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얼핏 듣기에도 친숙한 이 말은 대중 가수 최백호가 부른 노래의 제목이다. 신파조에 가까운 가사(오히려 이점에 이 노래의 인기 비결이 있겠지만)를 보면 ‘낭만’이라는 말이 얼마나 왜곡되어 쓰이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이 노래의 가사 마지막 두 소절을 살펴보자.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이 가사가 보여주듯 이 노래에서는 낭만의 의미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그래서 마음에 절절하면서도 허무로 남은 사랑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낭만’ 혹은 ‘낭만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낭만에 대한 이와 같은 왜곡과 오해는 대중의 무지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19세기의 낭만주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낭만적이라고 묘사한 표현과 태도가 부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예로 들어보자. 직역할 때 ’보헤미아 사람‘ 혹은 오페라의 내용으로 볼 때 ’보헤미안의 사랑‘이라는 뜻의 오페라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체코에 해당하는 지역을 보헤미아라고 불렀지만, ‘보헤미안’이라면 사전적으로 ‘사회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거나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더불어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묘사하는 작가와 예술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인 시인 로돌포와 철학가, 화가인 그의 친구들이 그 전형으로 산업사회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추종하는 부와 같은 가치를 따르지 않아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서사를 낭만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신분에 차이는 있지만 순수한 사랑이라는 면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필두로 하는 낭만주의 문학의 사랑 서사가 대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

 앞으로 언급할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묘사하거나 구현하고자 하는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랑의 완성(사실 낭만주의의 사상으로는 ‘완성’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을 방해하는 현실적인 제약과 인격의 한계를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문학운동에서 시작된 낭만주의가 19세기를 관통하는 사상으로 확장된 만큼 낭만주의 사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자.

 낭만주의는 ‘근대성’을 그 출발로 본다. 전통성과는 다른 근대성은 당연히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사상으로서의 낭만주의는 근대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유토피아적 갈망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낭만주의의 중요한 개념으로서 ‘이상’(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이데아’와 굳이 연결 지을 필요는 없다)이 등장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정신적 동력으로서 ‘동경‘이라는 기조가 중요하게 생각되는데,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규정한 동경은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충동”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이상은 순수한 직관으로서의 ‘환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환상이 낭만주의의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다. 낭만주의 음악의 주요 형식인 환상곡을 생각해 보라. 환상과 더불어 상상력이 중요하게 생각되며, 이들은 이성이 아닌 ‘직관’에 의하여 작동된다. 그리고 직관과 같은 자유로운 정신은 ‘사랑’에 의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완성은 환상일 수가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을 좇아 그 사랑을 끊임없이 동경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낭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은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꺾이지 않는 의지’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의지가 뒷받침되는 사랑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지 싶다.