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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추꽃 Jul 17. 2019

그 남자의 프러포즈가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가 완성해 나가면 그만이다

예단 생략, 예물 생략, 스튜디오 촬영 생략, 폐백 생략.


작은결혼식을 추구하는 형태로 결혼 풍습이 바뀌며 모든 것이 간소화되고 있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프러포즈가 아닐까 싶다(난 아직까지 주변에 이것을 생략하기로 한 커플은 보지 못했다. 아마 무사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오히려 부모님 세대 분들은 안 했다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어찌 된 일인지 프러포즈만은 날이 갈수록 한국의 결혼식 간소화 풍토 역행하고 있다.


물론 뭘 해줘도 형식에 큰 관계없이 감동을 받겠지만, 모든 요소가 마음에 쏙! 들어 내심 아쉬움이 일체 남지 않는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가 몇이나 될까? 완벽한 프러포즈의 요건을 맞추기는 정말 힘들다. 사실 서프라이즈 요소(짜잔~ 오늘일 줄 몰랐지~)타이밍(결혼에 임박해서 하면 이미 예비신부는 프러포즈 언제 하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서프라이즈 요소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만 잘 맞추면 그래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긴 하지만 나머지가 정말 어렵다. 여자들이 꿈꾸는 바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10점 만점에 8점?>

'결혼'이라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꺼낼 때의 프러포즈에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 결혼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여자들에겐 이미 결혼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받는 '이벤트성' 프러포즈는 많이 늦은 것이다.

(부작용 주의: 마음의 준비 문제 때문에 거절당할 가능성도 있다. 내 친구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을 때 남자 친구가 방하나를 풍선으로 꾸미는 엄청난 프러포즈를 하여 대답을 보류(?)하고 3년을 연애한 후 결혼했다..)


기승전 을 많이 써야 가능한 화려한 프러포즈 바라는 여자들도 있다. 평소에는 잘 못 가는 그런 근사한 곳에서. 요즘은 행사 업체들이 잘 되어있어서 별다른 노력 없이 돈만 내면 고급 호텔 방을 완벽하게 꾸며주기도 하고, 요트를 빌릴 수도 있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좋은 뷰에, 음악에, 풀코스로 먹고 마지막에 짜잔~하며 반지를 선보일 수도 있다. SNS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에도 매우 적합하다.


다 필요 없고 예비남편의 피땀이 들어간 벤트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돈만 많이 써서 본인이 손하나 까딱하지 않은 프러포즈는 그저 서운할 뿐이다. 차라리 학 천마리를 받았으면 받았지 비싼 식에서 반지 하나 띡 받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정성 들여 쓴 편지, 본인이 직접 꾸민 방 등 노력 포인트들이 들어가 줘야 한다.


그런데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느 한 유형에 속하지 않아 너무 결혼식에 임박하지 않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돈도 적당히 쓰고, 정성도 들어가고, 우리만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프러포즈 보편적인 정답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남자들이 좀 불쌍하다. 솔직히 이렇게 써놓고도 어려워 보이는 데 이 중 하나만 빠져있어도 '다 좋았는데 이 부분은 좀 센스가 없'나중에 아쉬운 소리가 나오니 말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내 친구는 자취방을 예쁘게 꾸민 프러포즈를 받았다. 추억이 담긴 사진과 풍선과 조명 등 나중에 사진 찍은 것을 보니 참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그런데 장소가 늘 본인이 생활하는 자취방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남들처럼 좀 색다른 곳을 빌리지 센스가 없는 건지, 돈이 아까운 건지 모르겠다며 내심 속상해했다. B라는 친구는 남편이 고급 호텔방을 빌리고 행사 업체를 고용해서 완벽하게 꾸며놓았다. 그런데 너무 결혼식이 임박해서였던 점(이틀 전이었나), 본인의 아이디어가 거의 안 들어간 점들을 아쉽게 생각했다. '하긴 해야고, 그냥 귀찮아서 업체 쓴 게 아닐까'라며.




<이런 프러포즈도 있답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더니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남편도 예비남편 시절 아마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유형(?)의 아쉬운 프러포즈를 창조해냈다. 원래 본인이 계획하고 있던 날짜보다 조금 빠른 시기에 마침 우리의 기념일이 있어 갑자기 기념일에 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 그는 그 날짜만 지킨 미완성(?!)의 프러포즈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서프라이즈에는 성공했다. 우리는 큰 마음먹고 호캉스를 가서 잘 놀다가 방에서 쉬던 와중 남편이 갑자기 편지를 읽었다. 내용은 프러포즈였다! (그런데 왜 아무거도 없는 걸까!) 그러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이 없어 노트북에 못 담아 왔다며 함께 와이파이를 잡아 노트북으로 영상을 옮겨 담고 (심지어 미완성인) 영상을 시청했다(다행히 그래도 결혼식 전에는 완성되었다). 그러곤 나에겐 절대 돌아보지 말고 옆에 가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라고 하며 30분이 넘게 그 자리에서 침대를 꽃잎, 사진, 풍선, LED 촛불 등 여러 가지 소품으로 꾸몄다(같은 방이었으니 옆에서 실시간으로 풍선 부는 소리 등이 들렸다). 어느 업체 못지않은 훌륭한 솜씨였다. 그 후 중단했던 편지 낭독을 계속해나갔고 무릎 꿇고 반지 짜잔! 나를 위한 그의 진심이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하긴 했다.


하지만...... 갑자기 아쉬운 소리 하던 친구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감정선이 끊기네요.... 보고 있던 드라마 뒷내용이 궁금하고......(무슨 말인지 느낌 오나요...).


그래도 우직하게 미션을 수행한 귀여운 남편이 고마워서 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완벽한 프러포즈 구상했다. 이벤트 업체에 라디오 사연 형식의 프러포즈 내용을 한 페이지 써서 미리 라디오 PD에게 제출해 녹음 파일을 받은 후(진짜 라디오 사연처럼 읽어서 녹음해주고 코멘트에 신청곡까지 틀어준다) 여행을 가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라디오 좀 들어보자며 파일을 틀었다. 웬 라디오냐며 시큰둥하다가 '이번은 서울에 사는 OOO 씨의 사연인데요~'라는 말이 울려 퍼질 때 당시 예비남편의 놀라는 모습이란! 이벤트 성공에 너무 뿌듯했다 후훗.




신기하게도 이때 내 마음속에 잔존해있던 신개념 '미완성 장시간 프러포즈'에 대한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지며 깨달은 바가 있다. 프러포즈는 내가 받아야 하는 무형의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결혼 준비 과정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완성하는 하나의 '추억'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답 프러포즈를 준비하면서 무척이나 설레었고, 기발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했으며, 남편이 좋아해 할 생각에 매우 기뻤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을 때도 행복하지만,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할 때 느끼는 보람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은가? 프러포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만약 남자친구의 프러포즈에 무언가가 서운했다면 우리의 '추억'을 그 상태로 남겨두지 말고 내가 그 추억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가미해도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진짜 프러포즈의 완성은 결혼 후 시작된다. 서로에게 한 약속들, 결혼을 앞두고 한 다짐들. 나를 만나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그 초심. 겉모습은 하나의 '식'일 뿐 그 알맹이는 동일한 하나의 맹세이다. 'Will you marry me?'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 이유는 그 약속을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지 화려한 프러포즈의 형식에 감동했기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서로의 행복을, 부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평생 얼마나 노력하는지'멋있는 프러포즈'의 성이다.



그래서 남편의 프러포즈는 아직까지 100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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