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올랐으니 흘려보낼 것입니다
한밤중인데 달빛이 밝아 집안이 훤했다.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오는 것처럼 달빛은 베란다 창을 통해 흘러들어와 부엌까지 긴 꼬리를 남겼다.
나는 한낮의 햇살을 마주한 것처럼 눈이 부시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여보! 좀 나와봐. 달이 너무 커. 이상해. 이런 달은 처음 봐.”
남편은 방에서 눈을 비비며 나오더니 대뜸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촘촘한 고층 빌딩 사이로 집채 만한 보름달이 유속처럼 미끄러졌다. 둥근달이 너무 커서 빌딩 사이로 지나가다가 이리 쿵 저리 쿵 부딪칠 것만 같았다.
쓱- 지나쳐간 달은 우리를 중심으로 빙 돌아 다시 우리의 시선으로 들어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구가 자전하는 것처럼 크고 둥글고 노란 달이 빙글빙글 돌았다.
남편은 나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흘러가는 달을 가리키며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이렇게 예쁘고 커다란 달은 처음이야. “
나는 보름 뒤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다. 태몽이었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생긴 아이였다.
우리 부부는 생명은 하늘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라 믿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지 않으면 딩크로 살아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이 애달파하셨으나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교제하는 이성 친구처럼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VVIP에 매년 선정될 만큼 매주 재미가 있든 없든 의무처럼 심야영화를 보고, 틈만 나면 여행을 가고, 동네 카페에서 서너 시간 수다를 떨며 신혼생활을 즐겼다.
결혼한 지 3년이 넘어가자 주변인들이 한 마디씩 건네는 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너무 말라도 임신이 안 된다는 둥, 시집왔으면 밥값을 하라는 둥(90이 다 된 할매 잔소리), 어느 지방에 있는 한약방에 가보라는 둥, 애 없이 늙으면 초라해진다는 둥… 남의 일에 뭔 관심이 그리도 많은지 당사자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끌탕이었다. 우리는 정말 잘 지내고 있는데 만나기만 하면 애 소식을 물으니 신경질이 났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임신이 된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니 울음바다였다. 엄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감사 기도를 드렸고, 시어머니는 고맙다며 내 손을 잡고 울었다.
남편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임신테스트기도 오류일 수 있으니 병원에 가보라며 건조하게 말했다. 그는 그때 해외입양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서, 난임, 불임 부부를 누구보다 많이 만났던 터라 그랬을 것이다.
tv나 영화 장면에서는 와이프가 임신을 알리면 뛸 듯이 기뻐한다든가 꽃다발을 사들고 온다든가 하던데 나의 배우자는 어제, 그저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퇴근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임신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그의 반응에 서운하기보다 착상이 잘 안 되거나 유산할 경우 실망하고 싶지 않은 그의 조심스러운 마음이겠거니 하고 이해를 했다.
임신했다는 소식을 가족과 나누고 나니 나는 앞으로 열 달간의 회사 생활이 걱정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감정적으로 몹시 힘에 부치는 일이라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나와 한 몸이라는 이유로 업무에 동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들을 욕과 비난, 재촉 그리고 폭력적이고 원색적인 증언들.
고운 말로 태교를 해도 모자랄 판에 깨어있는 시간 중에 가장 많이 들리는 게 욕이며 악다구니가 될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왜 사람의 귀는 편의상 여닫을 수 없게 만들어졌는지.
나는 친분이 있는 상사에게 임신 소식을 전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감정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속정이 깊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근무시간을 6시간으로 줄이고, 격주로 한 번 그와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와 근무시간에 상담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또한 찾아오는 내담자들에게 매번 “우리 직원이 임신했습니다. 전화해서 너무 재촉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 직원이 지금 임신 중인데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하게 말씀하시면 아기도 놀라니까 배려 부탁드립니다.”라고 면담 끝에 덧붙였다.
그가, 그의 위치에서 일개 부하 직원을 위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순전히 나와 아이를 위해 해주었다. 임신 중이라 그런지 그의 그러한 배려와 다정한 말에 나는 자주 눈시울이 붉어졌고, 조금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나이 든 여성이 묵주알을 돌리며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는 불룩 나온 내 배를 내려다보고는 “아휴, 임산부가 이렇게 힘든 일을. 세상에……제가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람의 인상을 잘 읽어내는 편이다. 남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 사람, 정신을 놓은 것 같은 사람, 특정 목적(사이비종교 전도, 호객 등)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길에서 내 시선에 걸려들면 보폭을 넓히거나 줄여 가까이 마주치지 않도록 한다.
나는 링컨이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인상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신뢰한다.
이 나이 든 여성은 인상이 단순했다. 맑고 선했다.
“아……네.”
나는 그녀 앞에 서서 아이가 놀고 있는 태를 쓰다듬듯이 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녀는 허리를 숙인 채 내 배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었다. 따뜻한 손의 온기가 전해졌다.
“이 아이에게 기쁨과 평화, 당신의 모든 힘으로 이 작은 생명을 지켜주소서. “
나는 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 정신적으로 꽤 힘든 전화 상담을 했던 터라 마음이 금세 물러져서 눈가가 뜨거워졌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일을 한 이후로 낯선 이로부터 축복을 받은 일은 처음이었다. 욕이 아닌 축복의 말이라니.
아이는 타인과 나의 경계를 허문 자리에 꽃을 피워냈다. 눈 속에서 피어나 봄을 알리는 샛노란 설연화처럼.
만삭이 되어 출산 휴가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까지 나는 출근을 해서 같은 일을 했다.
임신을 해서 배가 나왔든, 아니든 개의치 않고 악다구니를 쓰는 무례한 사람도 개중에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 배를 내려다보고는 언성을 낮추거나 입 밖으로 쏟으려고 했던 모나고 거친 말들을 주워 담았다.
비록 음식 사진만 봐도 구역질이 나오는 심각한 입덧으로 고생했지만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덕분에 임신 기간 내내 안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을버스에 오르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고등학생과 점심시간 때라도 누워있으라며 들기도 어려운 무중력 의자를 집에서 끌고 온 나의 상사와 임신 소식을 듣고 울어준 나의 소중한 벗들과 내 삶의 버팀목인 엄마와 가족 그리고 내 인생의 동반자인 짝꿍에게 고맙다는 단순한 말이 무색할 만큼 고맙다.
내가 알게 모르게 받은 사랑과 배려, 이 끝없는 다정한 마음을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까. 나는 이렇게 마음의 빚을 가슴에 얹은 채 뜨거워진 심장을 다독이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소중한 것들이 턱끝까지 차올랐으니 나도 남에게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