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아홉 살 차이다. 아빠가 아홉 살이 많다. 두 사람은 어떻게 결혼생활을 40년 이상 해왔는지 잘 모르겠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집안의 메신저로서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양편을 오가며 두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고 명확히 전달한다. 어느 쪽에서든 딴 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사항은 메모장에 적어 달력 밑에 붙여둔다. 나는 때로 두 사람의 딸이기에 앞서 엄격한 공증인인 셈이다.
아빠는 여름엔 가을 옷을 입고 겨울엔 여름 양말을 신는다. 외출할 땐 실내복을 입고, 실내에선 외출복을 입는다. 더울 땐 창문을 열고, 더위가 다 식으면 에어컨을 켠다. 엄마는 아빠에게 눈을 흘기며 ‘너희 아빠는 참 이상한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아빠는 이상하다기보다 반 박자 아니 한 박자 느린 사람이다.
아이고 덥다, 덥다 덥다 하다 보니 여름 다 갔네. 8월 말이면 여름 다 갔지 뭐. 이제 도톰한 바지를 입어볼까? 환절기에 감기 걸리면 안 되지. 한다든가,
아이고 더워, 아이고 답답하다. 바깥은 바람 좀 불겠지. 창문 좀 열어볼까? 견딜만하네. 아휴 더워서 도저히 안 되겠네. 에어컨을 틀어볼까? 한다든가.
참을 만하니 참고 오래 인내하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하는 시점에 비로소 행동을 개시를 하는데 그 타이밍이란 게 보편적이지 않다. 남들은 선풍기를 분리해서 닦아 창고에 집어넣고, 에어컨에 커버를 씌울 때 아빠는 여름 내내 더위를 참느라 애를 쓰다가 그제서야 에어컨을 트는 것이다.
얼마 전엔 아빠가 집에서 피케티를 입고, 아래엔 포멀한 바지를 입었기에 내가 물었다.
“아빠, 어디 외출하시게? “
“아니.”
“근데 왜 집에서 양복바지를 입으셨어?”
“이거 편해.”
엄마는 저녁밥을 먹다가 “오늘 진짜 배꼽 잡는 일 있었다.”라고 말을 시작한다. 엄마에게 배꼽 잡는 일은 대부분 아빠와 관련된 일이다.
“양평 가는데 오늘 얼마나 더웠니? 잠깐 환기시키나 했지. 근데 계속 창문을 열어두는 거야. 에어컨은 에어컨대로 켜고. 그래서 왜 창문 여냐고. 더운데. 닫으라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아니? 시골에 왔으면 시골 냄새를 맡아야 된대. 양주 사는 사람이 무슨 양평 왔다고 시골 냄새를 맡는다고 그래? 웃기는 사람이야, 진짜.”
또 우리 엄마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런 말들을 아빠에게 한다.
“당신은 오늘 같은 삼복더위에 왜 겨울 바지를 입어?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
“당신은 이 추운 날 왜 여름 바지를 입어?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나는 신경질적인 엄마의 말을 매 여름에, 매 겨울에 들으며 피식 웃는다. ‘아잇, 내 마음이야.‘라고 할 법도 한데 아빠는 엄마 말을 잘 듣는다. 엄마가 서랍장을 뒤져 계절에 맞는 옷을 찾아주면 다시 입고 나온다. 그냥 여름엔 여름 바지를 입고, 겨울엔 겨울 바지를 입으면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아빠는 계속 엄마에게 ‘이상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걸까?
나는 알 수 없다.
우리 엄마는 뭘 잘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보니 현관문의 도어스토퍼가 바닥에 내려진 채 문이 조금 열려있다. 엄마가 간 밤에 구운 생선 냄새를 빼려고 열어놓고 잊어버린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주차장을 내려가 보면 차 뒷문이 활짝 열려있을 때도 있다. 닫아야 하는 게 열려있거나 열려있어야 하는 게 닫혀있거나 뭐 그런 식이다.
남은 찌개를 데우다가 태워버리거나 마트에 장본 것을 놓고 온다든가 자동차 위에 뭘 올리고 출발을 한다든가. 잊는 것, 잃어버리는 것은 엄마가 자주 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는 아침 출근길에 엄마에게 차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지하 1층에 있어. 샛길로 쭉 따라가서 지하 1층 내려가자마자 바로 있어. 샛길로 가야 빨라. 뒷길로 가지 말고. 알았지? “
엄마는 다정하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상세히 차가 어디에 주차되어 있는지 내게 설명했다. 엄마의 말을 따라 샛길을 지나 지하 계단을 내려가 차키를 눌러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하 1층이 아니라 지하 2층인가 싶어서 한 층 더 내려가 봤지만 아무 데서도 삑-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울고 싶은 마음으로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계단을 두 걸음씩 성큼성큼 올라와 옥외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차는 뒷길 바깥에 세워져 있었다.
엄마는 말도 잘 헷갈린다.
“옛날에 그 드라마 나온 애지? 탁구왕인가? “
“제빵왕 김탁구?”
“그래, 그거.”
엄마는 본인이 자주 잊고, 잘 잃어버리는 것이 병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지 의심을 한 끝에 큰 병원에 가서 뇌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병에 걸려서 그렇거나 치매의 전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이건 유전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깜빡깜빡하는 일이 자주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였다. 나는 엄마의 ‘잊기도 잃기도‘하는 유전자가 내게로 왔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신혼 때 결혼반지를 잃어버렸고, 대학을 다닐 때 기숙사 공용 부엌에서 전기포트를 인덕션에 세 번씩이나 올려놓고 불을 낼 뻔한 적도 있다. 이건 그런 유전자가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엄마에게 큰일이 아니라면 다소 시큰둥하게 ‘그랬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아빠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공격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너희 엄마는 왜 그렇게 정신이 없니?라고 하고, 신호위반 딱지가 날아올 때면 ‘너희 엄마는 운전할 때 왜 그렇게 산만하니?’라고 내게 이야기한다. 굉장히 한심한 얼굴로 엄마를 한번 흘겨보고는 내게 흉을 본다. 그 타이밍은 시의적절하다. 그럴 때 아빠의 얼굴은 조금 신나고 후련해 보인다.
엄마는 변명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우린 완전 코스비 가족이야.”
엄마는 생각이 많고, 꿈이 많고,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서 가끔 회로가 꼬이는 것 같다.
남들보다 더 가늘고 많은 회선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이어져있는 사람이라서 가끔은 잊고 무언가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엄마가 너무 많은 일을 제 때에 똑 부러지게 해내고, 한 것 이상을 더 하려고 다른 사람보다 저만큼이나 앞장서서 생각하고 계획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잃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엄마를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엄마는 자는 시간이 아니면 쉼 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까 생각이라도 잠시 멈추었으면, 조금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자꾸만 엄마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내어주고 싶다.
나도 결혼한 지 10년이 넘다 보니 소통 불가인 두 사람이 도대체 40년 넘은 결혼생활을 어떻게 한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짜 이상하고 웃긴 사람일지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짠한 마음, 연민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 불쌍하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훑으며 서로의 어깨를 받치고 가는 것이 결혼생활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모처럼 단 둘이 여행이라도 가면 마주보고 서서 언제 이 사람의 머리가 이렇게 희어졌나, 생각하며 눈밑이 뜨거워지는 그 마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부가 아닌가. 비록 웃기고 때로 한심한 코스비 가족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