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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ug 31. 2023

나 홀로 의지는 사랑을 힘겹게 한다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 혈육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나 신앙 공동체에 대한 사랑, 나아가서는 절대자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만큼 사랑은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범주를 모두 포함할 때 논점을 흐릴 수도 있어 이제부터는 남녀 사이의 사랑으로 범위를 한정하기로 한다.


 남녀 사이에 감정이 앞선 사랑은 일장춘몽과 같이 오래지 않아 시들하기 마련이고, 사랑에 대한 의지가 그 사랑을 흔들리지 않게 다지고 끝내 사랑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인의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혼자 만의 의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비록 당사자들의 생각에 차이가 있더라도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두 사람의 의지로 서로의 차이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철석같이 믿어 보지만, 그 간극을 좁힐 수는 있을지언정 없는 듯 메우지는 못한다. 결혼해서 같이 살다가 이혼하는 부부야 말할 필요도 없이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도 갈등은 언제나 있어 웬수야,라는 말을 달고 산다. 심지어는 백년해로할 것 같았던 노부부도 뒤늦게 갈라서, 황혼이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세상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아직은 대부분의 부부들이 서로가 가진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이다.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부부로서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겠는가. 사랑이 없다면, 그 결혼 생활은 곧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이혼을 하는 것이고. 그러나 부부의 사랑이 여전하다고 해서 그 사랑이 일관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일상 속에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각자의 의지가 톱니바퀴처럼 잘 맛 물려 있기에 가능한 것이 현실 부부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타협과 양보라는 처방전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부부의 사랑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파국을 막고 유지할 수가 있다. 비록 그 사랑이 완전하지 않고 ‘한번 웬수는 영원한 웬수’로 남을지언정.


 문제는 한창 감정이 들끓고 있는 청춘 남녀의 사랑이다. 남자는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시키기에 모든 힘과 시간을 쏟는다. 한편 여자는 남자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느낄 때까지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기를 주저한다. 흔히 ‘밀당’이라고 말하는 지극히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이성 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개방적이기 때문에 많이 다르겠지만 예전에는 밀당이라는 피곤한 시간을 통과의례처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자가 남자를 먼저 좋아했을 경우 밀당의 정도는 심각해진다. 여자가 연예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방어적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첫사랑을 실패한 까닭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첫째는 첫사랑인 친구에게 마음을 열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친구의 마음은 뻔히 알겠는데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것 등이었다. 여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숙맥이 여자의 마음을 간파했다고 한들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첫사랑 이후 아내와 결혼하기까지 몇몇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그 만남이 실패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만남을 길게 가져간 본 적은 없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인연이 아니다 싶을 경우 인연을 빨리 정리하는 것이 서로가 상처를 덜 받는 일이고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지 않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깨닫게 된 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무엇보다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느낀 대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남자로서 이런 태도를 보이면 여자의 마음을 열 수 있지 싶다. 사랑을 위해서는 사람이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에는 일종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같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씁쓸하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순수하고도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젊은 날의 사랑이 한낱 기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사랑 앞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감정을 숨기지 말고 ‘함께’ 사랑을 키워갈 의지를 확인할 일이다.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함께’가 아닌, ‘혼자’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혼자의 의지는 사랑을 힘겹게 한다. 그런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밀당으로 시간을 소모하다가 취업을 앞두고 사랑 따위(!)는 포기하고 마는 서툴고 서글픈 청춘을. 그렇게 싹이 시든 사랑이 얼마나 많은지. 모쪼록 세상의 수많은 젊은 사랑이 힘겹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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