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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Jun 22. 2022

백수의 삶

백수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그러다 약속이 있어 오후 늦게 샤워를 했다.


사실 직전에 와이프가 냄새난다고 씻으라 난리를 쳤지. 그래도 참았지만 오늘 후배 만나는 데 안 씻을 수가 있나.


뜨거운 물이 나온다. 비누로 온 몸을 발랐다. 그리고 씻는다. 등도 맨날 벽기둥에 긁는 다고 구박받았던지라 오늘은 모처럼 긴 타올로 등도 박박 씻었다.


머리에 샴푸를 듬뿍 뿌리고 가려운 며칠 묵은 머리 때를 벗겨낸다. 개운하다. 귀까지 말끔하게 씻고 물기를 털어내고 수건으로 닦는데. 글쎄.


거실에 에어컨을 틀어 놓아서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머리 물기를 대충 닫고 욕실 문을 열기 잘했다. ㅎㅎ 머리를 닦고 팔의 물기를 닦는데 아 글쎄. 흑. 때가 밀린다. 그것도 수건 닦는 그대로. 수건 닦는 방향 그대로 가지런히 팔 위에 쌓이는 때. 흑. 날도 더운데 뜨거운 물로 불렸다 보니 모처럼의 샤워에 며칠 묶은 때가 나오는 거다. 서글펐다.


어쩌겠는가. 다시 씻어야지. 원래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했는데, 물론 그럴 때도 있긴 했지만, 백수는 결코 과로사하지 않는다. 때만 낄 뿐이다.


이런 게 백수의 삶이다. 나도 화려한 백수 시절을 제법 많이 가져봤지만 백수로 과로사하려면 무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오히려 직장인이나 창업자의 삶 보다도 더 말이다.


그래도 빡빡 미니 개운하다. 그래, 시간 많은 게 백수지. 그래도 안 늦으니 뭐 어떠겠는가. 지금 가면 되지. ㅎㅎ


오늘 만난 후배들은 이런 사실을 모를 거야. ㅎㅎ 다들 얼굴 좋아 보인다는 얘기만 할 거야. 왜냐면 집을 2주 동안 나간 적이 없으니 피부가 뽀얗긴 할 테지. 그게 장점이겠지.


그렇게 난 술 먹으러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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