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버텨내기 위해, 내 생계를 책임져주는 한 조직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미션도, 자본이 나오는 구조도 독특해서 참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일을 가장 깔끔하고 완벽하게 쳐내는 정규직 실무자 한 분과 스몰토크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주제는 뻔하지만 흥미로웠다. '돈, 명예, 권력'의 우선순위 매기기. 그분은 명예-권력-돈을, 나는 명예-돈-권력을 꼽았다. 내가 권력을 최하위로 둔 이유는 명확했다.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리더. 요즘 내가 가장 눈여겨보고 닮고 싶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을 들은 그분은 현실적이고 예리한 팩트를 꽂아 넣으셨다. "요즘 조명받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긴 하죠. 하지만 실무에선 다릅니다. 우리는 결국 '일'을 하러 모인 거잖아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듣고 있으면 결정이 늦어지고, 그건 엄청난 비효율입니다. 결정권자는 욕을 먹더라도 본인이 딱 정해서 강하게 푸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맞는 말이었다. 너무 완벽하게 맞는 말이라 뼈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머리로는 그 효율성에 100% 동의하면서도, 내 내면에서는 '그래도 나는 저렇게 안 할 건데?'라는 고집이 꿈틀거렸다.
"음... 그래도 저는 팀원들의 의견이 궁금해요. 그 안에는 늘 배울 점이 있고, 누군가 굳이 의견을 내고 싶어 한다면 거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거든요."
적당히 방어했지만, 내 대답이 스스로도 너무 빈약하게 느껴졌다. 내가 남들의 의견을 기어코 듣고자 하는 이 본능적인 의지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퇴근 후 밤에 샤워를 하는데 이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밈처럼, 스스로 납득이 안 돼서 스트레스를 받고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나는 왜 그 명백한 비효율을 경험적으로 좋다고 느끼면서, 심지어 더 심화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할까?'
다음 날 아침, 다른 알바를 다녀와서 다시 샤워기를 틀었을 때, 머릿속에 번쩍하고 전구가 켜졌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당연히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가 리더로서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기적인 과업 달성에 멈춰있지 않았다. 내게 그 비효율적인 의견 청취는 조직과 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날카로운 수단이었다.
의견을 더 듣고 조율하는 그 귀찮은 비효율 속에서, 나는 다음 결정권을 이어받을 리더를 가려낸다. 의견을 내기 어려워하는 이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그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게 가장 맞는 과업을 쥐여준다. 당장 오늘 주어진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이 조직 전체를 성장시키고 사람을 키워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대표라면, 내가 만드는 조직은 무조건 그래야 한다'는 창업자 특유의 독단적이고 지독한 갈망에 기반한 것이었다.
드디어 스스로 납득할 답을 찾은 나는, 출근하자마자 다시 그분에게 다가가 내 결론을 쏟아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분은 웃으며 나를 놀리셨다. "완전 이 시대의 대표님 마인드네요."
물론 우리는 이 '대표 마인드'의 방식이 조직이 너무 커지거나 극단의 속도가 필요할 때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데 깊이 공감하며 대화를 마쳤다.
하지만 나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 회의 중에 팀원들의 의견이 궁금해 미치겠는 나의 이 미련한 호기심은 틀린 게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비효율을 껴안고서라도 기어코 사람과 조직의 크기를 키워내려는 이 지독한 욕심. 이것이 결국 내가 내 회사를 차리고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품어야 할 진짜 동력이다.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비효율적인 대표'가 될 것이다. 과업의 완수를 넘어, 그 과업을 해내는 사람들의 성장을 쥐어짜 내는 집요한 대표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