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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Feb 25. 2023

재능이라는 빨간약에 대하여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근육 발달 능력은 한국인 100명 중 88등, 유산소 운동 적합성은 86등, 근력운동 적합성도 86등인 인간이다. 불리한 유전인자 4개 중 4개가 다 있다고 한다. '인자약(인간 자체가 약함)' 그 자체다.


   뱅크샐러드에서 제공하는 유전자 검사를 받아 확인했다. 결과지를 받으니, 몇 년을 헬스장에서 꾸준히 근력운동을 했는데도 3대 300이 멀기만 하고, 다니고 근무하던 대학의 가파른 언덕에서 헐떡이는 것이 나아지지 않았던 것도 납득되었다. 수영도 유난히 호흡이 딸리던데, 혹시 또 모르겠다.


   그렇다고 운동을 그만둘 건 아니다. 이미 몇 년을 해왔으니 앞으로도 헬스장에 출석하는 일은 어렵지 않으며, 민소매 입은 청년에게 “이 기구 다 쓰신 건가요”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공간이 되었다. 이젠 며칠만 가지 않아도 몸이 찌뿌둥하고, 스트레스라도 받으면 하루에 두 번도 간다. 어딜 다치면 “내일 운동 루틴 어떻게 바꾸지”부터 생각한다.


   아무리 인자약이더라도 십 년, 이십 년을 이렇게 하다 보면, 하지 않은 것보다는 아무렴 나아지지 않을까.


   불리한 유전자라는 빨간약을 일찍 삼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에 즐거움을 붙이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배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프로의 세계가 아닌 이상, 재능은 늦게 알수록 좋을듯하다. 재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욕심을 부리게 될 것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실망하고 그만두게 될 테니까. 재능의 영역은 덮어두고, 느리지만 천천히 정진하는 즐거움이 찾아올 때면, 재능은 아무래도 상관없게 된다.


   그래서 재능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글에서도, 공부에서도. 노력 중인데.


   사실 쉽지 않다. 누가 말했던가,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라고. 재능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글을 쏟아내는 나는 재능에 미친 사람이다. 이 글이 재능에 대한 마지막 글이 될지도 장담 못 하겠다.


   어찌 됐건, 나는 뒤돌아갈 수 없다. 글을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대학원의 시간을 돌릴 수도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재능을 검은 상자로 덮어두고 ‘느리지만 천천히 정진하는 즐거움’을 제1의 원칙으로 삼으려 노력 중이다. 다만 그 즐거움이 너무 늦게 찾아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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