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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Nov 22. 2020

드레스덴서 프라하로 돌아오며

독일은 체코 옆에 붙어 있는데, 프라하에서 가장 가까운 독일의 도시가 작센의 주도인 드레스덴이다. 차로 한 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프라하에 놀러 온 지인들은 독일을 맛보기 식으로 관광하고 온다는 기분으로 드레스덴을 다녀오기도 한다. 드레스덴도 프라하 못지않은 멋스럽고 고풍스러운 도시다. 


드레스덴은 이태리의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와 비슷하다 해서 엘베 강의 플로렌스(피렌체)라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말 투르게네프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당시의 드레스덴을 파리 정도를 빼고는 유럽 도시 중  대단히 선망하며 가고 싶어 하는 선진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로 얘기한다.


드레스덴 역의 크리스마스트리(좌), 역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길(우)


드레스덴은 고풍스러운 도시임에 틀림없으나 프라하와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프라하는 진짜 오래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된 나머지 흐린 날 도시의 골목을 걷노라면 다소 우울하기조차 하다.


반면 드레스덴은 많은 건축물들이 바로크 시대 이후의 것이라 화려하고 장식적인 데다, 2차 대전 당시 대부분 폭격을 받고 복원돼 새롭고 산뜻한 인상을 준다. 95m나 되는 높은 돔으로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과 비견되는 백색의 프라우엔 성당이 그 대표적 예다. 


베버와 바그너가 활동한 젬퍼 오페라극장(상), 드레스덴 성당(중), 베르사유를 흉내 낸 츠빙거 궁전의 왕관 모양의 지붕


게다가 드레스덴은 과거 사회주의 동독에 속해 있다가 통일이 된 이후 독일 정부의 집중적 지원을 받아 자본주의의 모던한 도시로 변신하면서 고풍의 건물들이 이와 어울려 아주 럭셔리하게 보인다.


드레스덴은 한 마디로 프라하보다 풍요롭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이십 세기 초 근대 독일이 자본주의로 드라이브를 걸던 시절, 프라하에 거주하던 카프카가 드레스덴에 놀러 가서는 드레스덴은 어디든지 신선한 물건들로 가득하고, 청결하고 딱 부러진 서비스와 함께 콘크리트 기술의 결과로 건물의 외관이 거대해 보였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루터 동상이 있는 프라우엔 교회


그런 탓인지 프라하 교민들도 그렇지만, 프라하에 놀러 온 지인들은 드레스덴을 가자면 관광도 관광이지만 그중 쇼핑할 시간을 일부러 쪼개서 간다. 대학생이었던 딸이 프라하를 왔는데, 같이 드레스덴을 가자니까 옷 쇼핑할 궁리부터 했다.


딸과 함께 갔던 시기는 이미 신년이라 크리스마스 마켓은 파장이었고, 그날따라 겨울 엘베 강에 사나운 비바람이 불어 쳐 구경이고 뭐고 할 여지가 없었다. 모녀는 기회를 잡았다 싶었는지, 미국의 갭이나 일본의 유니클로 같은 식의 유럽 SPA 브랜드인 프리마크(Primark)라는 의류전문점을 가서 4시간 정도 쇼핑을 했다. 옷 가성비가 엄청 좋은 곳이라나? 하릴없이 기다리던 나는 역시 매장 바깥서 아내와 대학생 딸을 기다리고 있던 독일 아저씨와 더듬대는 영어로 동병상련의 대화를 나누기조차 했다. 


한 번은 아내의 지인들과 같이 드레스덴을 간 적도 있는데, 이번엔 독일의 체인 백화점인 칼슈타트 백화점으로 가서 꼭대기 층에 자리한 점심 뷔페들을 한바탕 자시고 나더니만, 소위 ‘쌍둥이 칼’로 유명한 헹켈의 주방용품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구내에는 우체국 비슷한 코너가 마련돼 있어 구입한 물건을 한국의 주소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백화점 직원들은 이런 한국인 고객들에 익숙해있는 눈치인 것 같다. 아내가 계속 부엌칼 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며 망설이고 있는 동안, 어떤 분은 한국에 있는 며느리에게 압력솥 등을 폰 카메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 구입 여부를 상의하고 있었다. 

 

나는 책이나 음악 시디 말고는 특별한 쇼핑거리가 없는 사람이기에, 이런 걸 보면 주제넘게  비웃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내가 오래된 중세의 건물에 아직 사회주의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 프라하에 꼭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과 현대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이 잘 어우러진 드레스덴을 두고 프라하로 돌아갈 땐 마치 고향을 떠나오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았다. 자본주의가 낳은 풍요와 속물성에 반발하면서도, 나는 이미 그런 것에 익숙해 있는 한국서 온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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