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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같이 있어야 했기에 죽다! 전태일

by 양문규 Jul 16. 2023

한국소설사에서 노동자들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920년대 후반 경부터다.   일본의 독점자본 노구치를 비롯한 미츠이, 미츠비시 등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식민지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공장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그린 노동자소설도 출현한다.  


당시 노동자 소설 창작은 대단히 왕성해 노구치 재벌이 세운 흥남 질소비료공장에서 실제 노동자로 일했던 이북명이라는 공장 출신 작가가 출현할 정도였다. 그와 문학적 교류를 했던 전문 작가인 한설야는 노동자소설 <황혼>을 1936년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한다. 


앞서 여성작가 강경애는 인천 방적공장의 여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인간문제>를 1934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다. 식민지 시기 활발하게 창작된 노동자 소설은 해방 직후 잠깐 부활하는 듯싶다가 이후 남한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한국전쟁 이후 거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노동자소설은 1980년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재등장한다. 물론 이전 1970년대 등장한 황석영의 <객지>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은 노동자 소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작품들이었다. 


오랜 기간 자취를 감쳤던 노동자 소설이 다시 등장하는 데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22살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은 전태일의 사건이 그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전태일은 정확하게 대기업 공장노동자는 아니고  평화시장 피복제조 공장 노동자였다.


당시 그의 죽음은 지식인들의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 그러나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 전태일이 노동운동의 선구자나 뛰어난 계급의식의 실천자로서 보다는, 인간에 대해 따듯한 마음을 가진 도덕적 감성이 풍부한 자라는 사실에 감명을 받게 된다. 


전태일이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투쟁방법을 택했던 것은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태인 여공들의 처지를 괴로워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의 재단사와 재단보조는 주로 남자들이었지만 미싱사와 ‘시다’는 대부분이 여공들이었다. 


시다는 대개 미싱사(혹은 재단사)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일을 하는데 이들은 하루 종일 다리미질과 실밥 뜯는 일, 실과 단추를 나르는 일부터 업주나 미싱사나 재단사의 사적인 잔심부름까지도 하게 되는 무척 힘겨운 노동을 한다. 


시다는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12~15살의 소녀들이 기술을 배워 집안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다. 평화시장 일대의 공장들 문 앞에는 ‘시다 구함’이라는 구인광고가 몇 공장 건너 하나씩 붙을 정도였다.  


당시 여공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일했는지, “평화시장 여공은 시집가도 삼 년밖에 못 써먹는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전태일 역시 시다 일부터 시작했는데 그가 재단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이 불쌍한 여공들에게 온정을 베풀어 잘해 주리라는 결심을 굳게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막상 재단사가 됐을 때, 그 지위를 이용해 어린 여공을 돌봐준다는 것이 한계가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전태일은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항의 투쟁의 여러 가지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그는 결단을 내렸다. 유언 같은 그의 마지막 일기 구절엔 다음과 같이 씌어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그는 불쌍한 그들 속에 살아 그들과 영원히 같이 있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전태일은, 80년대 정화진의 <쇳물처럼>(1987년), 방현석의 <내딛는 첫발은>(1988년)에 등장하는 당당한 저항적 행동의 남성노동자는 아니다. 단지 그는 타인의 슬픔 속에 뛰어들어 그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누군가의 슬픔이 되고자 했다. 그러한 그의 슬픔이 훨씬 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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