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키? 마이크? 제이크?“
“쟈키.”
“아, 맞다. 쟈키. 쟈키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웨얼 아 유 프롬?”
“쑤단. 알아요?”
“아아 수단? 수단!”
가만있자. 수단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였더라. 그래. 일단 더운 나라,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가난하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
대나무가 생장하듯 팔다리가 하늘로 땅으로 무심히 뻗어나간 엄청나게 키가 큰 사람들이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불그스름한 땅을 맨발로 걷고, 거대한 나사 같은 두 개의 뿔이 머리에 솟은 하얀 소떼들을 좇는 곳.
눈곱과 우유가 얼굴에 말라붙은 젖먹이를 안고, 이제 겨우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서서 얼굴에 어른거리는 파리를 무력한 손짓으로 쫓는 시늉을 하는 여자들이 늙은 여자들과 함께 모여 사는 곳.
딸로 태어나면 소값이 되고, 주인이 바뀌고, 아이를 낳고, 평생 한 집에 매여 가사 노동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꿈을 꿔볼 수도 없는 곳.
나는 어쩌면 커다란 아프리카 대륙의 가난한 어느 나라를 수단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굿네이버스나 세이브더칠드런 같은 비영리단체가 만든 비극적인 홍보 영상을 보고서 수단을 떠올렸을 수도. 아프리카는 매우 큰 대륙이다. 거기엔 많은 나라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내게 아프리카는 하나의 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 이미지란 게 후원을 요청하는 비극적인 영상의 한 장면이라는 것이 슬프고 한심하지만 내 나라와 그곳의 거리만큼이나 나와는 먼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더 공부할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내 앞에 놓인 생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그렇다고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속으로 반문하며 내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쟈키가 수단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가 난민이거나 이주민인 이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수단과 남수단의 차이를 모르고, 그가 어떤 이유에서 이 먼 나라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그곳이 가난하고 위험하고 사람들이 꿈을 꾸기 어려운 나라라는 건 알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 난민과 이주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운영되는 카페가 생겼다. 거기서 일주일에 두 번 바리스타로 일하는 쟈키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때 춤을 추는 것 같다. 그의 사소한 춤사위를 아프리칸 오리지널 바이브라고 부르고 싶다. 커피가 맛있는 최적의 온도를 맞춘 물을 분쇄된 원두 위에 붓는 그의 손짓에는 어떤 리듬감이 있다. 아프리칸들은 물을 쪼르륵 흘려보내는 소리라든가 원두가 드르륵 갈리는 소리라든가 커피 바스켓을 바닥에 탕탕 치는 소리에도 어떤 ‘퓌일’을 느끼나 보다. 이것도 아프리칸에 대한 선입견일 수 있지만.
확실히 쟈키의 몸은 일상의 소음, 공기의 진동에 반응하는 것 같다.
나는 먼저 그의 모나리자식 미소를 눈에 담는다. 픽업 테이블에 놓인 너덧개의 내열 유리 서버들 위에 얹어놓은 투명한 드리퍼 위로 뜨거운 물이 담긴 포트를 그가 둥글게 둥글게 돌린다. 쟈키는 손목을 돌리고 엉덩이도 한번 작게 씰룩인다. 그건 나만 본다. 그가 아주 빠른 속도로 딱 한 번 흔들었기 때문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가는 물줄기가 분쇄된 원두 위에 떨어지면서 커피가루가 봉긋 솟아오른다. 손님들은 좋은 소리가 나는 곳에 귀를 모으는 것처럼 좋은 향이 나는 발향지를 찾아 고개를 돌린다. 향이 좋은 음식은 향으로만 먹을 수 있다면.
쟈키의 알듯 모를 듯 한 미소만 보면 그가 과연 이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나는 집중할 때 눈썹 사이에 골이 깊은 산이 생기고, 입술은 앞으로 나오고 눈은 게슴츠레하게 뜨는데 쟈키의 얼굴은 신이 막 반죽을 끝낸 사람의 신선한 얼굴 같다. 읽을 속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그는 리듬을 타며 커피를 내린다. 저렇게 성의 없어 보이고 진지하지 않은 얼굴로 내리는 커피 맛은… 좋다. 쟈키의 핸드드립 커피는 끝내준다는 소문이 동네에 이미 파다하다. 이 또한 아프리칸 오리지널 바이브 아닌가.
나는 그가 내린 커피를 천천히 입 안에 흘려 넣으며, 고개를 기웃기웃하며 그의 엄마와 아빠, 형제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이 나라를 알게 되어 오게 됐는지, 수단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꿈은 무엇인지, 춤을 잘 추는지… 질문할 만한 타이밍을 찾는다. 나는 쟈키에게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그는 내 속도 모르고 계속 커피만 내린다.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또한 기막힌 우연의 일치인지. tv에서 보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내게 끔찍하지만 멀게만 느껴지는데 쟈키의 나라는 궁금해지니 말이다. 그는 거기 사는 동안 어떤 일을 보고 듣고 겪은 것일까. 어떤 기억과 경험이 그를 이 머나먼 데까지 오게 한 것일까.
나는 그의 이름이 마이키나 제이크가 아니고 쟈키라는 것을 반드시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언젠가 내 안에 모아둔 질문들을 하나씩 그에게 던지고 그의 대답을 들으며 그의 나라를 조금 더 공부해 보리라, 넓은 세상에 조금 더 마음을 두어보리라 생각한다.
오늘도 쟈키의 끝내주는 커피를 마시며 나도 엉덩이를 나만 알게끔 딱 한 번 씰룩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