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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조각사 Feb 22. 2024

팩트체크 : 사실이라는 게 과연 고결하고 거룩한 걸까?

'역사란 무엇인가? 1장을 읽고'

시간에 대해 이해하고, 존재와 기록, 추억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오늘은 1장을 다 읽으면서 다뤄보고 싶었던 주제인 '사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1. 역사가와 사실

1장의 제목은 역사가와 사실이다. 19세기 이전의 역사가들은 사실을 알아내어 나열하는 것만이 역사가의 가치라고 보았지만 점점 '사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같은 사건이 있지만 그 사건의 당사자 A와 B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을 때, 무엇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A와 B의 진술이 일관된다면 그것을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실은 나는 이 답에 대해 꽤 예전부터 고민하고 생각해 봤었다. 당시의 글이 있다.

일부를 발췌해서 올려보겠다.



모든 현상에는 하나 이상의 사실이 있다. 나는 사진작가다. 한 장면에서 수만 장의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코끼리의 모든 부위마다 다르게 느끼듯, 다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평소에 믿어온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사실은 없다. 하지만 이 사진들을 넓게 보고 수용하고 의심하고 수정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본질에 다가설 수는 있다.


즉, 사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권위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사실은 본질이나 현상에 대한 그럴싸한 의미부여이자 감상이자 평가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실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에는 꽤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논리와 행보가 맞아떨어지고, 여러분을 이해시킨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조차 사실이 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나는 추억조각사다. 사진작가이고,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준다. 여기까지는 사실인가? 하지만 나에겐 사실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준다고 하고, 나에게 찍힌 사람들은 ‘모두’ 추억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건 사실인가? 사실이 아닌가? 어려운가? 난 추억을 줬고, 받은 사람이 받았다고 한다. 이건 사실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부족하다면, 내 인스타에 들어와 후기와 그간 내가 해온 행보를 보면 된다.


뭔가 맞는 말 같지만 굉장히 미심쩍다고 생각하며, 가스라이팅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다행이다. 정확히 내가 의도한 부분이다. 사실에는 이런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여러 본능이 믿어선 안될 것까지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고, 어떤 것은 사실임에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스라이팅 가짜뉴스 선동도 이런 사실의 단점이다. 사실에 대해 깊게 다룬 책, 팩트풀니스에서는 이러한 본능적 오류가 10개나 나온다.


- 23.06.03 사실에 대한 통찰 중에서



이 글처럼 저 사진처럼 나는 사진작가이기에, 사실에 대해 열어두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은 일종의 사진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원근을 이용해 이미지를 왜곡할 수 있고,

각종 기법들로 오묘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진미학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하면 사실이 무엇인지,

같은 사진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역사가들이 사실에 대해 문답하고, 정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사실과 역사적 사실로 쪼개지게 된다.

우선 역사가들도 사실에 대해 다시 탐구하기 시작했다.

불변하고 고결한 것이 아니라.

새 유물이나, 문헌이 나와서 새로운 고고학적 자료가 나오면

언제든 바뀌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책에서는 사실이라는 게,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서술한다.

또한 기록은 기록자의 의도나 상황을 미반영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진으로 한 번 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찍지 못한 순간의 시각적인 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고,

죽어버린다면 영영 없던 일이 된다.


또한, 모든 사진은 사진가의 눈을 통해 그 순간과 배치와 모든 것이 결정된다.

사진가가 어떤 순간을 의도적으로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쪽이 먼저 맞아서 정당방위로 반격할 때

반격장면만 찍게 된다면,

그 사진에선 먼저 맞게 된 사람이 때리기만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러 이해관계가 없는 이가 그 사진을 보게 되면

때리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증언이 쓰인 기록지를 함께 발견했다면?

그 기록지에 쓰인 인상착의와 당시 상황을 보고,

그 사진에서 먼저 때린 사람이 사진 상에서 맞고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그런 것을 사실이라고 하게 된다.

발견된 여러 과학적 증거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때 그것을 사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사진 속 두 사람이 일제강점기의 중요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왜 저 일을 역사적 자료로서 중요하게 계속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게 19세기 이후로 내려왔던 역사가의 일이라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다른 일도 있다.

광고 천재로 유명한 이제석 님의 광고 중에 재능기부 광고가 있었다.

주제가 평화였는데, 가로로 긴 전쟁 장면들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어떤 사진에는 수류탄을 던지는 남자.

또 어떤 사진에는 스나이퍼를 든 남자.

등등

그는 이걸 좀 다르게 해석했다.

이 긴 가로사진을 전봇대에 붙였다.

그랬더니 그 총을 자신이 맞고,

수류탄이 남자에게 날아오는 듯한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그 광고의 메시지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로 완성되었다.


역사가들이 하는 다른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

사실을 기반으로 이해관계를 연결 지어보는 것.

후대에 전해질만큼 가치 있는지 판단하는 것.


사진 속 때리고 맞던 두 사람이

친일파와 독립군이고,

각자의 조직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다면

역사가의 해석과 주목에 의해

계속 언급되며

그것이 반복되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거다.


아 좀 너무 어렵게 썼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에 또 한 번 써봐야겠다.


무튼 사실이란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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