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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Sep 07. 2023

사랑은 환상이 아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보다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 말은 쉽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일이다. 사랑에 빠진 경우를 두고 ‘사랑에 눈이 먼다’라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랑에 빠지면 눈만 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사람이 생각이 많으면 당연히 단순해질 수가 없다. 그리고 답답한 사랑은 생각이 만든 미로에서 도무지 벗어나지를 못한다.

 왜 그럴까. 왜 사람은 사랑을 할 때 뻔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선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무지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이기에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아직은 상대방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어련할까마는 이럴 때 대부분의 남자들이 성급해진다. 그리고 남자가 서두를수록 여자는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인류에게 있어 수렵에서 농경으로 생활의 행태가 변하고 사회가 모계사회로부터 부계사회로 이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내재된 의식이 남성의 능동성과 공격성이라면 여성은 수동적이고도 방어적인 기제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모두 늑대‘라는 말에 딱히 부정할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가 늑대라고 싸잡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알고 보면 조상 탓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내숭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또한 오랜 세대를 거듭하면서 체득한 방어 수단이 아니겠는가.


 사랑을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는 대부분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여자에게 쏟는 정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냐, 온갖 정성을 다 쏟아도 마음을 열지 않는 여자는 문제가 없느냐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의 방어적인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가 성의 구별(남녀의 성을 구분할 때 전통적으로 이것에는 성의 억압과 이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있어 왔다)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농경문화와 함께 시작된 인류의 역사시대 이래로 지속된 성의 속성과 차이는 여전하다.

 여성의 방어 기제는 여자의 모호한 태도로 나타나고, 이를 감내하지 못하는 남자는 생각이 많아질 밖에. 이렇게나 저렇게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지레 판단한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남자라면 여자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 천 가지 만 가지 행동보다는 오히려 말 한마디 만으로도 여자에게 확신을 줄 수 있다. 모든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할 때 가능한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이를 두고 ”확실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구애라는 땅에 들어가 얼쩡거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자의 마음이 어떤지 판단하지 말고 주저 없이 여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일이다. 그 고백이 세련되지 못하고 서툴다고 해서 낭패가 될 일은 없다. 오히려 떨며 하는 고백이야말로 여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천 가지 만 가지 행동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사랑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못할 때 흔히 사랑의 대상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상대방을 이상적인 존재로 포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은 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계발을 촉진시키거나 삶의 활력을 가져온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진솔하게 바라볼 수 없게 한다.


 환상, 또다시 낭만주의이다.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십 대에 우리는 가장 ‘낭만적’ 일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나이에 겪게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와 시행착오들이 젊다는 이유로 용인되는 시간을.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난 뒤 우리는 마음에 철 지난 바닷가의 쓸쓸함과 떠밀려 온 지난 시간의 부유물을 아프도록 확인하게 된다.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은 짧게 지나가고, 삶도 사랑도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젊은 날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프지만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가 뭘까. 말 그대로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은 사랑이기 때문에? 글쎄, 이미 지나간 사랑에 대하여 끝까지 이기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지난 기억을 붙들고 있다면 자기 마음과 현실에 대하여 부리는 몽니와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젊은 날의 사랑이 끝내 잊히지 않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 환상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이 평생 동안 마음에 뻔한 현실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의 환상을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시절의 사랑이 몹시 아팠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환상 속에서 아름다웠던 자신의 영혼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만끽한다. 많지는 않겠지만 첫사랑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젊은 나이에 사랑의 환상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뒤 이어 사랑의 현실까지 동일한 대상을 통해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환상은 어떤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첫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에 경험 밖의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환상 속의 사랑이 아름답게 남아 있다고 해서 환상이라는 창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 되지는 못한다. 사랑은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한순간 불탔다가 스러지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지켜가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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