 입꼬리도 새우 모양이 되었다. 그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이미 머릿속에서 월요일 아침 7시 30분 만원 지하철에 올랐다. 나는 그의 손을 이끌어 아직 우리는 이곳에 있다고, 여름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머무르게 해 주니까. 때로는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단지 커피 한 잔이 더 좋은 에너지를 주기도 하니까.
잔교리 해변은 한적했다. 높게 인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오더니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작은 모래성을 쓸고 갔다. 엄마 손을 잡은 어린아이가 펄쩍펄쩍 뛰면서 웃었다. 모래사장에 빨간색 수영금지 안내 삼각깃발이 꽂혀있다. 저 물에 들어가면 파도가 날 순식간에 멀리 끌고 들어가 저 먼 수평선까지 닿게 해 줄 것만 같다.
우리가 들어간 2층짜리 카페는 꽤 캐주얼한 느낌이었다. 카페 옆길에 솟은 해송 사이로 빽빽이 들어서있는 캠핑족들의 텐트 때문이지, 서퍼들의 알록달록한 서핑보드 때문인지 왠지 이 카페에는 콧방울에 귀연골에 주렁주렁 피어싱을 단 젊은이들이 반라 상태로 바닷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와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것만 같다.
우리는 이 집의 시그니처 커피를 시키고 아이에게는 핫초코를 시켜주었다. 특별히 맛이 있진 않다. 바닷바람에 산발되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기어코 바닷물에 신발을 빠뜨리고 마는 아들을 야단치지 않아도 되고(보지 않아도 빤하다) 우아하게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니 평범한 맛의 커피일지라도 치른 값이 아깝지 않았다.
손님이 계속 들어왔다. 늙은 부부, 젊은 여자 둘, 너무 젊어 아직 아이 같은 여자 둘이 차례로 들어와 빈자리에 앉았다. 여기에선 키가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 같았다. 키순으로 서면 노인이 맨 앞자리, 아이 같은 젊은 여자가 맨 끝에 설 것만 같다. 노인은 키마저 세월에 풍화되었나. 나이 듦이란 뭐든 깎이는 것일까.
여기서 나이가 가장 많은, 머리가 허옇게 샌 노인이 핸드폰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무릎 아래 내려온 아이보리색 반바지와 흰 리넨 셔츠를 입은 모습이 점잖아 보였다.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바다를 보며 이따금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갔다. 카페 이름이 간판으로 걸린 아래가 포토 스폿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밑에서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노인이 간판 아래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격자로 된 간판 턱에 핸드폰을 걸쳐 가로로 놓고 바다를 비디오로 찍었다. 오래도록.
그의 옆으로 크롭티를 입고 화이트 프릴스커트를 입은 키가 몹시 큰 아이 같은 젊은 여자가 지나갔다. 노인은 젊은이에게, 젊은이는 노인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분명 이 자리에 함께 머무는데 서로는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스친다. 20대와 70대가 사는 세계는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면 늙은 사람의 세상은 얼마나 크고 넓어서 금세 뭐든 체념하고 마는 걸까.
커피 위에 올라간 크림을 다 먹고 나니 뒷맛이 썼다.
우리는 양양 고속도로에 올라 신해철의 음악들을 메들리로 들었다.
“이 형님은 왜 이렇게 빨리 갔을까? 보고 싶다.”
나는 신해철 키즈는 아니지만 그가 죽고 나서야 그의 음악을 진지하게 들었고 같은 가사를 여러 번 마음에 굴려 보았다. 그의 음악이 얼마나 세상의 부당한 권위와 촌스러운 장벽들을 우습게 부수어 버렸는지 그가 가고 나서야 알아버렸다.
“이런 난세에 해철이 형님은 뭐라고 했을까? 뭔지 몰라도 겁나 멋있고 시원한 말을 목소리 쫙 깔고 했을 거 같아.“
“노래도 잘 만드는 양반이 100분 토론까지 단골이었어. 근데 가버렸네. 갔네. 영영. “
우리는 신해철이 그의 아내에게 청혼하기 위해 만든 <일상으로의 초대>를 목놓아 부르며 올라왔다. 휴가가 진짜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