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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롱올립 Dec 27. 2019

출근하는 마음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주위의 동정 혹은 호기심 어린 시선이거나 자기연민 또는 자격지심일 것이다. 정확히 무엇이 나의 직장생활에 방해가 되는지를 콕 집어 말할 순 없다. 다만 직장인으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고통, 어려움에 더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을 쓰는 단 하나의 목적은 글을 쓰는 동안 나 스스로가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오늘은 12월 26일, 한 해동안의 일터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겨두기에 좋은 날이다.

  작년 연말에 새로 업무분장을 하면서 3년간 해오던 중요 직책을 내려놓기로 선언했다. 직장에서는 많은 우려와 회유 그리고 오해가 쌓였다. 잘 해오던 일을 갑자기 내려놓고 비교적 일의 양이 적은 자리로 가겠다고 자원했을 때, 사람들은 한창 일할 나이에 ‘놀기’를 선택한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시력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직장에 공식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내가 눈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쪽에서도 구태여 내 장애를 고백할만큼 동료들과 마음의 거리를 좁혀갈 필요설을 느끼지 못했기에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정상인'의 탈을 잘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는 나를 고백해야만 했다. 그 업무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그 날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한 끝 차이였고 자존심을 내려놓고도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다. 간혹 실수를 하기는 하지만 그 실수는 대부분 시력의 한계로 인한 것들(예를 들면 오타나 업무 속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느린 것)이었다. 나는 독립적이고 추진력도 좋은 편이라 주어진 일은 늘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짓는다. 직장에서도 나의 업무능력을 곧잘 인정해 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렇게 눈이 나쁜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그간 나에게 무심했던 것을 미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몇몇은 3년간이나 일을 잘 해보다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나며, 잘 해오던 일이니 힘들지만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말들이 귓가를 서성이며 공기중을 맴돌다 양볼에 뜨거운 입김을 훅 내뿜었다. 얼굴이 주체할 수 없이 달아올랐다. 갑자기 인생이 드라마틱해지고 내가 가혹한 운명에 맞서는 비려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주인공은 주인공인데 어딘지 모르게 비루하고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올 한해 맡은 자리는 업무량이 적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꿀’ 자리였다. 나처럼 서른 초반의 새내기가(?) 넘볼 수 있는 지리가 아니었다. 명퇴를 앞둔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좀 쉬라는 의미로 만들어 주는 자리였다. 이 업무를 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시각장애 5급’이라는 공식적인 네이밍까지 써가며 스스로를 변호했기 때문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상급자와 짧은 면담을 거치고 여러번의 회의에 참석해서 내 건강상태를 다시 정확한 말로 설명해야 했다. "지금 하는 업무는 서류작업이 많고 처리해야할 공문도 많습니다. 저는 눈이 나빠서 사실 다른 업무에 배치되어도 힘든 점은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하는 일은 그 중에서도 업무강도가 센 편이니 내년에는 다른 자리로 가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듣고 싶은 것은 일을 피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사유'였다. 나는 진실하고 정당한 사유를 들었지만 내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하면 할수록 어쩐지 변명한 늘어놓게 되는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나는 명예욕이 있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 기억에 직장에서 ‘거절’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착한 편은 아닌지라 아마도 그 또한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착한 사람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성격이 이런지라 '나는 실은 시각장애인이며 늘 일을 하는데 부담을 느껴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력이 감퇴하는것이 두렵다. 이제 일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고 얘기하면서 나의 자아는 무너져내렸다. 나를 가장 괴롭혔던 생각은 이런 감정들(예컨대 인정욕구라던가, 페르소나가 벗겨진 것에 대한 수치스러움)이 누구에게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특별히 꼬인 사람이라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둔자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괴로웠다. 특별히 모나거나 틀어진 것이 평험한 나인데도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이 산재해 있는 걸 보면서 무력감이 너무 크게 밀려온다. 잘못된 것이 없는 것도 잘못된 것 같은 말장난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내 존재가 참을 수 없이 무거웠다.


그러나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을 지키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건강을 염려하기 시작한 것은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와 함께 미래를 꿈꾸면서부터였다. 평범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시력이 감퇴하는데 하물며 나는 어떻겠느냐며 남편은 지금부터라도 좋지 않은 지금 이 시력을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건강은 이제 더 이상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남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오래도록 남편과 건강하게 같이 살고 싶다. 지금보다 시력이 더 안좋아져서 남편에게 짐이 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결혼이라는 것이 참 신기히다. 내 삶이 제일인줄 알고 살다가 결혼을 하니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기고 내 미래에 다른 누군가가의 소망이 더해진다. 뭐든지 더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는데 요즘은 점점 더 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 없이 사는 것이 편하고 부담이 훨씬 덜 된다. 이제 나도 조금씩 철이 드는 것일까.


커미앙웃을 하고 난 이후에는 '될 되로 되라.' 식의 무대뽀 정신이 조금 장착되었다. 내가 가진 패는 이미 다 까서 더 이상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으니 지금부터는 윗분들의 몫이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배치될 것인가. 어느 부서에서 나를 필요로 할까. 어떤 상급자가 나를 자신의 부서로 데려갈까. 그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게 될까. 혼자 일할 수는 없으니 어디로든 배치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환영받는 사람 혹은 깎두기 같은 존재 둘 중 무엇될까' 내년도 업무분장을 위해 줄타기를 하고 인맥관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이리 저리 셈을 쳐보았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디서든지 잡초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용감히 살아남으리라고 소리없이 외쳐 보았다. 용기가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자존감을 키워나가지만 나에게 이제 직장은 더 이상 그런 꿈의 무대가 아니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밥벌이'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말이다. 돈 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일이기에 '밥벌이'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밥벌이'에 걸었던 다른 고차원적인 가치들이 이제 퇴색되어 그 가치를 잃었다는 뜻이다. 내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없다. 이미 떨어진 자존심이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꿈틀거릴 새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밥값’은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떳떳하지 못한 것도 없다. 하지만 꿈을 잃은 사람은 공허해지니까 나는 당분간 일을 하면서 이 텅 비어버린 마음에 무엇을 새로 채워넣을지 고민해야 한다. 내 스스로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는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까.


한편 외로움은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았다. 신체적인 장애가 타인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우리는 절대 만날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으로 명명된 나와 장애인이 아닌 동료들은 이미 그 이름부터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저들을 이해할수도, 저들이 나를 이해할수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침울해졌다. 내 이름 앞에 '장애'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를 자물쇠없는 고독의 방에 가두었다. 갇힌 내 마음에 문을 열어줄 이는 아무도 없없다. 벽을 쌓아 올린 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벽을 쌓아올리는 나를 말릴 수가 없었다. 나는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전보다 훨씬 더 밝고 명랑한 척을 했지만 동료들과의 대화는 갈수록 피상적이고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가식을 떨고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직업은 교사다. 제자들에게  존재가 과연 최선인가 자주 고민한다.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앞장서서 이끌어 주어야  위에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신체적 한계로 인해 아이들이 받을 불이익이나 불편이 짐작이 간다. 나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아이들의 면면을 들여야 보아야 하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짜증도   같다. 아이들의 요구에 즉각 반응해주고 행동도 민첩한 교사, 스마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알아서 매일매일 신나고 재밌는 수업을    있는 교사, 멀리서도 아이들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반갑게 인사해 주고 교사가 되고 싶은데 나로선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교사의 조건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꼽는다면, 나는 신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할  아니라 마음의 힘도 그리 탄탄하진 못한  같다. 나는  위선적인 교사일 수도 있다. 스스로도 다잡지 못하는 바스락거리는 마음을 잡고 살면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다니, 맙소사.  직업의 중함생각하면 나는  작아진다.  


오늘도 일터에서 잘 버티고 돌아오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다. 나는 이만큼의 버스럭거림을 두런두런 써내려 가지만 감히 표면위로 올릴 수도 없는 무겁고 무거운 마음을 붙잡고 사는 이들이 많다. 많이 부족한 나이고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우리 장애인들을 월급이나 축내는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들로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 몫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부디 오래오래 일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출근하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아자아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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