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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by ondo

오늘은 백로입니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입니다.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떨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시기라 백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24절기 가운데 15번째 절기이니 절기상으로도 한 해가 절반을 훌쩍 넘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새로이 경험하는 것보다 이미 경험한 것들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요. 나이를 먹고 달력을 넘기는 데 점점 심상해집니다. 그건 개인의 경험치가 많아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땐 나이가 들면, 때가 되어야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노인이 곡기를 끊으면 죽는다고 하지요. 사람은 그렇게 죽는 줄 알았어요. 이빨이 다 빠지고 사족보행이 나을 만큼 허리가 굽고 아침과 밤을 구분 못할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해야만 그날이 오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죽음에 알맞은 ‘때‘란 없으며,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말이 진리라는 걸 알게 됩니다.

매일 뉴스를 통해 유명인이 죽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죽음이 뉴스거리가 되는 이는 대부분 권력이 있고 돈이 많고 때로 젊고 유명세가 따르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정말 하루아침에 그들은 망자가 됩니다.


주변에 중병을 얻어 머지않은 날에 세상을 떠날 사람들의 소식도 듣습니다. 그들은 제 오랜 단골 약국의 약사이기도 하고, 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이기도 하고, 동네 성당의 젊은 신부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완쾌의 기적과 운을 빌어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아마 어려울 거라는 비관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그들에게 입으로는 힘을 내라고 말하고 두 손을 꽉 잡아보지만 속으로는 그동안 등 진 가족이 있다면 엉킨 매듭을 풀기를,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빕니다. 무거운 만큼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지요.

생과 사를 주관하는 건 신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저도 제가 언제까지 숨이 붙어있을지 몰라요.

저는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앞에 있는 전봇대가 쓰러져서 깔릴 수도 있고, 급발진한 차가 인도를 침범해 치일 수도 있고, 하늘에서 화분 같은 게 떨어져 맞아서 즉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 죽음을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저녁 뉴스 단신에 제가 익명의 사망자로 한 줄 처리될 수도 있겠지요.

이번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엔 회사 사무실 개인 서랍을 몽땅 뒤엎어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그 사람 참 안 됐지만 서랍은 ‘드럽게도‘ 썼다는 동료들의 뒷담화를 듣는 건 망자일지라도 싫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 죽더라도 크게 억울한 마음은 안 들 것 같습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가족이지요. 특히 어린 아들이 엄마 없는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어야 한다는 상상을 하면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끝에 서있는 아찔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와 이별하는 어린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 일은 세상 어디에나 있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는 제게 남아있는 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가족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평상심을 지켜주고 싶어요.

저는 압니다. 개인의 지옥은 개인만이 압니다. 무촌

가족일지라도 그가 지금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그때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하면 그랬어? 네가 그때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뒤늦게 등을 토닥일 수 있을 뿐.

서로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나요. 신만이 가능하시겠지요.

저는 한 사람의 지옥을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그가 고통의 바다를 잘 건너기를, 튼튼한 몸으로 그곳을 무사 통과하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함께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오늘의 무사 기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배웅하는 것 말고 제기 달리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저는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갈 때쯤이 되면 들떴던 마음도, 활력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한낮에 달구어진 땅의 열기가 해가 떨어지면 조금씩 식는 것처럼요.


만물이 생장하는 여름, 생물의 활성도가 가장 높아지는 여름에 자꾸만 ‘끝’을 염두에 두는 저는 아마도 일생의 여름을 훌쩍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기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마흔이 넘어서야 철이 조금씩 나나 봅니다.

지금 가을의 문턱에서 여름을 배웅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여기 서있습니다.

콧물이 나고 눈이 가려운 걸 보니 여기는 계절의 경계가 확실히 맞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이번 여름의 안과 밖, 어떠셨나요.


그동안 저의 연재글 ‘여름을 통과하며 ‘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에 남겨주신 많은 분들의 흔적으로 저의 여름은 조금 더 선명해졌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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