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SAAS의 종말에 대해 아주 뜨겁다. 아마 이 글이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치고, 순번도 지나서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테크분야는 정말 너무 빨라서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SAAS의 종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더 상위범주인 니치마켓을 노리는 사업. 즉, 아주 뾰족한 타깃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쓸만한 서비스나 상품을 노리는 것. 즉, 니치마켓을 저격하여 시작하는 사업의 형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혹은 일부 분야에서만 정말 조금의 기회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시대가 개인의 사소한 문제쯤은 쉽게 해결해 버리는 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클로드에서 법률 기능을 출시했고, 연쇄적으로 간단한 법률 상담을 해주던 상장사는 폭락했다. 변호사에게 받던 간단한 상담조차도 이제 ai와 함께라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법률이라고 크게 말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각자의 문제가 모두 다르다는 것에 있었다. 그렇기에 단편적인 인터넷 정보들로만 해결하기 어려웠고,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 코드를 짜기 위한 개발공부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지금은 반복작업을 자동화하기 위해, 3~4시간을 공부해서, AI와 함께 또 옆에 개발자의 조언을 몇 차례만 받아도, 나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맞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건 사소한 어려움에 속한다. (사기꾼들은 이걸 딸깍 하면 한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다.)
나는 이 시대에서는 역설적으로 니치마켓이 무너졌다고 본다. 간단한 하나의 기능만으로는 복제품과 다른 큰 비교우위를 갖출 수 없다고 느낀다. 아제는 바늘로 뚫어야 하는 게 아니라 망치로 쳐야 한다.
망치는 작은 수요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정말 존재하는 커다란 문제를 풀어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바늘 따위는 찌그러뜨릴 수 있는 망치로 시장을 파괴해야 한다. 바늘로 찢던 시대는 지났다. 바늘로 찢던 기업들이 크게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그건 트래픽을 모을 수 없다.
더 세부적으로, 혁신 하나가 아니라, 혁신 뭉텅이가 있어야 한다. 좀 더 문화와 의도, 철학의 영역에서 타깃을 잡고 사람을 모아야 한다. 작은 문제해결은 당연한 거고, 그 작은 해결의 집합으로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에 대해, 예술과 연결될 것 같아 개인적 경험을 가져와 이야기를 이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사진을 했었다. 공부 겸 몇 년간 매달 전시를 보러 다녔었는데,
정말 잊을 수 없는 명문장을 어떤 사진가의 전시에서 만났었다.
When I make a portait,
I don't take a photograph.
I build it.
바로, 이 문장인데.
1대 1 치환하지 않고 속 뜻까지 해석하면 이러하다.
인물 사진을 할 때,
나는 순간을 잡아내서 찍지 않는다.
나는 인물 사진을 만들어낸다.
사진산업이 스마트폰을 만난 것과 똑같은 현상이 소프트웨어 산업에 일어나고 있다. 난 그 시장에서 이 시장으로 왔다. 세상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산다. 세상 모든 사람이 매일 한 번 이상 접속하는 AI는 코딩을 시키면 개인의 가벼운 문제 따위는 해결해 버린다. 그 둘은 같다.
모두가 사진을 찍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고, 소름이 돋게 만들고, 또 보게 만드는 사진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나는 결국 [쌓아 올린 의미], [쌓아 올린 혁신]을 답으로 내놓는다. 그래서 나는 한 장의 사진이 수만 장의 사진을 이길 수 있음을 알지만 100장의 사진을 담아. 질적인 시간이라는 하나의 의미로 이어진 사진책을 냈다. 커다란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을 주제로 시리즈로 접근해서 아직 3개의 시리즈를 남겨두고 있다.)
사진 한 장은 따라 할 수 있다. 100장의 사진이 만들어낸 연결은 따라 할 수 없다. 그게 400장이 되어 '시간'이라는 문제에 대한 철학을 예술로 승화했을 때는 범접할 수 없어진다. 예술의 논지이지만 대기업을 이겼던 이야기 책 언카피어블에 나온 사례에서도 똑같았다. 그저 혁신을 중첩하는 것. 하나의 니치. 하나의 문제를 간단한 하나의 솔루션으로 풀 수도 있지만 거기에 또 혁신을 중첩시키고 연결되어서 상위의 범주에 다가선다. 그래야 따라 할 수 없다. 그걸로 비비는 거다.
상위의 범주에 다가선다는 것은 니치마켓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커다란 문제 위에 있는 대중을 만나야 한다. 지금 대중은 하나로 이어진 전체의 대중이 아니다. 쪼개진 대중의 시대다. 그중 하나의 대중 군을 선택해 때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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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앱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자본주의적 문제는 규모에 있었다. 100명이서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해야 했기네 1년의 비용만 부담해도 모두를 3000만 원 연봉으로 잡아도 30억이다. 그걸 지금 4명이서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 수익성이 아주 느슨해도 된다는 게 아닐까? 인간의 본성을 공격해서 도파민을 조작하는 산업군에서, 인간이 삶을 향유하게 만드는 산업군으로 핫한 산업이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자본이 쌓이고, 부유해지고, 결과적으로 시간이 남으면 짧은 기쁨과 일상을 넘나들기보다는 꾸준한 충만감이 있는 상태를 더 추구할 여유가 남은 사회로 넘어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